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의 최악의 적은 '선의(善意)'다. '말'은 '의도'는 좋았으나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선의(善意)는 그런 의미에서 선(善)과 가장 먼 어떤 것일지 모른다.
요즘은 컨텐츠가 넘쳐 말하고자 하는 사람도, 말도 많다. 예전 같으면 귀를 기울여야 할 정보가 흔하다 못해 독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말할 창구가 많아졌고 들을 창구도 많아졌다. 고로 쉬운 인스턴트 말들이 너무 가볍게 오고 간다.
좋은 의도로 입을 벌렸으나 그것은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 '좋은 의도'를 가장한 '악플'이다. 이것의 가장 나쁜점은 '선의(善意)'를 가졌다는 '의도' 때문이다. 한번은 아이의 교육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댓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네요. 잘못 키우시고 계신 것 같아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서 댓글 남겨요.'
아이의 교육에 관한 글은 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있다는 글이었다.
해당 글에 댓글 작성자는 말했다. 요즘 시대에 '한자'는 중요하지 않고 한자를 배우는 것은 사대주의적 사고 방식을 강제 주입한다는 것이다. 요즘과 같이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는 시대에 '스마트 기기'를 하루라도 빨리 사용하게 하는 것이 미래 세대에 좋다는 이야기였다.
진심으로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 장문의 글을 쓴다는 댓글 작성자의 '선의(善意)'가 느껴졌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형식적인 답변을 달았다. 몇분 뒤에 다시 댓글로 '성의 없는 답변이네요. 안 바뀌실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라고 달렸다.
본문에는 꽤 많은 응원의 글이 달렸으나 '선의'를 가졌다는 하나의 댓글은 집요하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고자 했다.
사람의 종류는 워낙 다양하여 생각도 다양하겠지만 '누군가의 선의'가 반드시 좋은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고로 내가 믿는 진리가 비록 객관적 진리에 가깝다 하더라도 그것을 상대에게 전달할 때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는 나의 교육철학을 비판하며 끝까지 나의 교육관이 바뀌기를 기대했다. 몇번의 대화를 하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어떤 말을 했다면 그것은 상대의 의견일 뿐 진실은 아니다. 고로 상대의 말은 상대의 말대로 두고 스스로가 가진 생각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모든 말에 귀를 닫는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서의 가장 좋은 점이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독서는 입을 닫고 듣는 행위다. 책을 읽을 때 모든 사람들의 입을 닫는다.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하여 동영상을 채보기도 전에, 글을 채 다 읽기도 전에 스크롤을 내려 '답글'부터 다는 세상이다. 수학자 파스칼 또한 '인간의 모든 불행은 오로지 방 안에 조용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고 말했다.
세상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그곳에 함께하는 나의 템포도 조급해짐을 느낀다. 최근들어 '유튜브 영상'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당연히 책을 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 들었다. 아마 정신적 피로도가 높아져 넋놓고 볼 수 있는 매체를 찾아서 그런 듯 하다. 다만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영상을 찾아 볼수록 점점 정신이 '멍'해짐을 느낀다. 영상이 끝나면 이어지는 다른 영상, 그 영상이 추천하는 다른 영상을 쫒다보면 어느새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버린다. 다시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책을 든다.
TV 생방송은 잠시 쉬어가는 그 1분의 짧은 시간에도 '휴식'이 아니라 '광고'를 집어 넣는다. 즉 우리 현대 사회에서 휴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코르넬리아 토프'의 '침묵을 배우는 시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도 가능하다.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 빵에 잼을 바를 수도 있다. 다만 그때조차 입을 다물면 더 빨리 골고루 잼을 바를 수 있다.'
TV를 보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거나 스마트폰을 볼 수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책이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것은 니체의 말처럼 책이 가진 꽤 괜찮은 장점인 것 같다.
'귀인이론'에 따르면 말이 적으면 더 똑똑하고 교양 있고, 유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친다. 실제로 어떻든 말이다. 게다기 여기에 미소까지 더해지면 20%는 더 지적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머릿속이 꽤 시끄럽고 어지러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나의 입은 다물어 있었다. 워낙 내향형 인간이라 불필요한 말은 애초에 많이 하진 않지만 그래도 지나고나서 '그 말은 왜 했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최근 새로운 앨범을 발매한 '지드래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말투가 바뀌었다'라는 댓글이 많다. 이에 대해 그는 '말에 무게'를 알게 되어 조심스러워졌다고 답했다. 그렇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에는 '말'의 '꼬리'를 잡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보면 '본질'이 흔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고요한 사회가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