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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발]어른의 어휘력_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나?

by 오인환


살면서 어휘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은 많이 없었던 듯하다. 수 천 자 짜리 영어 단어장을 가지고 다니며 암기하면서도 아무도 모국어인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우리가 앞으로 인생에서 '중국어가 중요하다.', '영어가 중요하다.' 해도 결국은 모국어가 가장 중요하다. 영어와 중국어는 외국인과의 소통에 조금 더 수월해지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도구일 뿐이다. 즉, 외국어는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못한다고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국어는 다르다. 모국은 모자랄수록 마이너스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파면을 명하던 날, 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 있었다. 69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 중 커다란 사건인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탄핵 소추 의결서를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을 접할 때쯤이었는데, 과연 누구에게 뭘 전달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였다.



단순 감기 같은데, 어린 시절 병원에 가면 나를 앉혀 놓은 의사 선생님이 종이에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말을 휘갈기곤 했다. 멀뚱하게 쳐봐 본다. 나는 그냥 '목이 아프다.'라고 말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무언가 영어 같은 걸 휘갈겨 쓴다.



사회적 방언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회 계층에 따라 다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한국인이지만 변화사가 사용하는 어휘랑 의사가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고 사업가가 사용하는 어휘와 선생님이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다. 때문에 앞서 말한 탄핵 소추 의결서를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을 접하더라도 어떤 누군가가 접했느냐에 따라 천 가지, 만 가지의 다른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준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어려운 정치나 경제 뉴스 기사를 쉽게 설명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같은 한국어도 번역과 통역이 필요하다.



책에는 책 읽는 이유에 대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는 행위란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산다는 대목이다. 책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유영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일을 벌이게 하는 매개체다. 사용 가능한 어휘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더 넓은 공간을 유영할 수 있고 더 많은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어휘는 그래서 중요하다.



책을 읽다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책을 붙들고 있으면서 어쩌면 이 시간마저 시간낭비는 아닐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책이 잘못 만들어진 건지 내가 잘못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없는 책장을 넘기며 비로소 이해하지 못한 한 권을 마무리 짓는 때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 날 문뜩 그것이 머릿속에서 이해될 날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때 다시 읽으면 그 이야기는 내 것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 책을 읽다 보면 도저히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책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고 다시 이해 못했던 전 책을 봤을 때는 이상하게도 술술 읽힌다.



"그... 뭐냐.. 지난번에.. 걔가 말했던 그거 있잖아~"



혹시 살면서 우리는 이런 식의 문장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진 않을까? 저자가 말한 어휘력이 부족하면 발생되는 현상에서 지시대명사의 남발은 너무나도 공감되는 나의 일상이다. 글을 쓸 때도, 한참을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네이버 검색창에 비슷한 단어가 뭔지 한참을 뒤지고서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기도 하는 나는 실제로 이런 식의 대화가 나만의 습관은 아닌 것 같다.



명확한 명사가 떠오르지 않아 지시대명사만 남발하는 언어 습관은 사람의 말에 신뢰를 잃게 만든다. 저자가 말한 73초 만에 1만 4000미터 상공에서 공중 폭발한 챌린저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챌린저 호에 탑승한 우주인들 중 의 한 가족이 챌린저 호를 바라보고 있던 사진이 있었다. 보도 사진에 있던 챌린저 호에 탑승자의 가족들의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진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진은 폭발 직전에 찍힌 감격의 눈물이고 보도 자료에서 슬픔의 눈물이라는 것은 거짓이었다. 이 이야기는 객관성을 증명하는 사진이라는 자료를 객관적이지 않다고 반박하는 듯하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진이 실제로는 폭발 전에 찍힌 감격의 눈물이었다니...



영상 매체가 커 저 가면서 활자 매체를 대체할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영상 매체는 '시각'과 '청각'만 충족시킨다.


[어제 만난 진우는 성격이 고지식했다.]


라는 표현이나


[나의 슬픔이 투영된 유리구슬]


따위의 표현은 절대 영상매체로 표현할 수 없다. 이는 활자 매체만이 가능하다. 우리의 감각은 오감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주라고 한다.


듣고, 말하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는다.



하지만 이는 실제 체험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감각들이다. 이 오감은 결국 이미지로 우리의 두뇌에 저장된다. 때문에 어차피 오감은 이미지로 가는 인풋의 재료일 뿐이다. 독서는 오감을 통하지 않고, 바로 뇌에 직접 자극을 주어 이미지로 연결시킨다. 이런 작용을 활발히 하기 위한 어휘력은 갓난아이나 고3이 아닌 우리 성인에게 더 필요한 일일 지도 모른다.



책 하단에 있는 단어의 뜻을 정리해 놓은 부분은 또한 많은 도움이 된다. 마치 언어문제집을 보는 듯 하지만, 실제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문맥상 넘어가는 단어들의 진짜 뜻을 이해할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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