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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23. 2021

[역사] 시시하지 않은_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향해하던 도중 태풍을 만나 조선에 표류하면서 14년 간 조선에 역류된 이야기를 담은 글이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받지 못한 임금을 받기 위해 작성된 이 보고서는 현재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가장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가진 문학 중 하나가 되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어딘가 고상해 보이지만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는 것을 소원하면서도 '아직은 별 볼일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미룬다. 하지만 지금의 모든 순간은 시시콜콜하면서도 시시하지 않은 문학이 된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가 현재 우리나라 추천도서에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헨드릭 하멜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소중한 자료이고 역사가 된다. 아마 이 글일 읽는 사람의 하루도 그러할 것이다.


 수나라가 113만 8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이 이야기에서 무시무시한 것은 살아남은 자가 고작 2만 7000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양제와 을지문덕 장군의 이야기로 역사를 기억하지만 여기서 사라진 개별의 역사는 백 만개가 넘어간다. 미국 몬타나 주 인구 수준, 우리나라 울산 시 인구의 모든 기록이 사라진 일에 우리는 무덤덤하다. 사실 게 중 글자를 알고 쓸 수 있는 소수가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면 그 전쟁의 생동감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전투병뿐만 아니라, 보급병부터 시작하여 운송병, 취사병, 의무병 등 다양한 시각에서 쓰인 글들은 그 시대와 문화를 더 생동감 있게 보여줬을 것이다. 나의 작은 인생을 살아 볼 때, 나 또한 현대사에서는 티끌보다 작은 존재감을 갖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나의 작은 인생에도 정치에서 존재하는 전쟁이나 동맹, 경제성장과 같은 여러 가지 상황이 존재한다. 수양제의 100만 대군 하나하나에도 분명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이제 막 결혼하고 출산 후 아이와 아내를 집에 두고 병역의 의무를 지던 군인도 있을 것이고 노부모를 모시던 효자도 있을 것이고 사기꾼, 동성연애자, 비범한 천재, 비범한 외모를 가진 사람 등 엄청나게 많은 존재들이 있었을 것이다. 100만이라는 규모를 생각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종류의 인간이 그 시대 100만 대군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라고 하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내가 정말 궁금했던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사극이나 역사책들을 보자면 정갈하게 잘 정리된 시대적 인물들이 나온다. 양반들은 기품 있는 어투와 행동을 하고 별로 인간적 이어 보이지 않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삶은 항상 비슷하다. 그들의 인생도 시답잖은 농담이나 주변 친구와 하는 음란 패설 혹은 험담을 비롯해 사기나 반칙도 존재한다. 역사책이지만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배경이 말 그대로 배경과 사건일 뿐, 이 책의 초점은 모두 개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들이 하는 고민은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라던지, '부동산 사기를 당한 양반' 그리고 '어디나 있는 엄친아들과 비교'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일반적인 고민들이다. 일기들은 보통 400년 혹은 500년은 훌쩍 지난 걱정들이다. 지금에서야 이것을 읽는 나로서는 그들의 고민이 이미 해결됐으며 부질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 현실 속에서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하고 반성한다. 그런 모든 고뇌와 걱정, 슬픔의 이야기들은 이미 수 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책 속에 담겨 있기로는 그들은 생생히 현재에 살아 있으면서 고민하고 슬퍼하는 것 같지만 이미 수 백 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없다. 


 책은 젊은 작가의 감각으로 재해석되어 있다. 읽기 편한 현대어나 줄임말이 종종 들어가 있어 새롭다. 역사책은 딱딱하다는 생각을 벗어 날 수 있도록 이야기는 재해석되고 각색되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외로 짬짬이 들어가 있는 배경지식들도 재미있다. 사극을 볼 때마다 하던 생각이 '정말, 저 사람들은 저렇게 말했을까?'이다. 정치사극 드라마 극 중 배역들은 근엄한 표정을 하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했고 임금 또한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하지만 현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이 그렇게 에너지가 잔뜩 들어가게 말을 했을 것 같진 않다. 충분히 지방 사투리가 많을 것이고 목소리가 얇고 경박한 투를 가진 사람도 있고 키가 작고 왜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대할 때, 가지고 있는 편견들은 대게 일률적이다. 양반은 외모부터 멋들어지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근엄하고 노비는 왜소하고 목소리도 경박하다. 분명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런 섬세한 살아 있는 역사를 알고 싶으면 보편적인 시각이 아닌 세부적인 시각으로의 역사를 보는 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 이런 기록이 왜 없을까' 하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책을 만나서 몹시 반가웠다. 책은 300쪽 정도 되는 분량인데, 읽어 넘어가면 크게 오래 걸리진 않는다. 대략 3일 정도에 완독 했던 책인 것 같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도 좋을 것 같은 흥미로운 시각을 담고 있는 책이다. 


역사 드라마보다 재밌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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