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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18. 2024

[생각] 미니멀리즘: 루이비똥, 아이폰을 사용해도 되는

 누군가 물었다.

 '미니멀리즘'이면 집에 화장지도 안사놓느냐고

물론 웃자는 이야기다. 비꼬는 듯 했으나 답했다. 최소로 소유한다는 것은 저렴한 것을 소유한다는 것과 다르다. 아이템의 '수량'을 줄여 단순화하자는 것이다.

 즉, '화장지', '샴푸', '린스'는 당연히 집에 있으며, 백만원대의 '루이비똥' 지갑과 아이폰, 맥북 등을 소유하고 있다.

 '최소주의(最小主義)'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로 '스티브 잡스'를 떠올린다. 다만 대외적으로 '미니멀리스트'라고 하면 아무것도 갖지 않는 '스님'을 떠올린다.

 '스티브 잡스'는 대표적인 '최소주의자', 즉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BMW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다만 '미니멀리스트' 답게 거기 달린 번호판을 떼어버렸다. 그것이 미니멀리스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다.

 미니멀리스트라고 '달구지'를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대신 달구지를 끌고 다니고 화장지 대신 '신문지'를 갖고 다녀도 그것은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미니멀리스트라면 달구지 100대를 가질 바에 '포르쉐' 한대를 소유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그저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신지 않는 신발은 버리고 입지 않는 옷은 수거함에 넣는다. 이런 소비패턴은 무엇을 남기는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남긴다.

 소비할 때, 항상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나에게 필요한가'

무언가를 소비할 때, 나의 소지품으로 들이고자 할 때, 그것이 '최소주의 철학'에 맞는지 생각하게 된다.

 편의점을 들어간다. 편의점에는 1+1 제품 혹은 2+1의 제품이 있다. 될 수 있으면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하나의 가격에 둘을 파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가격에 원 플러스 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즉, 필요없는 하나를 더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나 2+1은 더욱 사지 안는다. 하나를 갖기 위해 두 개를 구매한다면 아마 틀림없이 필요하지 않는 2개를 구매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는 인심 좋게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그렇게 성의 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알고 있다.

 마케팅을 공부한 나로써는 '꽤 똑똑하군' 하면서도 '괘씸하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장사의 기본은 많이 남기는 것이 아니다. 장사의 기본은 '회전'이다. 하나를 팔고 많이 남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회전률을 높이면서 적게 남기는 것이다. 회전률이 높으면 물건 공급자에게 '대량구매자'가 된다. 진짜 사업가는 '소비자'에게 남기지 않고 '공급자'에게 남긴다.

 '구글', '삼성', '메타' 등의 기업을 보면 '고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고객은 매출을 올려주고 올라간 매출만큼 '매입량'이 늘어난다. 고로 B To C에서 적게 남기고 B to B에서 크게 남기는 것이다. KBS는 시청자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지만 광고비용으로 매출을 발생한다. 조선일보, 메타, 구글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 딸의 필통을 주말에 한번씩 열어본다. 희한하게 필통에는 아무리 버려도 지우개가 새로 들어가 있다. 어러 지우개 중 하나를 제외하고 버려 버린다. 이를 보고 지인은 말했다. '낭비'라고.

 쓰고 있지 않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낭비다. 사용하지 않는 '지우개'를 버리는 것이 낭비는 아니다. 물론 굳이 누군가를 주거나 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주거나 기부하는 절차, 혹은 파는 절차는 생각보다 에너지를 소요한다. 또한 그동안 꾸준히 소유해야 한다. 그런 에너지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맞다. '지우개' 하나의 가치는 잠자리 지우개를 기준으로 280원이다.

 멀쩡한 무언가를 버릴 때, 우리는 자책감을 갖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다. 우리 모두에게는 '원죄'가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원죄'는 기독교의 '원죄' 개념과 약간 다르다. '원죄'는 인간이 살면서 '피치 못하게 짓게 되는 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는가. 심지어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고통을 주고 태어난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떤 생명의 사체를 소화시키며 성장했고 그것은 매 세끼마다 이루어진다. 저도 모르게 수많은 벌레와 생명을 죽이고 집안에 돌아다니는 바퀴벌레와 초파리에게 무수한 '살상화학무기'를 살포한다.

 '익충'과 '해충'을 멋대로 나누어 흉측한 무언가에 '해충'이라는 이름을 짓고 죄책감 없이 살상하며, '귀엽게 생긴 무언가'에게는 사랑을 심어 놓는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아무 죄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형 세단을 타고 100미터만 움직여도 우리는 여타 부대비용으로 잠자리 지우개 하나를 길바닥에 버리는 과오를 범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버스'를 타도 일어나는 일이고 숨만 쉬며 집에서 라면만 세끼를 끓여 먹어도 발생하는 일이다.

 고로 불필요하다면 가차없이 버리되, 버리는 고통보다 사는 고통에 민감해져야 한다. 살때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버리는 고통에는 지우개 하나, 치약 뚜껑 하나에도 '경제관념'과 '인성'을 운운하게 된다. 미니멀리즘의 철학을 추구하다보니 명확해지는 것은 구매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가 커진다는 의미다.

 '저것은 나에게 필요한가'를 고민한다.

 어느 날, 문뜩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다. 위로 아래로 수백, 수천 만원 움직이는 호가창을 보고 담담해 하면서 치약 뚜껑하나 버리지 못하는 '모순'을 본 것이다.

 지출 중 가장 경계해야 하는 지출은 의식없이 사용되는 돈이다. 최근 '구독 서비스'가 늘고 있다. '구독서비스'가 최상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사실은 최근 '티몬 위메프 사태'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매한 '상품권'의 유효기간을 확인하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한다. 이것은 상품권 판매자들이 8%나 되는 할인을 해도 엄청난 순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던 것과 다르지 않다. 자동 결제와 구독은 '생각'도 없이, '구매'의 고통없이 소비를 부축인다. 한달에 한 번 제대로 된 영화를 볼까 말까 하면서 '넷플릭스'와 같은 OTT서비스를 구독하는 바도 이와 같다. 통신요금, 어플리케이션 사용 요금, 자동차 세금, 타이어 교체 비용, 에어컨 사용 요금 등 의식없이 사용되는 지출에는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못한다.

 저절로 통장에서 '돈'이 출금되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다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280원짜리 지우개에는 덜덜 떨게 되니, 참으로 모순이지 않을 수 없다. 고로 구매를 하려면 최소한 가치 있는 하나를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더기 같은 것을 100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그렇다.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는 잡생각을 100개 하는 것보다 의미있는 하나의 생각을 진중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미니멀리즘은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상황을 단순화 정리하고 자신의 내면적 상황도 단순화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종교적 의미의 수행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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