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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2. 2021

[읽을 책]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올해 읽은 책을 대충 세어보니 서른 권이 조금 넘어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책을 읽을 시간은 작년보다 늘었는데 작년에 비해 읽을 책의 권 수는 많지 않다. 요즘 멍 때리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원인인 듯하다. 내가 최근 읽었던 책들은 물론 재밌는 책들이 많았지만 소설이 거의 없다. 누군가는 소설을 위주로 독서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가상의 이야기를 왜 읽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어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 어느 편도 아니다. 소설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갑자기 읽게 된 소설을 읽는 것은 재미난 일이기도 하다. 이번 읽을 책 총 5권 중 2권이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는 것과 같다. 남의 인생을 훔쳐보는 관음증 같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꼭 '성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담에 비해 소설에서는 그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난다. 



 과연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 장과 한 장을 넘긴다. 사실 소설과 인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이야기도 글로 쓰여 있으면 누군가에게 소설이 될 수 있다. 소설은 사실이나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허구의 이야기다. 허구라는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실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독자가 허구라고 믿고 읽는다면 사실의 이야기도 허구로 치부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스치듯 발생한 한 사람의 이야기는 글로 쓰여 있을 때, 허구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독자의 몫이다. 허구라고 믿느냐, 진실이라고 믿느냐에 따라 글의 정체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허무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남의 망상을 글로 읽어서 무엇이 남느냐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객관적 진실인지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면 그만이다. 장자의 나비꿈처럼 오늘 밤 꾸었던 꿈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객관적 사실인지 나만의 착각인지 모른다. 



 조현병이나 편집증처럼 객관적으로 없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거짓임을 백번 천 번 이야기해도 알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몫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진실이 있다. 상대와 그 진실은 공유한다. 그런 공유 속에 둘이 같은 진실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한쪽에서 기억의 왜곡이 시작된다면, 과연 그 진실이라고 하는 기억들은 왜곡된 자의 것이 맞을까? 나의 것이 맞을까? 어쩌면 나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상대의 기억이 왜곡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상대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고로 진실이란 없다. 그냥 뇌신경세포 사이에 미세한 전기 신호로 정보를 교환하는 일종의 화학작용 들일뿐이다.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은 모두 공중분해된다. 우리는 그것을 영상이나 녹음으로 남겨 놓지만, 그것을 보지 않는다면 나만의 기억에서 확고한 진실이 왜곡된다고 한다면 알아낼 방법은 없다.



 소설을 읽을 때는, 푹! 하고 빠져 읽는 것이 최고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긴 호흡으로 한 번에 길게 읽는 것이 좋다. 상황과 상황마다 다시 나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1시간마다 현실로 돌아오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진득하니 과거로 돌아갔다면 그 과거 속의 피부 감촉과 온도까지 세밀하게 느끼고 돌아와야 한다. 미래로 돌아갔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무언가 섬세한 감정과 이야기를 느낄 때마다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윈도의 어떤 프로그램처럼 지속적이지 못하면 같은 곳을 방문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감정을 남기게 된다. 나의 삶에 대해서는 충분히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소설책을 들었을 때도 충분히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느껴야 한다. 나의 세계에서는 매 순간에 충실하고, 책의 세계에서는 책에서 주어지는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소설은 가끔 현실을 도피하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1분 1초마다 견디기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소설은 마법처럼 새로운 현실을 선물해준다. 



 장자의 나비의 꿈이다. 사람의 수면시간은 8시간이다. 씻고 먹는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된다. 그밖에 어떤 새로운 자아(일)에 몰입하는 시간은 대략 10시간가량된다. 그럼 스스로의 인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실제 2시간가량이다. 그 두 시간을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소설이다. 책꽂이에는 여러 종류의 인생이 담겨 있다. 내가 꺼내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가 되기도 하고 노인이 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런 마법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선물해주는 소설에 매력에 한 동안 빠져있지 못했다. 앞으로 올 2~3주 간은 새로운 사람들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나의 삶과 어떻게 다른지, 나의 삶보다 어떤 부분이 낫고 어떤 부분은 나의 삶이 훨씬 나은 지를 돌이켜 봐야겠다. 이것들을 다시 내 삶 속으로 불러일으켜 내 실 삶도 풍성하게 되는 여러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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