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는 항상 깔끔하게 정리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엉망이 되어버린다. 분류 별로 깔끔하게 오와 열을 맞춰 정리한 지 얼마 안 지난 거 같은데 벌써 이 모양이다. 자기 전에도 머리맡에 책을 놔두다 보니, 침실도 너저분하다. 책가방에도 가득하니, 책가방도 너저분하다.
요즘 같이 습한 날에는 가습기를 틀어도 책이 많은 방이라 항상 신경이 쓰인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책을 소유하는 일을 오랫동안 못하게 되면서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대충 머리에 까치집을 하고 부엌으로 가서 시원한 물 한 잔 마신 후, 서재에서 '뭘 볼까...?' 고민하는 로망이 제주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씩 이루어지는 듯하여 기쁘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던 날, 가방의 무게가 초과했던 적이 있었다. 캐리어를 열어보니 캐리어에는 책 한가득과 옷 몇 가지가 있었다. 워낙 옷에는 신경을 쓰고 살지 않는 성격이라, 생각할 것도 없이, 캐리어에 있는 옷을 몽땅 쓰레기통에 갔다 버렸다. 그리고 다시 무게를 쟀다. 그래도 무게가 초과되었다. 그때 어쩔 수 없어 버렸던 책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소유하게 된 건 얼마 전부터다. 떠돌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소유'에 대한 부질 성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언제 또 다 버리고 떠날지 모르는 인생을 살았기에 돈도 책도 빚도 모두 무소유인 삶을 살았다. 언제 모든 걸 다 뒤로 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완전한 상태는 더 이상 아니다. 어린 시절은 유목민처럼 살고 나이가 들면서 농경민처럼 변해가는가 싶다.
이것저것 쌓이고 산다는 것은 안주하게 만든다. 책이 참 좋은 건, 소유 전과 소유 후 책이라는 물질은 그대로지만, 저것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농익으며 나의 자아 어느 한 곳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읽은 책이 다 기억나느냐면 그러지는 않다. 하지만 책의 것 표지를 보면, 그 책과 함께한 시간과 공간들이 얼핏 느껴진다. 대략적인 내용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추억 하나 떠올리듯, 책 표지는 나의 기억 매개체로 역할을 하며 내가 겪지 않은 새로운 추억을 나의 머릿속에 심어 주었다.
어린 시절 TV도 잘 나오지 않던 촌구석에 살던 나는 부모님이 오시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인도도 없는 시골 마을은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주지 않으면 어디도 가지 못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똑딱 거리는 시계나 바라보다가 창문을 여러 구름을 바라보다가 아무 의미 없이 죽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부모님이 김정빈 작가 님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책을 선물로 사 오셨다. 이 책이 1991년에 발간되었으니, 당시 나의 나이는 5살이었다. 아마 그 뒤로 몇 년이 지나고 이 책이 나에게로 온 듯했다.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다시 또 읽었다. 책 장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읽어도 재밌고도 재밌다. 이 책의 내용은 지금도 훤하다. 정말 딱! 이 책 한 권으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됐다. 이 책을 수 백 번이나 돌려보고 난 뒤 나는 비슷한 시리즈의 책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 책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사촌 형이 주고 책은 청소년을 위한 '삼국지'였다.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임팩트가 생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관심은 충격의 연속에 의해 생기는 듯하다. 나는 삼국지를 수 백 번을 돌려보고 나서 다른 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군대에서는 군대 내에 작은 도서관에 있는 책을 보았다. 막내였던 일등병과 이등병 시절에는 책을 볼 수 없었지만, 상병과 병장이 되면서 1년 간 짬짬이 100권 정도 읽었다. 민간인에게 100권은 그럴 수 있는 권 수지만, 군인에게는 쉽지 않다. 다만 내가 운전병이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책과의 인연을 꾸준하게 쌓아오다, 유학을 갔다. 유학에서는 Whitcoulls라는 서점이 있다. 정말 내가 자주 갔던 곳이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책을 사지 않았다. 다만 읽고 싶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영어뿐이었기 때문에 책을 샀다. 당시 샀던 책은 앞서 말한 오클랜드 공항에서 모두 버렸다. 지금도 아른거린다. 거기에는 나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샀던 책 중에는 '론다 번'의 시크릿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한국어 버전으로 2권, 영어 버전으로 2권 그리고 그 후 나왔던 여러 가지 파생된 책들도 영어와 한국어 버전으로 모두 갖고 있을 정도였다.
한국 책과 외국책은 많이 느낌이 다르다. 아마 외국에서는 재생지를 사용하는 듯하다. 빳빳한 재질의 한국 책에 비해, 외국 책들은 누리끼리하고, 훨씬 가볍다. 한국 책처럼 묵직한 느낌이 아니다. 어떤 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책은 책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이 너무 '상품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떤 재질로, 어떤 디자인으로 책이 구성되었는지가 책의 내용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베스트셀러는 대게 '자극되는 제목'에 도톰하고 묵직한 하드웨어를 갖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글자 간격이 많거나 빈칸이 많고 대략 페이지 수를 억지로 맞춘듯한 느낌도 있다.
가끔 다작을 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알맹이가 없는 책들도 만나게 된다. 사실 이런 점이 많이 아쉽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을 때,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듯하다. 제목이 그럴싸하거나 표지가 그럴싸하면. '나 이런 책 읽는 사람이야'를 연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듯하다.
무엇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국의 책이 화려하고 이쁘고 보기 좋기는 하다. 외국의 책은 빽빽한 글이 가득하기 때문에 머리가 핑 돌 정도로 까마득하다. 아마 독서력이 낮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쉽고 편하게 읽히기 위한 우리나라 출판계의 진화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책을 읽는 것이 꼭 고상한 일 만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은 참 많다. 다른 취미에 비해 시간 대비, 경제적인 취미기도 하고, 스스로 전 분야로 발전하는 취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냥 나의 기호에 맞는 취미를 하고 있을 뿐인데도 주위 시선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우호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