밥 먹는 방법이 정해진 바가 없듯, 글 읽는 바도 정해진 바 없다. 누군가는 급하게 차 안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기도 하고, 누군가는 국물이 있는 식사를 하기도 한다. 급할 때면 편의점 빵이나 삼각 김밥을 먹기도 하는데, 고지식하게 12첩 반상만 식사로 규정할 수 없다. 조금더 건강한 식사법이 있고, 더 건강한 식재료가 있으며, 더 올바른 식사 예절과 자세는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목구멍에 음식을 넘기는 행위는 다르지 않다. 끼니를 걸러야 할 것 같으면 급한대로 새우깡에 우유 한팩이라도 식사고, 두부 한 모에 간장 한 종지도 식사로 볼 수 있다.
고로 어떤 독서법이 옳고 어떤 독서법은 옳지 않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책 종류와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속독'을 피치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독으로 유명한 '빌게이츠'의 소원이 '책 빨리 읽는 능력'인 것 처럼 당연한 것은 아니다.
속독은 정의도 많고 방법과 목적에 따라, '스키밍' 혹은 '스캐닝', '서베이'등 부를 이름도 많다. 이미 독서로 완성한 이들이 뭐라고 불르던, 이용자는 이용만 하면 되지 않겠나. 명명된 바에 구애받지 말고 빠르게 읽는 법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해보자.
우리가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반도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전자의 원리를 파악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 이용자로써 원리나 이름, 분석은 필요없고 모든 가지를 제거하면 딱 이정도면 쉬울 수 있다.
첫째, 이미 아는 내용을 읽기
중국어를 어제, 오늘 공부하고 내일 속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속독은 다시 말하면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이해력'의 영역이다. 같은 기술과 방법을 가지고도 어떤 글을 읽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 누군가는 더 빠르게 이해하고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이미 많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배경지식이 있는 이는 '처음' 그 주제를 접한 이가 이해하기 쉽다. 고로 속독의 필수 요건은 '다독'이다.
자, 다음 글을 이해해보자.
"심전도 검사 결과에서 비정상적인 ST분절 상승이 관찰될 경우 급성 심근경색을 의심해야 하며, 즉각적인 관상동맥 조영술을 통해 혈관 폐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만성 신부전 환자의 경우 사구체 여과율이 현저히 감소하면 투석 치료를 고려해야 하며, 적절한 전해질 관리와 함께 심혈관 합병증 예방을 위한 전략이 요된다. 종양학적 진단에서는 PET-CT를 통한 전신 스테이징이 필수적이며, 종양 표지자 검사와 유전자 돌연변이 분석을 통한 맞춤형 치료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낯선 단어에 잠시 멈추어 문장을 정리하고 다시 낯선 용어에 멈추어 상황을 이미지화 하다보면 속도도 속도지만 이해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반면, 쉬운 문장은 쉽게 읽힌다.
"A로 시작하고 다음은 B이다. B 다음은 C다. C 다음은 D이다. D 다음은 E이고 E 다음에는 F가 나온다. F 다음에는 G가 나온다. G 다음에는 H, H 다음에는 I, J, K, L이 순서대로 나오며 그 다음으로 M, N, O, P가 이어서 나온다. 그리고 Q, R, S, T, U, V라 이어진 후, 마지막으로 W, X, Y. 마지막으로 Z로 끝난다."
글의 구성과 흐름, 글쓴이의 의도가 파악이 되면, '조사'와 '술어', '연결사'는 튕겨져 미끄러지듯 마지막 문장에 도달하고 깨닫는다.
'아, 대충 알파벳 순서를 말하네'
그것이 굳이 따지면 '속독'이다. 이것은 두 번째와 연결되어 있다.
둘째, 글쓴이의 의도알기
자, 지금 주어진 글을 읽어보자.
"특정 장치의 IP와 포트 넘버를 입력하여 외부 네트워크에서 해당 디바이스에 접근 가능하도록 설정"
이 글은 '와이파이 공유기'의 설명서 일부다. 맥락도, 목적도, 주제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주어진 이 글은 이해하기 난해하게 보인다. 그러나 앞뒤 상황과 목적이 분명하고 글쓴이의 의도를 알고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말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자, 다음을 이해해보자. 다음은 물질의 성분을 위해서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스펙트로미터'라는 기계를 예열하기 위한 설명서다.
" 고정밀 측정을 위해 스펙트로미터의 내장 광원이 예열되고 안정화 될 때까지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의도와 목적이 파악되면 내부에 있는 어려운 어휘는 자연스럽게 이해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마지막 셋째, 키워드 위주로 보기
언어에 따라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집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관계설정'이 몹시 중요하다. 고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많고 술어가 뒤로 배치되어 말하는 사람과 듣는사람의 관계를 정의한다. 조사와 술어가 복잡해지고 호칭이 복잡해진다. 영어의 경우에는 '주체의 행동'이 몹시 중요하다. 주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대략적인 파악이 우선된다. 이 과정에서 영어의 경우에는 긴 수식어가 뒤에 이어진다.
즉, 영어에서는 뒤에 배치된 수식어가 비교적 덜 중요한 정보가 되고, 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술어'가 비교적 덜 중요한 정보가 된다.
She met a friend who bought a car last year with her father who used to be a doctor until last year."
(그녀는 작년까지 의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작년에 차를 산 친구를 만났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어떤 친구에 대한 부가적인 수식이 뒤로 이어진다. 이처럼 영어는 만연체로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모든 단어의 중요도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고모할머니께서는 증조할아버지께서 사 주셨던 책을 잃어 버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Said는 '말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듣는 사람이 문장의 주체보다 높을 경우에는 '말씀하셨습니다'로 더 길어진다. 황당하게도 듣는 사람이 문장의 주체보다 낮은 경우에는 화자와의 관계와 무관하게 '말하셨습니다.'로 바뀌고, 화자보다 그 관계가 낮은 경우에는 '말했습니다'로 바뀐다. 여기서 듣는 사람이 더 늦은 경우에는 '말했어' 등으로 바뀌는데, 글의 주체,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등 세 사람의 관계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술어가 만들어지며 이는 사실 관계를 규정하는데 중요하지만 정보를 파악하는데는 중요하지 않다. 대체적인 관계를 알고 있다면 글읽기에서 그 부분은 넘어가는 편이 좋다.
고로 글은 키워드를 '툭툭' 치며 읽고 넘어가며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읽는 방식이 있는데, 이 역시 어느 정도의 이해력과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고로 첫문장부터 바로 속독은 불가능하고 마치 관성을 받아 속도를 붙이는 물리 법칙처럼 천천히 분위기를 파악하며 글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