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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2. 2021

[생각]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 어떻게 하나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걱정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나 현재의 현상들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가'만 남아 있다. 5000원이던 주식이 3000원으로 떨어졌다면 매일 주식창을 확인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팔거나 혹은 주식창을 보지 말거나를 결정해야 한다. 3000원을 가리키고 있는 호가창을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당신이 걱정한다고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살다 보면 내 멋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따지고 보자면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의 범주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있다. 10년 전 사건이든, 1년 사건이든, 심지어 방금 전인 1초 전의 사건도 우리는 전혀 개입할 수 없다. 즉각의 상황에 주어진 대응을 하는 것만이 주어져 있다. 

 테트리스 게임을 하면 내려오는 블록이 처음에는 여유 있다가 조금씩 빨라지고 블록도 엉망으로 쌓여 있는다. 그런 경우에는 이미 실수로 쌓인 블록에 대한 후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재빨리 태세를 전환하고 그다음 현실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실수를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다. 자포자기한 시간이 많아질수록 잘못 쌓여가는 블록의 수 만 많아질 뿐이다. 빠른 태세 전환은 그 게임의 성패를 가른다. 예전에 배우 '짐 캐리' 주연의 예스맨을 본적 이 있다. 인상을 극적으로 바꾸고 싶은 여러 사람들은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질 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중 하나를 제안하는 영화가 바로 예스맨이다. 주어진 모든 선택에 '예스'라고 대답해보는 것이다. 이는 마법과 같은 힘이 나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닌 매 순간의 선택이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몰느다.

 짤깍. 순간. 다시 짤깍. 다시 순간. 짤각. 다시 또 순간. 지금 이 문자를 읽고 있는 순간에도 '순간'이라는 것은 소모되어 사라진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끄고 다른 행동을 할지. 밥을 먹을지. 이 글을 마저 다 읽을지 또한 순간에 선택에 달라진다. 모든 순간이 쌓이면 '나'라고 하는 '자아'가 만들어진다. 이는 과거의 흔적일 뿐, 다음 다가 올 순간 속을 살고 있을 '나'와는 다른 객체일지도 모른다. 매번 1만을 선택해오던 내가 갑자기 2를 선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그런 예외성을 주는 것만으로도 삶은 크게 풍족해지고 달라진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양자역학'과도 닮아 있다. 모든 것에 규칙이 있고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나는 비관적으로 본다. 나는 예외가 주는 변이에 호감을 느낀다. 매번 검은색을 선택하던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빨간색을 선택하고 나면 그 예외가 주는 인생의 변이는 나비효과가 되어 엄청나게 다른 영향력으로 자아까지 변화시킨다.

 나는 튀지 않고 무난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내 성향대로라면 나는 자동차를 고를 때, '검은색'을 골라야 한다. 하지만 나는 빨간색을 골랐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20대의 삶의 공간을 해외로 결정했다. 나는 안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돈이 따박 따박 나오는 '월급쟁이'가 아닌 삶을 결정했다. 이렇게 가만히 놔두면 이정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 모든 상황에 예외를 선택함으로 특이한 변이를 창조해 낸다. 아주 부채꼴의 꼭짓점처럼, 같미세한 각도로 시작한 선들은 시간을 타고 확장할수록 넓이와 변의 길이가 달라진다. 아주 큰 격차를 만나게 된다. 전혀 다른 삶을 만난다. 이런 능동성은 '운명'이나 '신'에 의해 조종되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물론 그 마저도 신의 뜻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좋지 않은 일. 벌어지지 않았다면 좋았다. 그렇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10번을 생각해도 10만 번을 생각해도. 1년을 괴로워해도 10년을 괴로워해도 결론은 정해져 있다. 벌어진 일에 대해 빨리 인정하고. '그래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를 택한다. 조금 더 괴로워하다가 대응을 할 것이냐. 혹은 지금 바로 대응을 할 것이냐. 또한 결정해야 한다. 테트리스의 블록은 플레이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실수를 바라보며 바보같이 넋을 놓고 있는 순간. 다음 블록은 무정하게 내려온다. 그마저 놓쳤다고 해도. 다음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응이 늦으면 치워야 할 '똥덩어리'들만 쌓여갈 뿐이다. 정신이 차려지지 않으면 사정없이 오른쪽 뺨을 후려치고 번뜩하고 정신을 차리면 그만이다.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오고 둘 다 가 본 적 없는 길이라면 가운데 서서 고민하지 마라. 아무거나 선택하라. 그리고 후회 없이 같은 속도로 나아가라. 후회하지 마라. 일단 가던 길을 끝까지 속도를 늦추지 말고 가고 그 끝이 목적이 아니면 잽싸게 되돌아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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