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책의 책

by 오인환


서점에서 눈에 띄는 책을 보았다. 한참을 쥐었다. 펴보았다. 꽂아 놓았다가, 집어 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긴 하지만, 두께가 부담이 됐다. 결국은 이 책을 다시 꽂아 놓고 서접을 나왔다. 그러고 하루 뒤, 나는 결국 인터넷 서점으로 이 주문하고 말았다.


책은 말 그대로 책의 역사에 관련한 내용이다. 책의 소프트웨어적인 내용보다는, 책의 아날로그적인 하드웨어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책은 조금 두꺼운 편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편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속도가 나지 않는 책이기도 했다.



나는 독후감을 쓰지 않았지만, 반일 종족 주의라는 책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욕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던 정보들에 한 번씩 의문을 갖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이다. 모든 내용에는 이면이라는 것이 있고, 이 모두를 들어보고 자신이 판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이미 편단 끝낸 내용을 인지하는 것보다 스스로 양쪽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든 균형에 대해서 이야기 한 이유는, 내심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학창 시절 배웠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 다리니 경'이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한 '직지심체요절'에 대한 내용이 적어도 한 구절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혹은 몰라도, 팔만대장경 정도라도 언급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을 일본의 '백 만탑 다라니'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에 대해 제작 장소와 시기가 불분명하다고 언급하면서, 일본 목판 인쇄물을 인류 최초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감정적으로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문뜩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다.'라는 명제만큼, 일본이 독도가 '독도가 일본땅이다.'라고 우기는 일본 측의 근거를 우리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다. 상대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이 나의 이야기만 옳다고 믿는 것도 상당하게 위험한 일일 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진실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상대가 가지고 있는 근거를 이해하고, 반박할 수 있는가가, 실제 우리에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이 책에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국'에 관한 언급은 '두 번' 정도 있다. 심지어, '한국'을 칭하기는 했지만, 아주 간략하게 언급 정도만 하여서, 세계 인쇄 역사에서의 한국 역사가 의도적이던 비의도적이던 축소되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인류에서 '책'이라는 보편적 문화를 생산해 내는 과정에서의 입지는 생각보다 크다. 심지어 '일본어' 고유 명사로 사용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과연, 거짓을 믿는 세계를 미워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는 것을 근본부터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일까? 갈등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한문 선생님은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는 '반일'은 '열등감'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제보다 더 심하게 집 밟힌 '몽고'를 욕하지 않는 이유를 경제적 우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어린 나이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일부는 공감하면서, 일부는 공감하지 않는다. 실제로 '반일'이라는 키워드는 실제로, 정치적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정치적 우파가 정권을 잡을 때는 '공적'을 '북한'으로 규제하고, 정치적 좌파가 정권을 잡을 때는 '공적'을 항상 '일본'으로 두었다.

사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던, 내부 결속을 위해서, 혹은 정치적 지지율을 위해서는, 어떤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 나 또한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그들을 미워하면서도, 실제로, 베트남에 파병하여,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주기도 했고, 제주 4.3 사건에서는 제주도민 '10명 중 한 명'을 총살 및 처형시켰다.

어떤 부분을 부각하는지에 따라서, 같은 역사도 매우 다르게 설명되고 인식되어진다. 나는 현대 정치가 만들어낸 역사의 해석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존재일까?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이 책이 한국의 업적을 축소시키고, 일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못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의 중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감정이나 역사의식은 배제되어 있고, 오직 '책의 역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 와중에, 보편적 세계가 이해하는 역사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일본에 대한 인식이 스치듯 언급됐을 뿐이다. '실제 우리 민족이 세계 역사와 발전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가?'이런 생각은 이 '책의 역사'로 간략하게 볼 수 있었다.

실제 불교에서는 '현실'에 굉장한 초점을 둔다. 미래는 환상과 같은 것이며, 과거는 해석하기 나름일 뿐이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연 '찬란한 한민족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정도이다. 사실 세계사에서 한국의 역할이 이토록 중요해진 것은, 5,000년 한민족 역사상 지금이 가장 찬란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를 선두하고 새로운 문화를 계속해서 창조해내는 '스마트폰'이라는 발명품은 애플 사의 스티브 잡스가, '삼성전자'로 '연락'을 취하면서 시작했다. 우리가 세계를 선두해 내는 리더는 아니지만, 분명 그 부속으로 대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미국을 이끄는 FAANG은 반도체라는 하드웨어가 기본이 된다.

오늘 삼성전자는 역사상 신고가를 만들어 냈다. 나는 삼성전자의 주식을 1주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삼성전자 주식 가격이 바닥이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주가가 무 높다고 생각한다면 삼성전자 주식의 PER만 보더라도 알 수 있으며, 애플사의 주식 가치를 보면 더욱 알 수가 있다.



결과적으로 책은 인류의 최대 발명품이다. 인류에게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최고 간편한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 발명품을 우리 현대 인류는 '스마트폰' 문명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더 이상 '책' 이상의 발명품에서, 우리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입지를 가진다.

과거에 대한 폄하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하지만, 1600년 전 광개토대왕이 만주 벌판을 달렸다는 자부심만큼이나, 현대 대한민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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