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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Oct 02. 2024

[인문]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회가 계속 뒤로 간다

 미국 드라마로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체로 회화 실력이 굉장히 빨리 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부터 그렇다. 발음도 좋아지고 듣기 실력이나 말하기 실력도 금방 늘어난다.

 이런 이유로 '영어공부'를 위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공부하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 조건이 있다. 늘리고 싶은 '영어 영역'이 '일상회화'에 국한된다면 말이다.

 드라마 '프랜즈'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하면 생각보다 빨리 귀가 트인다. 이유는 단순한데 실제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만든 드라마라서 그렇다.

 "What are you doing here?"

 (여긴 어쩐 일이야?)

혹은

"Are you kidding me?"

(장난해?)

이와 같은 문장은 자주 나오는데 꽤 반복적으로 나온다. 실제로 몇가지 어휘만 따로 외운다면 일상회화 수준의 어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회화에 문제가 없고 발음이 그럴싸하면 '영어 잘하네'라는 평가와 함께 꽤 의미있는 능력을 얻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 가정에서 일상 생활 중 벌어지는 대부분의 회화는 1000~2000개의 어휘 수준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하루에 100개씩 암기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달 정도면 일상 회화에서 일어나는 아주 간단한 어휘는 문제 없이 암기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일상 한국어 회화를 잘한다고 국어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고 일상 영어 회화를 잘한다고 영어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가족과 식사하고 간단한 농담을 주고 받기에 2,000 단어는 꽤 넉넉하지만 현대인이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될 어휘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어휘를 만난다.

 학교 알림장에서, 신문에서, 회사에서, 공문 등에서 우리는 일상회화에서 만나지 않는 어휘를 만난다. 일상 회화보다 조금 더 수준있는 어휘는 대략 5,000에서 1만단어 수준이다. 벌써 그 수준이 5배나 된다.

 다시 조금더 학술적인 분야에 일 해야하거나 노출해야 할 때 만나게 되는 어휘의 수준은 적게는 1만 단어에서 많게는 2만단어까지 늘어난다.

 다시말해서 그 범위를 최대치로 설정할 때, 일상회화에서 사용되는 어휘는 2천 개, 사회생활에서 사용되는 어휘는 1만 개, 학술적 환경에 노출될 때 사용되는 어휘는 2만 개가 된다.

 즉,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일상 회화에서만 사람을 접하기에 2천 개의 어휘 내에서 사람을 접한다. 고로 간단한 회화를 통해서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듯 보인다.

 다만 일상회화만 능숙한 사람보다 학술적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어휘 면에서는 10배나 문해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와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에서 비슷한 동년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간단한 식사와 일상 이야기를 나눈 학생과, 꽤 복잡한 사업에 관한 이야기, 정치에 관한 이야기, 경제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집에서는 그 차이가 서서히 벌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상 회화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접할 수 있고 사회적 회화는 공문이나 낯선이 즉 외부 활동으로 접할 수 있다. 반면 '학술적 언어'는 '책'으로 밖에 접할 수가 없다.

서로가 모두 다른 세상을 살면서 5살이 되고, 10살이되고 19살이 된다. 그리고 '대학수학능력평가'라는 시험에서 '문해력 평가'를 받는다.

 '수능'은 고유명사처럼 쓰여지고 있지만 사실 '대학 수학 능력 평가'다. 이 시험에 쓰여진 '한문'을 보면 받을 수, 배울 학의 한자가 쓰여진다. 시험의 취지를 보면 '대학에서 학문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당연히 '학술적 어휘'가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할 수 밖에 없다. 대학은 분명 중학교, 고등학교'와는 다른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경우네는 기초 교육과 지식 습득에 중점을 둔다. 이미 있는 지식에 대해 학습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다만 대학은 다르다. 대학은 더 고차원적인 목적으로 학문적 탐구와 전문성을 기르는데 목적을 둔다. '학교'라는 명칭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중등, 고등 대학'을 비슷하게 여기지만 영어권에서는 초중고에 붙는 School이라는 명사가 대학부터는 사라진다. 완전히 다른 기관이라는 의미다.

 대학은 전통적으로 두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전문가를 양성하고 연구한다. 고로 이미 완성된 인재를 선발한다. 단순히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활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로 '학술적 어휘력'이 완성된 이를 선발하는 것이 대학의 목적에 맞기도 하다.

가끔 10여 년을 공부하고도 외국인과 말 한마디 못하는 영어 실력을 말하면서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한다. 다만 한국의 영어 교육은 '일상 회화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학술적 문어체 이해력'이 목표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더 고급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모두가 학술적 어휘력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축구선수는 기본적 소양과 축구선수가 필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 되고, 피아니스트 역시 기본적 소양과 피아니스트가 필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 된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지나치게 학구열이 높아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독일어'를 잘할 필요가 없듯.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학술적 어휘력'에 뛰어날 필요도 없다.

 다만 '일상회화'로 전달 가능한 정보가 비교적 희소성이 적기 때문에 '고급 직업군'으로 갈수록 '학술 어휘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고대인들은 '농사'나 '사냥'을 하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지만 당장 다음 달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천문학적 지식'은 '일상 회화'로 구전되기 어려웠던 것과 비슷하다. 지배층이 문자를 지배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점차 고도의 기술 산업으로 변하면서 우리 사회 직업군도 대체로 '고학력자'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학술 어휘력'을 키우는 것이 역설적으로 필요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사회가 사용하는 어휘력이 점차 줄어들면서 이제는 '문해력'에 대한 여러 걱정이 나오기도 한다. 이 말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 그 무엇보다 희귀하고 값진 능력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회가 계속해서 뒤로 간다.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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