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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발] 내가 책 읽을 때 필기하지 않는 이유

by 오인환


독서법은 상당히 다양하다. 책의 모퉁이에 필기를 하면서 읽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는 법도 있다.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접어가며 읽기도 하고 필사를 하기도 한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법과 비슷한 분류의 책을 여러 권 읽는 방법도 있다. 일단 나는 해당되는 거의 대부분의 방법을 모두 써 본 듯하다. 지금도 나는 책과 상황에 따라 필기를 하기도 하고 모퉁이를 접기도 하며 밑줄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그냥 읽는 것이다. 이유는 상당히 단순하다. 독서할 때 온갖 준비물이 갖춰진 상황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다. 잠에서 눈을 뜨고 나면 핸드폰으로 시간을 살피고 대략 몇 개의 앱을 확인한 후 나의 눈은 책으로 간다. 책가방에는 항상 3권의 책을 넣어두고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면 훌러당 책 한 권 꺼내어 읽는다. 잠시 짬짬이 난 시간에 훌러덩 책 하나 꺼내 읽는다.



노트 필기를 하지 않으면 금방 증발하기 때문에 독서의 효과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급한 대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놓거나 핸드폰 음성 녹음 혹은 받아쓰기 기능을 통해 저장해 둔다. 그도 아니면 블로그 글쓰기에 주요한 문장을 몇 개 담아두고 저장 버튼을 눌러둔다. 그리고 독후감을 쓸 때 그것들을 모아서 다시 읽어본다. 나처럼 필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독'인데, 비슷한 내용이 다른 분야 혹은 다른 책에서 다시 한번 나오게 되면 명확하지 않던 기억들이 점차 명확해짐이 느껴진다. 사실 필기를 하면 글의 내용의 전체 흐름이 잠시 끊기기도 하고 감명받고 재밌게 읽던 책의 흐름이 끊어지기도 한다. 간단한 연필 한 자루로 밑줄을 긋는 것도 가끔 사용하는 독서법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든 짬짬이 시간에 언제라도 '휙'하고 꺼내보는 편리한 독서법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필기를 하며 읽어봐야지'하는 마음을 내어 수개월에 한 번식은 필기도구를 구매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필기하면서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피노키오'라고 적혀 있는 나무 책상과 의자를 부모님은 내 방에 넣어 주신 적이 있다. 정말 멋진 책상이었다. 시험기간에 나는 추운 탓에 보일러 난방을 켜놓고 이불속으로 학습지를 들고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학습지를 쳐다봤다. 책상 위는 너저분했다. 어머니는 정리되지 않은 책상을 보시며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공부가 잘되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엎드려 괴상망측한 포즈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자세가 그게 뭐냐."


공부는 책상에 앉아서 정자세로 똑바로 앉아 허리를 펴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이 이야기는 많은 부모들이 지금 현재도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놈에 "공부하는 자세"는 과연 뭘까. 근데 희한하게도 허리가 아프도록 책상에 앉아 있다가 TV를 보게 될 때는 옆으로 누워서 한쪽으로 머리를 받치고 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이 편한 방식에서 휴식을 얻고 휴식을 얻는 부분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만약 TV를 볼 때, 정자세로 딱딱한 의자에 앉아야 하고 집중이 잘 될 수 있게 주변 정리를 잘하여 TV를 보고 하루 2시간 의무적으로 보게 하며 공부를 할 때만 엎드려 공부하되 편하게 어지르면서 공부를 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얼마 전 좋지 못한 소식으로 뉴스에 나오셨던 로버트 할리의 예전 공부법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누워서 하던 엎드려서 하던 그냥 자신이 편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얼마 전, 매스컴으로 부터 그의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안타까웠다. 그의 공부 철학이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가끔 책을 보기도 하고 손에 물이 묻은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는 등, 시간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읽는다. 한 손으로는 머리를 말리기도 하고 음료를 마시면서 책을 보기도 한다. 그런 나의 상황에 맞는 독서법은 따지고 보자니 결코 필기나 필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지독한 콤플렉스 중 하나는 '악필'이다. 어린 시절에 받아쓰기 점수가 형편없던 나는 틀린 부분을 10번씩 써오라는 선생님의 숙제에 지렁이 기어가듯 글씨를 썼다. 빨리 숙제를 끝내고 놀고 싶었던 그때의 그 습관은 지금은 굳어저 심각한 악필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천재는 악필이라더라'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실 천재와 악필은 큰 연관성이 없다. 되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상당수의 필체는 매우 수려하고 좋은 경우가 많았다. 다만 그들이 급하게 아이디어를 끄적이느라 흐트러진 글씨체가 가끔 그들의 필체로 소개가 되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도 악필이다. 때문에 손글씨를 쓰는 일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나도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쓰고 나면 꽤 괜찮은 글씨체를 가질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신경도 많이 쓰이고 생각만큼 빠르게 적히지 않는 답답함 때문에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매우 고통스럽다.



이런저런 콤플렉스와 이유로 나는 그냥 가볍게 책을 맨 손으로 들고 다니며 읽는다. 얼마 전 우연하게 조승연 작가가 독서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나와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매 번,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는 책을 완독 할 때마다 '이거는 두고두고 다시 읽어야겠다.'라고 다짐을 하지만 실제로 새로 읽어야 할 책들이 꾸준하게 많아지는 상황에서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부분도 아마 조승연 작가와 실제 이야기를 한다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2050 거주불능 지구'라는 '데이비드 윌러스 웰즈'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재에 있는 컴퓨터 앞, 리클라이너 의자에 대충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한 손에는 귤을 먹으면서 볼품없이 책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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