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용 금붕어는 어항속에서 5cm 정도 크기로 자란다. 금붕어가 5cm인 것은 유전자 탓인 걸까. 아니다. 같은 종의 금붕어를 연못에 풀어 놓으면 이 금붕어는 30cm까지 자란다.
금붕어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이다. 환경은 왜 중요한다. 환경은 '성장'의 '시작'이고 끝이다. 유전자를 탓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훌륭하다.
유전자를 기준으로 볼 때, 생물종을 번식하는 것이 '우월성'이다.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의 형태로 잠시 모여 있다가 다음 형태로 유전자를 넘긴다.
즉,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는 세대를 이어받아, 우리까지 이어져 있다. 우리에게 유전자를 넘긴 조상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를 포함해 최초의 사피엔스가 탄생한 4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도, 단 한 명의 패배 없이 유전자를 전승했다.
유전자를 전승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만약 동서고금할 것 없이, 남성과 여성은 서로 짝을 찾는다. 남성은 '매력적인 여성'을 짝으로 선택하고자 하고, 여성은 '유능한 남성'을 짝으로 선택하고자 한다. 이것은 '성선택'의 본질이다.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승리한 일부가 차지하는 '승자독식'구조로 진화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남성은 큰 부와 권력을 누리고 때로는 더 많은 암컷과 관계를 맺는다. 이때 남성은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매력적인 여성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가장 유능한 남성을 선택한다.
태조왕권은 스물 아홉의 부인을 두었으며 성경의 솔로몬 왕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의 무함마드는 13명의 부인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3세는 마흔 일곱 명의 아들과 쉰 다섯명의 딸이 있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각각 8명의 자녀가 있었고 LG의 구인회 회장은 10명의 자녀가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11명의 자녀가 있고 세종대왕은 18명의 자녀가 있었다. 2003년 발표된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약 8%의 중앙아시아 남성들(대략 1600만 명)은 징기스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Y 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특정한 유전적 표지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남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징기스칸과 그의 직계 후손들로 유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남성 정복자는 틀림없이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할 것이고, 매력적인 여성은 틀림없이 가장 능력있는 남자를 선택할 것이다. 즉 이 경쟁에서 도태된 어떤 유전자는 반드시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핏줄을 따라 시간의 역순으로 직렬로 올라가면 그 상위에 있는 모든 조상은 그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유전자들이다.
경쟁에서 이긴 남성과 가장 매력적인 여성들이 작게는 40만 년 사피엔스 종의 시작부터 이겨왔고 더 크게 올라가서 40억년 전 생물 탄생부터 지속되었다.
즉 우리의 유전자는 40억의 지리한 시간 동안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우리에게 승리의 유전자를 남겼으며 '자연 선택'에 의해 쭉정이들은 도태시키고 가장 강력한 하나의 핵심을 남긴 것이 바로 우리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완전하다. 마치 아름다운 금붕어처럼 말이다. 다만 유전자와 다르게 우리의 종을 결정짓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환경이다. 환경은 우리를 유전자 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종으로 바꿔 놓는다. 어항속 금붕어가 연못속 금붕어와 완전히 다른 종처럼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 던져져야 하는가.
바로 '어항'이 아니라 '연못'이 아니라, '강'이 아니라, 바다로 던져져야 한다. 스스로를 강으로 던져져야 한다. 현대인에게 가능성이란 '육체적 조건'으로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체로 현대인의 성장은 육체보다 '정신'을 의미하며, 한계가 있는 육체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한히 성장하는 정신적 성장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일론머스크'는 그곳에서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들지 않았다.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청소년기에 '남아공'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물리적 환경에 더불어 그는 '책'을 좋아했다. 책은 우리를 어떤 환경 속으로 집어 넣는다. 이 환경은 물리적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데, 간혹 '마션'의 경우에는 화성에서 감자를 심는 환경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하멜표류기'는 우리를 조선 중기로 데려다 놓으며, '안네의 일기'는 우리를 세계 2차대전 속으로 집어 넣는다.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할 환경을 체험하며 성장한다. 때로는 공포, 위기, 행복, 불행, 슬픔, 성공, 실패, 고통, 미움, 사랑 등의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다차원의 감성적, 이성적 깊이를 확장한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읽으며 교훈을 얻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읽으며 자신감과 노하우를 얻으며, 다른 이의 불행을 보고 상대적 행복감을 갖고, 다른 이의 행복을 보고 행복한 마음을 얻는다. 또한 전혀 위험없이 '위험'을 겪어보며 위기 의식을 키우는데, 그 위기라는 것은 원래 '생존력'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리적 환경이 가진 제약을 무한히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환경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책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