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얼마 전부터이다. 독후감 쓰기, 감상문 쓰기, 일기 쓰기 등은 학교 다닐 때, 가장 귀찮은 숙제 중 하나였다. 특히나 '독후감'이라는 말 자체에 주체가 '나의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대충 분량이나 때워야. 혼나지 않고 넘어가는 귀찮은 업무 정도였다.
심지어 책을 좋하면서도 독후감을 쓰지 않았다. 그때는, INPUT과 OUTPUT의 영역이 공존한다고 믿었다. 학창 시절 영어 듣기 평가에서 나오는 원어민들이 대화 내용을 듣고 문제를 풀면서, 그들이 나눈 간단한 대화를 해외에서 입조차 뻥끗하지 못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깨닫지 못했을까?
우리는 흔히 '영어를 잘한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 밖에도 '중국어를 잘한다.', '일본어를 잘한다'라고 사람의 외국어 능력을 평가한다. 하지만, 유독 모국어인 한국어에서는 '말 잘한다.' '글 잘 쓴다.'라는 표현 정도만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글 잘 읽는다'와 '잘 듣는다'는 어디로 간 걸까?
사실 외국어를 열심히 하다 보면, 전체적으로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다.'라는 말부터가 잘못됐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난 후부터 언어 공부를 했다. 때문에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유리한 점이 많다. 내가 습득하는 과정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라거나 어린 시절부터 생활하다 보니, 저절로 잘해진 케이스는 아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소리'단위인 '언'(듣기와 말하기)과 문자 단위인 '어(읽기와 쓰기)를 따로 배우는 것이다. 이는 동일 외국어 범주에 속해 있는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에 서투른 사람이 있는 반면, 글로는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면서, 실제 말로는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그 두 가지의 연계성이 꽤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해외 유학생들(어학연수 포함) 사이에는 3.3.3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첫 3개월이 흐르면 귀가 트이고, 3년이면 말이 트인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30년이 걸린다.
실제로 언어를 공부할 때, 가장 빨리 트이는 것은 '듣기'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해외생활 3개월에 이런 혼동을 겪는다. 분명, 들리는데, 말이 나오지 않아 당황하는 경험을 수차례 겪다 보면, 왜 말하는 것은 빨리 되지 않을까 하고 답답해한다. 그리고 무조건 많이 듣다 보면 저절로 말이 나올 거라는 판단을 해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많이 들으면, 듣기가 좋아지고, 많이 말해야 말하는 실력이 좋아지고, 많이 써야 쓰기 실력이 좋아지며, 많이 읽어야 읽는 실력이 좋아진다. 이 4개의 영역은 완전히 분리된 독립체로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가 모국어가 한국어라고 해서, 당신의 글쓰기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만큼의 글을 읽고, 얼마만큼의 말을 하며, 얼마만큼의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가장 기본적인 INPUT형 인간이다. 듣기와 읽기에 굉장히 적응해 있으면서, OUTPUT에는 상당히 약한 성격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말하기와 쓰기를 마음대로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나의 성향은 나를 교육시키고 그 교육이 나의 성향을 만들어 갔다.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기회'라는 것은 스치고 지나가는 택시와 같다.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택시 기사가, '혹시 택시 기다리시나요?'하고 묻지 않는다. 스치듯 달려가는 택시에 손은 흔들어 잡는 것처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회를 맞이 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민 독서'라는 책은, 내가 독서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찾아서 읽던 과정 중에 읽은 책이다. 저자는 '기생충 박사'로 알려진 '서민 박사'님의 글이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그는 아주 독특하면서, 직관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예민할 수 있는 문제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수 있는 글들도 무척이나 많다. 나 또한 읽으면서, '이런 건 좀 위험한데?'생각했던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글은 독서 관련 인문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라기보다, 독서에 대한 에세이라고 보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책을 읽는 일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습관을 가진 그는 그의 책에서 그가 책에 대한 완고한 믿음이 어느 정도로 굳혀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말에는 한 30% 정도를 공감하고 70% 정도는 나 개인적인 다른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번 독후감에서는 그 부분은 묻어두고, 단지, 그가 가진 책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앞서 말한, INPUT과 OUTPUT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읽는 것은 쓰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동떨어진 영역이지만, '읽다 보면, 쓰고 싶어 진다.'는 그의 말 하나 때문에, 이 책의 많은 단점을 잊었다.
나는 예전부터 독서 철학이 있다. '단,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든다면, 나머지 500장이 나와 맞지 않더라도, 소장하고 싶다'는 철학이다.
그 나의 철학에 따라 이 책은 나의 서재에 지금 소장되어 있다.
읽다 보면 쓰고 싶어 진다. 쓰다 보면, 말하고 싶어 진다.
내가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마이클 소프트사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의 말 때문이었다. 그는 엄청난 독서광인데, 언제부턴가, 블로그에 그가 읽은 독후감을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과정은, 자신이 읽은 책의 앞이나 뒤에, 간단한 책에 대한 느낌을 적어두었는데,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고 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심지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열심히 대중에게 자신의 '말'과 '생각'을 OUT 하게 되었다.
실제로 대량의 INPUT은 OUTPUT의 열망을 만들어낸다. 나도 많이 읽다 보니, 잊어서는 안 되는 부분에 대한 기록이 필요했다. 또한, 글 쓰는 사람과, 글 읽는 사람이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단지, 주고받는 정보 사이에,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도리가 아니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책이 발간되었다.
정~~ 말, 솔직한 리뷰를 해보자면, 이 책은 완성도 있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커다란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원석'을 발견하고, 깎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작가는 '원석'을 던져 주었다. 잘 깎고 보물로 만드는 것은 받아들이는 독서가의 역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