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었다. 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을 뿐, 어떤 이유에서, 어떤 원리로 책을 읽어야 훌륭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TV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받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문도 들었다.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베스트셀러로 머물러 있는 이 책을 보면서, 언제 한 번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나이의 독자도 아니거나와, '공부'를 시켜야 하는 부모도 아닌 내가 읽을 책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 이 책을 읽기를 미루었다. 하지만 예전에 갖고 있던 '왜 글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풀어 줄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불확실한 호기심으로 책의 첫 장을 폈다.
책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맞고 어떤 분에 있어서는 의문이 가기도 했다. 어떤 나의 이웃 블로거가 쓴 이 책에 대한 비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 또한, 그 글에 일부는 동감하면서도, 강사로서 학생을 지도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느 부분으로는 동감하기도 했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학생을 조금 대하다 보면, 이 학생이 어느 정도까지 학습 능력이 있을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어휘력과 문해력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오래전, 진우(가명)라는 초등학생을 가르쳤던 학생이 떠올랐다. 진우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여타 다른 친구들과 같이, 핸드폰 게임을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얼떨결에 맡게 된 이 초등학생을 꽤나 긴 시간 동안 과외 비슷하게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겪었던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고 한다.
진우의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변호사라고 했다. 아버지는 연세대학교에서, 어머니는 이화여대에서 대학을 졸업하시고,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은 예전 강의에서 '공부 머리는 유전이다.'라고 말했다. 상당히 불쾌한 말이지만, 내가 사교육에 몸담아보면서, 일부는 공감하고, 일부는 공감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화가 나고, 그것이 아니라고 따지고 싶지만,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듯, 진우의 공부머리는 탁월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와 비슷한 경우가 상당하게 많았기 때문에, 어쩌면 이는 속상한 일이기도 했다. 꼭 아닌 경우도 있지만, 7번 읽기 공부법의 저자인 야마구치 마유도 2002년 동경대를 입학하고 법학부 3학년 때 사법시험을, 그 이듬해에 국가공무원 1종에 합격했고, 대학교 4년 낸내 전과목 최우수상을 받아 수석으로 졸업하여 현재 변호사로 재직하는 수재 중 하나였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자신을 처음에는 학창 시절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갑자기 위와 같은 공부 능력자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글의 초반에 나오는 소개 중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직업이 의사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이 매년 시행하는 '신입생 특성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 비율은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연구원, 교사, 교수 등 전문직이 25~30%를 차지했고, 경영주나 대기업 간부, 고급 공무원 사회단체 간부 등의 경영직 관리인이 15~20%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40~50%에 가까운 서울대 입학생 부모는 고학력자였다. 반면 아버지의 직업이 녹축 수산업인 학생은 전체 1~3%, 비숙련 노동자는 1~2%, 무직이 1~3%라는 통계가 있었다.
이런 통계를 보자면, 사람들은 학력을 부의 세습과 연관 짓는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고액과외를 통해, 좋은 대학을 입학시키고, 좋은 직업을 갖게 한다는 논리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어째서 공부를 잘한 부모의 자식은 그 공부머리를 유전할까?
나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습관은 노력이나 흥미 보다도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진우는 매일 조금씩 한자를 공부했다고 했다. 공부라기보다 습관처럼 한 자 한 자 공부한 듯했다.
중학교 3학년 혹은 고등부를 가르치면서도 영어에서 사용하는 한자어를 모르는 학생들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진우는 이미 모든 한자를 다 깨우치고, 내가 하는 말을 이해했다. 사실 독서 능력을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글을 익힐 나이에, 자신이 모르는 단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독서 말고도, 유튜브나 티브이 시청들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 한대로, 독서가 중요한 것은 문자화 되어 있는지의 여부인 것 같다. 소리 정보는 사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너무나 모호하고 순식간이다. 어휘를 구성하는 글자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했다면, 한자라는 문자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어찌 됐건, 사람이 소리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는, 집중력의 한계도 있을뿐더러, 바로 흘러나오는 다음 소리 정보 때문에, 하나의 어휘를 깊게 고민할 시간 또한 줄어들게 된다. 진우는 문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본 '한자'가 완성되어 있었다.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한자라는 문자가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 아이는 벌써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중학생들에게 설명하기 힘들었던, 형용사의 역할에 대해 더 쉽게 설명이 가능했다.
