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대수명은 30세 정도였다. 인간의 역사를 들먹일 것도 없이, 지난 세대 영상을 보면, 서른즈음은 지금의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처럼 보인다. 그 당시 사람들이 노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1960년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53세였다.
불과 반세기만에 수명이 두 배나 가까이 늘었다. 운좋게 21세기에 살기에 그나마 '청춘'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여차하고 수 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수명은 십 여년 밖에 남지 않은 노인이나 다름 없었다.
워낙 나이의 종류가 많아졌다. 만 나이, 윤석열 나이, 한국 나이 등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나이를 물으면 무엇으로 대답해야 할지 고민된다.
다만 뭘로 선택해도 이제 30대 후반 서른 여덟이다.
공자의 엄마는 공자를 16살에 낳았다. 그녀가 서른 여덟이었을 때, 공자는 이미 자녀를 낳았다. 고로 이미 공자의 어머니는 내 나이에 손주가 있었다.
시대를 잘 만나 삶을 여러 번 산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사피엔스 출현 이래로 가장 많다고 한다. 즉 전 세계, 전 시대를 통틀어 이렇게 오래 사는 세대는 없다. 삶을 몇번이나 사는가. 그리 본다면 꽤 값진 생이다.
내가 태어난 1987년에는 71만명의 출생아가 있었다. 현재 1987년생은 이 숫자보다 5%가 줄었다. 일부는 죽고, 일부는 자살을 선택했고 일부는 이민을 떠났다. 그렇게 스무명 중 한 명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 앉아 있던 아무개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사라졌다. 한때는 서로 생존해 내기 위해 악착같이 경쟁하던 경쟁자로써 지내던 그 많은 87년생들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다들 뭐하고 지내니...' 하고
운좋게 나는 살아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는 매 40분마다 한 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 이 글을 쓰던 시간에, 이 글을 읽는 시간에 그 의식과 무의식이 모호하게 오고가는 그 시간에 누군가는 생과 사를 오고 갔으며 하나의 우주가 사라졌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소설이라 명확하게 기억은 나질 않는다. 다만 소설 '가시고기'에는 이 같은 문장이 있다.
"내가 허투로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라는 문구다.
내가 감흥없이 흘려 버리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여럿 생각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