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다. 예전에는 일본 소설을 꽤 좋아했는데 요즘은 많이 읽지 않는 듯하다. '신의 카르테'는 나쓰카와 소스케 작가의 시리즈 소설이다. '카르테'는 의사의 진료 기록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 작가인 그는 현직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자신의 배경을 토대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이 책은 1, 2, 3권이 시리즈로 출간되었다가 0권에 이어 4권이 나온 것이다. 시리즈 물이라고 하더라도 앞 전 시리즈를 몰랐다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하진 않는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혼조 병원의 내과의사 구리하라 이치 토의 이야기는 어쩌면 작가인 나쓰카와 소스케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요즘과 같이 '워라벨'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 자신의 직업에 좋은 점을 찾고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부럽고도 존경해야 하는 일이기 도하다.
책은 단순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고 치부하기에 삶의 많은 부분을 가르쳐준다. 소설 속에 있는 글 중에는 담아두고 싶은 글귀가 꽤 많다. '가야 할 갈이 명확하다면 비통함에 젖어 멍하니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우선은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 이리라.' 책의 120 페이지에 있는 글과 더불어 너무 많이 아는 탓에 필요 이상으로 허무하게 생각한다는 글... 넘어가는 페이를 붙잡고 한참을 읽었던 부분이다. 사실 살다 보면 너무 뻔하게 흘러가는 일을 알면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걸어갈 길이 불 속임을 알면서 한발 한 발을 내딛는 일들은 더 많이 아는 이들이 선택하는 바보 같은 일들이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전 리쌍의 노래 '광대'의 가사를 보면 '저 순진한 사랑의 초보, 애인 있는 남자와 눈 맞아, 사랑에 빠져, 슬픔을 기다리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죽음과 삶과 희로애락의 다음 순서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이들이 보기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나 '눈물'을 흘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주할 미래보다 더 중요한 건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많이 아는 것보다는 조금은 덜 아는 편이 낫은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다리는 비통함은 완전하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한 걸음과 다음 한 걸음을 떼어 움직여야 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슬픔이거나 죽음이거나 비통함이라 할지라도 눈을 뜨면 보이는 미래를 억지로 가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다 보면 목적지라는 순간보다 과정이라는 연속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바라던 대로 가족들과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 후타쓰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담담하게 맞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건, 죽음보다 그 걸음과 걸음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의사라고 하면 그 인기과로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꼽는다고 한다. 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사람으로의 의사를 어떤 이들은 미용을 위해 일하는 미용서비스 업종 종사자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분명한 '선의' 행동임으로 비하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관념에 의해 상처를 더 받는 법이니까. 어쨌건 어떤 의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분명 누군가의 상쳐나 질병에 환자만큼의 고민을 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환자의 인생을 관찰하는 주인공이자 작가 나스카와 소스케의 시선이 엿보인다. 얼마 전, 읽었던 골든아워가 문뜩문뜩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물론 문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어쩌다 보니 의사의 글들을 자주 읽게 되는데, 이 책을 포함하여 의사의 글이 차갑고 투박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되려 읽기 편하고 문체가 좋은 듯하다. 시간이 나면 관련 드라마와 다른 책도 찾아봐야 할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