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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좋으면 좋은대로 좋고, 안좋으면 또 안좋은대로

by 오인환

아이가 표창장을 받아오니 '액자'에 넣어 주었다. '손웅정 감독'처럼 모질게 '분리수거 잘 하고 들어 오너라'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액자에 잘 넣어주고 '독서 명인이었어?'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인터넷에서 조금 살펴보니 초등학교 1학년에는 '표장장'이던, '상장'이던 꽤 많이 분출하는 모양이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어떤 친구는 상장을 4개나 받았단다.

다른 친구가 잘했다고 내가 잘한 것이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 그 정도로 충분히 멋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가 받아온 통지표를 조금 늦게 확인했다. 통지표에도 역시 좋은 말 일색이다. 대한민국 교육철학이 바뀐게 분명하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분명 나도 통지표를 받아왔다. 선생님이 나에 대해 평가한 내용은 당시 나의 관심 밖이었는지 그 종이 쪼가리를 어머니께 드리고 놀러 나갔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2학년인가. 3학년인가.

우연히 부엌에서 통지표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분명 좋은 말만 적혀 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가령 '내성적인 성격'이라던지, '낯가림이 심하여 교우관계가 원만치 못하다'는 말도 있었던 듯 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봤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당시에 한번도 스스로를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 친구가 적지도 않았고 조용한 성격도 아니었다. 나름 교우관계도 원만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웃기는 포지션'에도 있었다.

어머니께, '엄마, 내성적인게 뭐야?'라고 물었더니, '하고 싶은 말을 자신있게 못하고 자신감 없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정체성이 '콕'하고 들어와 가슴에 박혔다. 실제 당시 나의 성격은 내성적이기보다 '내숭이 많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꽤 내숭이 많은 편이었다. 특이 어린 시절이 그렇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어른이 있으면 '예의범절'이라는 이상한 근거로 입을 다물었다. 그게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내성적'이라는 정의를 내린 후,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 말'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 버리곤 했다.

'아! 맞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

꽤 왈가닥하던 어린 시절에 '진정제 한 방 맞고 풀이 죽은 것처럼 성격은 정말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그러고보니 비록 거짓이라 하더라도 아이에게 정체성이 정해질 만한 이야기를 일찍부터 해주는 것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해준다면 최대한 좋은 점을 찾아 이야기 해주는 편이 맞을지 모른다.

엄마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가끔 아이 통지표와 상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교 1학년 통지표'라고 검색했더니 기록과 자랑이 적당히 섞인 기분 좋은 글과 사진들이 나온다. 이 글 이후부터 그 글과 사진 사이에 이 글과 사진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떤 악의적인 반응으로 초등학교 상장은 '개나소'나 받는다는 반응도 있다. 아마 '너무 반색하지 마시오. 그거 대단한거 아니니까.'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개나 소가 받았다고 받은게 덜 대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개나소나 받으면 어때, 나도 받으면 되지 싶다.

또한 상장 하나 없어도 큰 문제없다. 학교 내부 원칙에 따라 상장을 많이 주는 학교도 있고, 안주는 학교도 있단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좋은 상황이던, 좋지 않은 상황이던 그것을 대응하는 부모의 문제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다보니, 삶에 언제나 칭찬받는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낙담할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성적?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나가 놀아라' 했으면 나의 성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그때 어른들이 정의해주신 성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좋으면 좋은대로 좋고, 안좋으면 또 안좋은대로 좋아야 좋은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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