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그림자 속 목이 삐뚤어진 까닭은 당신의 목이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현상은 내면의 투영이다. 속이 더운 냄비는 겉도 속과 같아지고 속이 찬 접시 역시 겉과 속이 같아진다.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겉과 속은 분리되지 않은 채 일원화 된다.
극히 희소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다. 똥 근처에는 '파리'가 꼬이고, '꽃' 근처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이것은 '법칙'은 아니지만 '특별한 상관관계'에 의해 거의 '법칙'처럼 이어져 있다.
전라남도 벌교읍에 나팔꽃이 개화하면 볼리비아 안데스 지역에는 사망자가 늘어난다.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팔꽃이 개화하는 6월에서 9월 사이에 남반구 볼리비아는 '특히' 안데스' 지역은 눈이 많이 내린다. 이 시기에 실제 '안데스 지역'에서는 저체온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는 벌교읍의 나팔꽃과 '볼리비아의 사망자'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2025년에도, 2026년에도 벌교읍 나팔꽃이 필 때, 볼리비아에서는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가 아니라고 무시할 수 있느냐하면 그렇지 않다. 과학적 사고에서는 '인과관계와 같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명제'가 선호되겠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상관관계'에 의해 벌어진다. 상관관계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에 설득 과정에 많은 근거가 필요하다. 또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주장하는 사람 사이에 상식의 간극이 존재하기에 명확하게 다수를 설득할 수는 없다.
재수 없게도 오늘 내가 똥을 밟은 이유는 벌교읍 나팔꽃과 볼리비아 저체온과의 상관관계를 닮았다. 일단 현상은 벌어졌고 그것에 대한 근거가 필요할 뿐이다. 마치 장마감 이후의 주식시황을 떠벌리는 사후해석을 닮았으나 분명한 것은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현상은 없음이다.
여기에는 굉장히 많은 관계가 얽혀 있다. 때로는 심리적, 때로는 물리적, 때로는 경제적, 정치적, 양자역학적, 인문학적 이유가 여기에 녹아 들어갈 수 있으며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손쳐도 그것이 명확한 이유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오늘 똥을 밟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냥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만해서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또 다 내몫이다, 싶어 억울함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