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되니 가치관도 많이 바뀐다. '한방', '비밀', '요령', '빠른' 이런 키워드에 현혹된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그것들이 거짓이라는 사실도 안다. 불혹을 앞두니 실제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에 대한 실감을 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지속성'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만 더 먼저 알았더라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속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삶'을 '주식투자'에 비교하자면 '급등주'를 쫒는 것보다 일정하고 지속적인 수익을 얻어가는 것이 승리법이다. '복리'라는 장기적 시점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이겨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요즘 매번 깨닫는다.
꽤 감성적인 단어같지만 '다정함'은 이성적으로 봐도 승리를 위한 단어다. 스스로를 '범인'으로 인정할 수 없던 젊은 시절을 지나고 어느덪 스스로의 위치와 환경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적인 나이'에 부딪혔다. 마법같은 변화는 대체로 '사기', '허풍', '꿈'과 같았고 거기서 승리한 이들은 수많은 미혹자를 양산하고 다수의 실패중 소수의 성공을 부각하며 홍보해 나갔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간' 중 기억에 오래 남는 이들은 다정한 사람들인 듯 하다. 그들의 특징이라면 '여유'가 함께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정함이란 이타적인 마음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와는 다르다. 그것은 안으로 차고 흘러넘쳐 밖을 채워주는 화수분 같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 악하고, 조금씩 선하지만 우리가 바쁠 때는 조금 더 악해진다고 한다.
A동에 있는 사람들에 B동으로 가야 할 미션을 주고 그 길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두었을 때, 임박하게 출발한 이들은 외면했지만 여유있게 출발한 이들은 길가에 쓰러진 이들을 모두 도왔다는 이야기다.
한번은 약속을 앞두고 ATM기기에서 은행 업무를 보고자 했다. 약속시간은 거의 임박했다. 짧게 볼일을 보면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길거리에 ATM기계가 있었고 기계 안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계셨다. 어르신이 나오면 후딱 처리하고 나와야지, 생각했다. 기다렸다. 1분이 지나도, 5분이 지나도 어르신은 그 안에서 무얼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약속시간에 늦을 것만 같았다. 조바심이 나서 노크를 했다. 어르신은 잠시 이쪽을 살펴보고는 다시 한참 ATM기기에 서 계셨다.
씩씩거리며 ATM기기를 포기하고 약속장소로 떠났다. 눈치없이 한참을 혼자 ATM기기를 사용하는 어르신을 생각해서 그렇다. 생각해보자면 사실 별일 아니다. 조금더 기다리다가 다른 ATM기기를 이용해도 괜찮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나 확인하며 시간을 보내도 괜찮았다. 다만 '약속'이 임박해지자 조급한 마음에 화가 올라오는 것이다. 그렇게 맘편치 않게 약속장소에 도착한 뒤로도 기분 나쁨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만 여유있게 약속장소로 출발했다면 어땠을까, 그 조급함 때문에 '모난 인간'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자책했다.
다정함은 그런 의미에서 '여유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언젠가부터 '여유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유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은 '삶의 루틴을 지키며 시스템화 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저절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낸다.
특별히 무언가에 늦을 필요도 없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필요도 없이, 아주 조금씩 하루하루 루틴을 지키며 놓치지 말고 할일을 해내는 것. 그러다보면 어떤 갑작스러운 일에도 여유있게 대처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이기는가, 보면 대체로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결국은 다정한 사람이 남는다. 성공한 꽤 많은 사업가들이 '다혈질스럽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많지만 그들의 사생활이 모두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다 써보지도 못할 물질적 부를 얻기 위해, 날카로운 사람이 되느니, 스스로 풍족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의미에서 '세속적 성공'을 이룬 '괴팍한' 누구보다 더 나은 점이 있고 나아질 여지도 충분하다.
개중 하나라면 '다정함'이라는 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