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Apr 26. 2021

[육아] 모든 것은 DNA

'소아과 의사가 알려주는 최고의 육아' 독후감

 '모든 생물종은 자연자원이 지탱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자손을 생산한다. 모든 생물종은 약간씩의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다. 이 많은 자손 중 어떤 자손이 살아남을 것인지를 자연이 선택한다. 이런 선택을 세대가 반복하게 되면 생물의 종은 서서히 변하고 진화한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 이론은 이와 같다.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를 예로 들며 주장한 다윈의 개체 생존 경쟁 중 자연선택은 결국 자연에 이해 선택된 '변이'가 생존하며 더 낫은 유전자를 후대로 넘겨주는 식이다. 거시적 시선에서 바라본 자연의 진화 원리는 다름 아닌 '변이'다. 하지만 토끼가 기린이 되는 것과 같은 '변이'가 아니라, 조금 더 목이 짧은 기린이 자연 적응이 뛰어난 '목이 조금 더 긴 기린'으로 '변이'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심코 기대하거나 희망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 '공부 잘하거라', '예의 바르거라.', '편식하지 말아라' 등. 부모가 그것 조차 못하냐고 타박하는 '그 녀석들'의 유전자에는 '우리의 것'이 들어 있지, 다른 이의 것이 들어 있지 않다.

 '토끼가 자식에게 호랑이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하는 모순은 자녀의 열등이 아니라, 부모의 열등일 뿐이다. 이 책은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자녀의 탓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유전자의 탓입니다.' 그렇다. 우리가 욕심을 내는 모든 것은 단순히 부모의 열등의 산물일 것이다. 모든 유전자는 위에서 아래로 전이된다. 게 중 조금 더 낫은 변이가 일어날 수 있도록 자연, 즉 환경을 변화시켜 주는 것이 후진 유전자를 물려준 우리 부모의 유일한 몫일지도 모른다. '소아과 의사가 알려주는 최고의 육아'의 저자는 당연하게도 '소아과 의사'다. 그는 육아에서 '아이의 입장'을 크게 대변하며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빨리빨리하라고 재촉하는 일은 아이 스스로가 생각할 힘을 빼앗는 일이라고 말하고 조기 교육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발달 과정이 불안한 아이에게는 더욱 의식적으로 칭찬하라고 한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금수저 하나 물려주지 못한 부모가 아이에게 큰 소리 칠 입장은 아닌 것이 분명하기도 하다.

 하율이와 다율이 와 외출을 하려면 신발장 앞에서 한참이 걸린다. 부랴 부랴 외출 준비를 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다만 신발장 앞에서 한참이 걸린다. 특히 하율이가 오래 걸리는 편이다. 하율이가 신발을 혼자 신지 못 한다고 칭얼거리며 신겨달라고 때를 쓴다. 우두커니 서 있자니 의미 없이 다리도 아프로 어설프게 굽은 허리가 시끗시끗 거리기도 한다. 나의 엉거주춤한 자세는 아이를 더 재촉하게 했다. '빨리 신어! 할 수 있잖아!' 문뜩 내려 바라보던 시건이 외부로 확장되더니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속 좁은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바로 현관문을 열고 책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어 지저분한 바닥에 들어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날 외출에서 이마트를 들려 '캠핑용 의자'를 하나 구매했다. 이를 현관문 앞에 설치했다. 그 뒤로 먼저 신발을 신고 나서 읽고 있는 책 한 권을 들고 현관문을 열어 그 캠피용의 자에 앉아 책을 펴고 말한다. '하율아. 천천히 해. 언제든 기다릴게.' 그러면 한 1~20분 정도 신발을 못 신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은 신발을 신고 나온다. 

 효과는 탁월했다. 아이를 재촉할 이유가 사라졌다. 불편한 자세가 아니라 편한 캠핑용 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꺼내 읽었다. 10분이 걸리면 더 좋고, 20분이 걸리면 더 좋았다. 아이에게 화내는 일이 줄어드니 울면서 나서는 일도 줄어들었다. 다만 정말 오래 걸리는 외출이 반복된다. 물론 오래 걸린다는 것은 철저하게 부모의 시선이다. 아이에게 하루는 일과 정해진 것 없이 보내는 시간일 뿐이다. 시간이라는 관념에 속박되어 있는 어른에게서나 '빨리'라는 관념이 존재할 뿐 아이에게는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그런 눈으로 보자면 아무 이유 없이 화내고 있는 '어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만 커져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에 관한 정보는 굉장히 많다. 초보 엄마들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밥 먹는 시간을 '분침'까지 맞춰가며 지키고 아이가 먹어야 할 분유 물의 온도는 0.1도까지 섬세하게 맞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말한다. 요즘처럼 육아에 관한 정보가 넘처나는 시대에는 아이가 건강해도 고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거시적인 입장에서만 적용될 리 없다. 더 미세하게 들어가서 미시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진화론의 분자에는 '육아'가 들어 있는 직도 모른다. 아이가 자라 날 온도와 습도, 먹을 물의 양까지 섬세하게 측량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자연선택적'으로 '변이'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자면 항상, 빈곤하고 척박한 민족은 풍족하고 안위적인 민족을 정복했다. 전 세계의 반을 지배했던 몽골민족이 그랬고,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던 청나라의 여진족이 그랬다. 대영제국을 일궜던 영국이나 일본도 섬나라였다. 척박하고 불안한 국가는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역동적이었으며 전투적이었다. 비옥한 영토에 자리를 잡고 안전하게 성장하던 문명을 느닷없이 정복하며 성장하던 그런 유목민들을 키운 것은 비옥한 토지가 아니라 척박하고 힘든 자연환경이었다. 다만 그들은 '신'이라는 존재를 믿었고 곧 신이 그들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은 그들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신이다. 신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 비옥한 토지가 아닌 험난한 환경과 척박한 땅을 선물해주고 끝없는 믿음을 주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엄청나게 큰 '재산 상속'이나 부정입학을 통해 얻게 될 '직업' 혹은 '학력'등을 선물하는 것은 풍요로운 노예가 되는 길을 선물하는 길이다. 땅이 비옥한 중국의 역사는 중국 한나라 이후 1302년간 신비족, 여진족, 몽골족, 일본 등에 의해 지배를 당했다. 강이 길고 유역이 크며 땅이 비옥한 중국의 역사에서 이처럼 이민족들이 정벌이 많은 이유를 보자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순탄하고 안전한 길만을 위해 완전한 환경을 선물해야 하는 강박을 내려놔야 하는지도 모른다. 책은 짧은 소주제로 여러 개 나눠 작가인 다카하시 다카오의 생각을 적었다. 나 또한 아이의 성향의 아주 커다란 부분에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고 믿는 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굉장한 매력과 공감을 느끼며 읽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혹은 분명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좋은소재, 뛰어난몰입감, 부족한 결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