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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발칙한 소재, 충분히 공감하게 하는 문체_비눗

by 오인환

사랑하는 사람이 '비눗방울'이 되는 약을 먹었다. 점차 몸이 투명해지더니 가벼워서 자꾸만 하늘로 날아가려고 한다. 날아가는 것을 묶어 잡아 두고 짧게 여행을 한다. 생각지 못한 어느 순간, 꽤 경쾌한 소리 '퐁!' 하며 그가 터져 버린다.

이런 허무맹랑한 소재를 참고 읽어 낼 수 있는가. 소재만 듣고서는 그렇지 못한다. 다만 '이유리 작가'의 '글'은 다르다. '황당무계'한 소재지만 '소재'의 참신함이 소설의 매력이 아니다. 소재는 배경이다. 소설의 매력이라면 관계와 감정이다. 소설에 깊이 공감하며 읽는다. '논리'와 '개연성', '설득력'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하며 읽는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차인표 배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같은 일상을 반복한단다. 항상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며 살게 된단다. 고로 어제와 같은 하루를 오늘 반복하고 그것을 내일도 반복할 것이라는 특별함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기대감은 10대, 많아도 20대 초반 정도에 끝난다. 삶을 즐거운 '연극'처럼 하던 호기심은 완전히 사라진다. 30대가 접어 들면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의 단계로 들어간다. '꿈', '일', '사랑'은 모두 반복되는 루틴에서 빛을 상실하고 일상의 색깔을 갖게 된다.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같은 그런 삶을 반복하면 자기 세계에 점점 갇힌다.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비슷한 생각만 한다. 나이가 들면 '선택'이 빨라진다고들 한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내리는 선택이 과거에 이미 판단 내린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비슷한 선택에 대한 과거 결론이 데이터가 되어 점점 질문에 골똘해지는 진중함이 없어진다. 반사적이고 충동적이고 관성적이게 된다. 그냥 그래왔듯 그렇게 선택하게 되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미' 판단 내려진대로 행동한다. 생각해 볼 일이 점차 줄어든다. 편협해지고 자기 세계가 확고해진다. 그것이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차인표 배우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보는 일이 독서라고 말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대한 공감력을 불러 일으킨다.

'이유리'작가의 글은 소재의 스펙트럼이 꽤 넓다. 중년 레즈비언의 이야기도 그렇다. 확률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내가 만든 세계에 빠져 다양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소매업 가게 매니저로 일한 적 있다. 당시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캐셔'를 하며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물건을 내주었다. 그때 직원들이 하던 말이 있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장애인들이 많아요?'

실제 뉴질랜드에서 장사를 하다보면 이상하리만큼 '장애인'들이 많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 정신 지체,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 그러나 장애인 비율은 실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크게 다른 것이라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이런 시선의 차이가 그들을 밖으로 나다닐 수 있게 하는지, 그렇지 못하게 하는지를 만들 뿐이다.

'동성애'에 대해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던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사랑 방식에 가타부타할 일이 뭣이 있을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비슷하고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공감결여 상태로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역사가 통일된 왕조를 오래 지속했기 때문일까.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며 사회를 안정적으로 지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상황에 매번 부딪치던 매너리즘이 결국 획일화가정답처럼 했을 것이다. 나이 든 사람처럼 어제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같을 사회를 500년 간 유지하다보니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변해 간듯 하다.

'킹크랩'을 먹고 싶었던 한 젊은 부부가 '킹크랩'을 훔쳐다가 라면에 넣어 먹는 이야기.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 없으면서도, 마치 난 지난 추억을 상기하듯 읽었다. 논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다. 먹기 위해 살려두던 녀셕에게 정이 들고, 그러나 그것을 결국 쩌먹는 이야기. '환경'이나 '동물'이런 거창한 것을 떠나, 그냥 상황과 내용이 아니라 상황마다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했다. 관련 생각은 스치면서 누구든 해볼법하다. 죽어 있는 남의 살갖을 뜯어먹고 삶을 유지하는 우리의 '생'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본 적 있나. 혹은 그런 표현을 읽어 본 적 있나. 모든 일상은 표현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표현하기에 따라 맛있는 식사가 되고 때로는 공포물의 한 장면도 된다. 어미닭이 사랑과 정성으로 품던, 병아리 되지 못한 알을 꺼내다가 달군 후라이팬에서 볶아 버린다는 묘사 정도라면 충분히 '계란후라이'도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묘사하는지 그 방식만 다르게 해석해도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꽤 다양한 삶을 사는 셈이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이야기하기 나름이고, 보기 나름이고, 말하기 나름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표현을 한번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은 굉장히 단조로워 보이지만 사람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머릿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보는 것이 어쩌면 독서의 매력이다. '이유리 작가'의 글은 흥미로운 소재를 '대단하지 않은 일 마냥' 배경에 넣고 감정과 묘사를 서술한다. 서술자가 담담한 표정을 가지니 독자도 저절로 담담하게 읽힌다. 그리고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 본 적 없는 많은 사람과 생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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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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