나는 어휘력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휘력이 중요한 이유는, 전달받고 주는 도구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의 기준이 된다.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듣더라도, 아무리 좋은 책을 수 십 번, 수 천 번 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도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 내용을 전달받을 수 없다.
반대의 경우로 승윤(가명)이라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이 학생은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핸드폰 게임과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사는 그 친구는 어휘력이 너무 엉망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루에 교과서 2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어휘력이 약한지를 집안 분위기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승윤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다 맏벌이를 하였고, 승윤이는, 학교를 끝나고 나서는 컴퓨터 게임과 핸드폰 게임을 제외하고는 부모와 대화할 시간이 적었다. 집에 돌아온 부모님은 바로 TV를 켜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게임을 하신다고 했다. 혼자 있는 승윤이는 혼자서 게임을 하거나, 부모님의 모습처럼,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보며 일과를 보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아무리 가르쳐도 다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승윤이에게 나는 깨달은 게 있다. 승윤아 "민주주의의 의의"에 대해서 지난 시간 내내 이야기했는데 한 번 이야기해볼래?
승윤이는 민주주의라는 글자 하나하나가 한자로 되어 있는지 몰랐고, '의의'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뜻 의를 쓰고 의미할 때 '의'자라고 설명을 해 주고, 교과서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어휘를 설명해주지 않고서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본인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 단어에 대한 호기심도 없이, 암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영어 시험을 치르는데, 내가 냈던 문제 중에 'mislead (호도하다)'라는 단어가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 부분을 외우고 단어시험을 모두 맞게 치렀다. 그러다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니들 '호도하다.'가 무슨 뜻인 줄은 알고 외운 거야?"
문제를 맞힌 모든 학생이 호도하다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답을 작성했다. mislead는 mistake 할 때 mis(잘못)와 leader(리더)할 때 lead(이끌다)가 합쳐진 말이니, 호도하다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는 '잘못 이끌다'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추해낸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상처를 치료하는데, 표면보다는 뿌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영어 공부나, 수학 공부, 국사 공부에 앞서, 한자공부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필수이다. 하지만 어휘만 알고 있다고 해서, 독서가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흔히 말과 글이라고 하는 매체는 하고자 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하고자 하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짜임새를 갖추게 되어 있다. 아무리 요즘 시대가 영상의 시대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논문이나 시험을 영상으로 대체할 수 없다. 문서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정보 저장과 전달의 최고의 매체이다. 그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간파하는 능력은, '의사소통'의 능력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일, 혹은 영화를 제작하는 일 등.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와 의사소통에 있어서 빠른 이해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에서 빠르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거래처 사장이 에둘러하는 표현이나, 신사업을 발표하는 기업의 프레젠테이션을 이해하는 일, 혹은 어떤 국가 정책에 대한 공문을 이해하는 일,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을 읽고, 참고하여 다른 새로운 논문으로 만들어 내는 이들.. 혹은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의 요구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장의 흐름과 고객의 필요를 파악해내는 능력을 가진 이들은 사회의 고급인재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부의 세습은, 마치 중세시대 신분을 세습시키거나, 재산을 세습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대부분의 부자나 리더들은 독서를 생활화하고, 그의 자녀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될까? 그들이 그저 재산과 신분을 세습하는 것으로 끝낸다면, 학력 따위는 필요가 없음에도, 이상하게도 그들의 자녀들은 고학력자들이 많다. 그것은 부모들이 필수적으로 고학력으로 그들을 만들어야 했다기보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도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들일 것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갖고 있는 작은 습관(읽는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고 모방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 머리를 위한 독서보다는 독서 머리를 위한 공부가 훨씬 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