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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서재에 리클라이너 의자를 들였다.

by 오인환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서재에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리클라이너 하나가 있어야겠다 싶어 리클라이너 의자를 들였다. 나의 서재는 나의 서재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놀이방이기도 하다. 의자가 책을 등지고 공간이 넓은 방향으로 돌아가 있는 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이다. 방향을 이렇게 해놓고 보니 자기들끼리 놀다가 갑자기 달려오는 아이에게 눈을 맞출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 또한 아버지가 책을 보는 모습을 보니 좋을지도 모른다. 서재와 놀이방을 함께 해서 좋은 점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보통은 거실에서 아이들이 놀고 나는 침실에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침실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지저분하게 놀지 못하도록 훈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자니 그것도 별로였다. 서재의 반대쪽에는 사진에 찍신 책 보다 더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그 책들 밑에는 아이들 장난감들이 규칙 없이 늘여져 있다. 색연필과 노트가 아무렇게나 쏟아져 있어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원래 서재는 한쪽 면을 비워 놓고 빔프로젝트를 이용해서 영화를 보는 공간으로 사용했었는데 점점 책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벽면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고서 나의 생활 패턴 중 가장 큰 변화는 영화를 급격하게 보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유학할 때부터 엄청난 영화광이다. 그 전에는 간혹 보기는 했지만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유학하면서 외로운 유학 시간을 함께 해 주었던 건, '책'이 아니라 '영화'였다. 영화는 한국에 대한 향수를 잊게 해주기도 했지만, 영어 공부에도 큰 도움을 준 존재이다. 한 영화를 꽂이면 수 천 번을 돌려보는 나의 성향에,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실제로 나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음향만 추출해서 소리로만 들을 정도로 영화에 미쳐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빠가 영상을 보는 모습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내가 유학 가기 전, 나는 책을 좋아했다. 그런 이유로 이제 다시 나의 취미 생활이 영화에서 책으로 바뀌면서 아이들은 책을 보는 아버지를 가장 많이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4살인 아이들의 유치원 가방에 단어 카드와 아기책 한 권씩을 꼭 넣어준다. 아이들이 읽건 말건 무조건 넣어주고, 외출할 때는 "아기들~ 책 챙겼어?"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하율이 다율이는 "아!! 맞다!" 하면서 책을 챙기기도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안나 공주'라고 착각하고 산다. 아이들이 가끔 '콩순이나 키키 묘묘' 등을 보여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어? 핸드폰 보면 울라프 되는 거야~'라고 하면 아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데 요즘 그 재미로 산다. 아이들은 아빠의 무릎에서 아기책을 자주 본다. 자주라고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꾸준히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어느 날, 농담으로 '유치원 가면 선생님한테도 읽어달라고 그래 봐~'라고 했더니 '안 읽어줬어~'라고 말하는 하율이가 기억난다.

그냥 물어봤던 일인데, 아이들이 이미 선생님한테 읽어달라고 했었나 보다. 선생님들 바쁜데 괜히 귀찮게 됐나. 싶기도 했지만, 어쨌건 아이들이 책이라는 것에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될 수 있도록 나름의 최선은 다하고 있다. 며칠 전 이마트에서 충전식 스탠드를 구매했는데 책을 볼 대 몹시 좋다. 한 번 충전하면 꽤 두꺼운 책을 한 권 다 읽을 때까지 충전하지 않아도 끄떡 이 없다. 요즘 읽는 책들이 참 본의 아니게 두꺼운 책들이 많은데 두꺼운 책들에 파묻혀 있다 보니, 세상 복잡한 일들을 잊고 살아가는 듯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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