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독서가 취미입니다. 이 책을 읽고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전자책 구매를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한국을 온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그간 원서를 읽은 적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자막 없이 보면서 '듣기는 아직 괜찮구나' 했지만, 영어를 문자로 접하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해외에 있을 때, 나는 다 읽지도 못하면서 서점에서 책을 사고 나오는 일을 즐겨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는 불가피해가 내가 수집해 오던 수많은 책들을 공항에서 폐기 처분해야 했다.
원서를 읽다 보면, 당연히 모르는 단어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르는 단어에 대해 작가는 여의치 말라고 한다. '모를 수도 있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냥 전체적인 테두리만 이해하라고 한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영어에서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를 찾다 보면 전체의 문맥을 놓치기 십상이다. 한국어로 되어 있는 한국어 책을 읽으면서도 어려운 단어나 용어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길 때가 많다. 가령 이해할 수 없는 고유명사나 전문 영어들은 '이런 게 있나 보구나' 하고 넘어갈 뿐이다. 다만 다독하다 보면 계속해서 언급되는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문맥에 의해 어떤 것들인지 유추가 가능하다.
책을 읽을 때는 흥미가 있는 것들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나도 집에 아직 읽지 않은 원서들을 잔뜩 사두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사둔 책들은 완독 하지 못하고 중간까지만 읽고서 다시 책꽂이에 접어두었다. 내가 가장 정신이 업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은 외국어 정보이다. 나의 뇌를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할 때, 생각 없이 멍하게 볼 수 있는 가벼운 모국어 영상들을 시청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하루, 이틀 정도 원서 독서를 멈추게 되고 비로소 다시 책을 책꽂이에 집어넣게 된다.
예전 연구 결과에서 두 개 이상의 언어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한 다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자아를 갖는 일과도 같다.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비하여 사용하는 뇌의 영역이 커진다. 나는 마윈이라는 사람을 좋아한다. 마윈은 원래 영어 강사였다. 그는 지금 엄청난 부자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도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닌다.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어린 친구들은 앞으로 '번역기'가 잘 나오기 때문에 영어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마윈은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번역기는 다중언어 사용자의 수요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가 지금도 활발히 사용되지만 누구도 대화 대신 카카오톡을 이용하지 않는다. 웃으며 모국어로 친절하게 말하는 비즈니스 상대의 첫인상도 번역기는 대체하지 못한다. 우리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할 때, 그 기본에는 의사소통이 있다. 의사소통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기본 중 기본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 계발 영역의 한 부분'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의사소통 능력의 범위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내가 이해하는 사람들과 문화가 커진다면, 내가 맞이할 기회와 시선의 확장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많은 책들은 해외에서 베스트셀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읽는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들도 많다. 따지고 보자면 베스트셀러보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에서 배워지는 것들이 훨씬 많은 듯하다. 실제로 출판이 쉬워진 요즘,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출판물로만 내 독서력을 담아둔다면 더 넓은 세상을 유영하는 영어 사용 독서자들에 비해 같은 시간과 같은 노력의 독서를 하면서도 태생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세계의 거의 절반 이상의 출판물들이 영어로 쓰이고 있다고 하고, 영상물의 90% 이상이 영어라고 한다. 단순히 내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접하게 되는 정보의 양이 극 소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똑같이 독서를 좋아하는 영어 사용자는 같은 독서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가 있다. 이런 이유로 3개 국어의 독서력은 있으면 좋은 듯하다. 그 간 생각해보니 내 독서력은 작은 종지 그릇에 담긴 물이 불과했다. 어쩌면 해외에서 10년을 생활했던 나의 이력이 나의 독서력의 대상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더 많은 책들을 번역가의 창이 아닌 세계 공용어인 영어라는 보편적 감성으로 직접 들어보는 일을 해봐야겠다. 앞으로 블로그에 영어 원서 독후감이 가끔 올라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