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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아이가 시를 썼다_그러하다...

by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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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시를 썼다.



*


우리는 우리고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우리 모두


행운이 찾아온다.


*



한 문장 한 문장이 단단하다.


존재를 정의하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행운'으로 마무리 된다.



단순한 형태의 선언인지 모른다.


'나는 나다'


이 문장이 흔들릴 때가 있다.


살면서 '나'를 잃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의 세계 안에서 녹아들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나다.'라고



어른이 되면서, 행운을 의심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웠다.



'행운'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고 비를 기다리는 사람과 옷을 널어 놓고 햇볕을 기다리는 사람의 행운은 그렇게나 다르다.



모두에게 같은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이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찾아와야, 그것을 '행운'이라고 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나'와 '너'는 '행운'의 형식이 다르다. 그러나 같다면 '나'와 '너'가 꽤 비슷한 바운더리 속에서 삶과 상을 짓고 살고 있다는 의미다.



객체와 단체는 서로를 물고 물리는 관계를 갖고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타고 있는 배가 뭍으로 향하면 누군가는 아쉬워하고 누군가는 흐믓해한다. 다만 이 둘은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점에서 운명을 공유한다.



그래서 '우리'라는 것은 '나'와 '너'가 함께 하지만, 정작 '나'도 '너'도 아닌 제3의 무언가가 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제3의 정체성에게 모두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은 어쩌면 3~400년마다 한반도에 찾아온다는 개기일식과 같은 우연이지 않을까.



아이는 그저 몇 마디 적었을 뿐인데, 나는 이렇게 오래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한 문장 하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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