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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9. 2021

[정치]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불량 판결문독후감

 사법기관의 불합리한 판결에 관한 에세이다. 최정규 작가님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다. 그는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보며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다. 평소, 판례 쌍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인 독특한 변호사다. 2015년 한국 장애인인권상, 2017년 사랑샘 재단 청년 변호사상을 비롯해 여러 인권 및 변호사상을 수상했다. 책 앞에 적혀 있는 '이유 없이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이라는 글처럼 이 책을 사진이 변호사 생활을 하며 그 외로 얻게 된 여러 비합리적인 판결문 모음 폴더를 정리한 책이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이야기의 이 책은 묵직한 주제와 다르게 쉽게 읽힌다. 투박하지만 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 뉴스를 보면 분에 겨운 범죄자들의 범죄 행위보다 사법기관의 판결에 더 공분하는 네티즌들을 보게 된다. '저게 말이 돼?'를 비롯하여, '판사, 네 상황이라도 그렇게 판결 내릴 꺼냐?'라고 하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도 있다. 나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틀림없이 바뀌어야 할 불합리한 악습이 있다. 우리는 세계 수준의 경제력과 문화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자부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의 과정에는 군사독재와 세뇌와 선동이라는 대중조작이 난무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좌'와 '우'의 문제를 떠나 과거에서 현재까지 잇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진행이다. 이런 과정에는 저도 몰래 스며들어 있는 악습과 갈등을 해결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마치 최정규 작가 님과 같이 자신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좌'와 '우'가 아닌 뒤로 가는 사회를 맞이 할 것이다.

 농장에서 판매하는 감귤 박스에 3kg이라는 표기가 있다. 이 표기는 과실무게 3kg인지, 박스무게가 포함되어 3kg인지 명확하게 표기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생각 없이 규격화된 상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박스무게가 1kg이 된다. 대게 kg 당, 5,000~1만 원 까지 가는 과일의 값을 생각하자면 박스무게를 포함하지 않는 자가, 박스무게를 포함하는 자와 가격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마진을 모두 내어 놓아야 가능하다. 나 또한 이런 불합리성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적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농촌진흥청'를 비롯한 총 3~4곳에 해당 내용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결과는 예상대로 였다. A라는 곳에 전화를 걸면, '해당사항에 대해 관련 부서와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지 않아 B 쪽으로 문의를 해보시는 게 어떠신가요?'라는 답변이 온다. B에 문의를 하면 '해당 내용은 특별히 저희 쪽에서 담당하고 있지 않아서 왜 저희 쪽으로 문의하라고 하신지 모르겠는데요. C에서 대답을 들으실 수 있으 실 거예요.' C로 가면 이렇다. '저희 쪽은 관련 내용과는 전혀 다른 쪽을 담당하는 곳이에요.'

 끈질기게 A와 B와 C 그리고 기타 등 등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전화가 간 곳은 다시 A와 B다. 차분하게 해당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던 동기는 없어지고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화가 나가 시작했다. 그 뒤로 어디에선가 내가 들은 대답은 이렇다. '3kg 표기로 했기 때문에 과실무게로만 나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박스무게를 포함했다고 해서 이를 감시하거나 규제하는 기관도 없고 벌금을 내릴 수도 없어서 찾아서 신고를 해주시면 해당 업체에 내용을 권고 정도 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황당한 답변이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덧붙인 내용은 더 황당했는데 해당 내용에 대해 타기관에서 설문(?) 비슷한 것이 왔을 때, 말끔하게 고민이 해결됐다는 답변을 해달라는 식이었다. 

 뭐... 내가 나서서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을 크게 만들어봐야 에너지 소모만 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잘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시장에는 박스 무게를 포함한 3kg와 박스무게를 포함하지 않은 3kg가 같은 상품으로 판매되며 가격 경쟁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농장을 찾는 단골들만 알면 됐다.' 마음을 먹고 나는 사회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소시민적인 생각으로 비슷한 일들을 마무리 짓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스템이란 참으로 무섭다. 개인이 바꾸기 상당히 어렵고 불특정 다수가 비슷한 문제에 불편함을 겪었을 때, 그리고 그 문제가 사회문제로 번져 '특정 이슈화된 사건이 터졌을 때' 변화한다. 하지만 시스템의 형성은 아주 견고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다. 그렇게 형성되는 기득권의 논리가 해당 내용에서는 '판례'이다. 기존의 '판례'가 기득권의 논리에 따라 변화 없이 보수적인 결과가 형성된다.

 대한민국 법원은 OECD 국가 중 국민 신뢰도가 최하위다. 신뢰의 문제는 특히나 사법 기관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소개하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판사'에 관한 내용을 보자면 굉장한 모순이 떠오른다. '푸틴'은 외교적 우위를 얻기 위해 일부러 회담장에 지각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상대의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게 함으로써 권위와 외교 우위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다고 하는데,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할 사법기관의 이런 문제는 작가는 지적한다. 2019년 국정감사 때, 최근 5년간 국민들이 판사에게 막말을 듣고 대법원에 진정과 청원을 낸 사례는 88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당 내용에 인정한 사례는 단 2건이라고 하니, 앞서 말한 OECD 통계가 신뢰가 간다. 녹음이나 녹화를 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한 불만과 현재 관공서 민원실 중 점심시간에 완전 업무 공석이 되는 '법원'의 기득권 의식의 문제도 제기한다. 우체국이나 검찰청을 비롯해 대부분의 관공서 민원실에는 상황 교대로 사람이 비치되는데 법원만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의 존엄을 업고 존엄이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세계 노예 지표에 2016년 대한민국은 167개 국 중 32번 채로 위험한 국가로 지정했다. 2018년 발표한 지표에서 추정 노예 수가 9만 9,000명으로 2016년 20만 4,900명에 비해 감소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내용을 소개하며 염전 노예의 내요이 소개되었다. 책을 읽던 도중 책을 덮고 방송이 됐던  염전 노예 사건 방송을 다시 찾아봤다. 50분가량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국가라며 아직도 법의 사각지역을 이용하여 범법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법의 존엄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댓글에는 '대한민국 맞아?'라는 글이 다수였다. 아직도 법이 '존엄'하기에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영상 마지막에 들었다. 그 외에도 간첩 프레임으로 온 가족이 파탄이 났던 28세 제주 청년의 이야기와 2019년 이춘재 사건을 이야기하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 걸러지지 않는 일까지 책에서는 여러 사건이 예시로 나왔다.

 책은 아마 최정규 작가님이 평소 모왔던 '불량 판결문' 자료를 수정하여 출판한 듯하다. 세상에 불합리함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할 의지와 방법이 생기고 나면 '정치'로 입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 있다. 감귤 박스 3kg의 표기 내용에 대해 나는 수년째, 지금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소극적 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이 든다. 지난 나의 모습에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건 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순 없지만, 꾸준하게 나 또한 수년째 과실무게 표기에 관한 언급을 '내 저서'와 '독후감',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의 SNS에 기재하면서 소극적인 반항을 하고 있기에 어딘지 모를 쾌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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