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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본은 언제나 좋은나라인가_롯폰기김 교수

by 오인환

학창 시절 일본의 준법정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일본인은 질서를 잘 지키고 시민의식이 뛰어난 민족이 라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친절하고 남에게 패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민족이라 우리가 배울 것이 많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시민의식이 뛰어나서 단체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하여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장인정신을 갖는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들었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라고 말하며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 진실일까. 성인이 되고 해외생활을 10년 지속하며 많은 일본인을 만났다. 사회 경험을 쌓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일종의 열등감은 아녔는 생각이 들었다. 지진이 나도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줄을 서서 보급품을 받는다는 일본의 준법정신은 분명 좋은 문화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그 국가의 수준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일본을 갔다. 버스 창 밖을 보며 일본의 깨끗한 거리와 질서 정연한 시민의 모습에 감탄했다. 다시 떠올리고 나니 질서 정연한 것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를 입대하는 날, 306 보충대 입소식을 아버지와 고모가 오셨다.

"장병 여러분은 운동장으로 집결 부탁드립니다."

시끌벅적한 운동장에 점잖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나왔다. 나는 잠시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와 고모에게 잠시 갔다 온다고 말했다. 운동장에 엉망진창으로 서 있는 젊은 남자들이 짝다리를 짚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상태에서 옆사람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시끌시끌하던 운동장에 현역 군인들이 '장병'이라고 불리는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앞에 있으신 분이랑 줄 좀 맞춰 주세요.'

대게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대충 줄을 맞추는 시늉을 하는 듯했지만 이내 흐트러지기 일수였다. 그러다 갑자기 일장 연설을 하던 사람이 뒤를 돌아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 고모를 한참을 찾다가 대략 있을 법한 위치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한 줄로 이어져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어떤 건물 뒤로 줄을 서서 들어갔다.

그 뒤로 우리는 보충대에서 훈련소로 넘어갔다. 보충대에서 엉망진창이던 오와 열은 훈련서에서 칼처럼 잡혔다. 밥을 먹을 때도 질서 정연하고 운동장에 축구를 하러 갈 때도 질서를 지켰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군인의 질서 정연함이 선진의식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무질서가 선진의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서울 정도의 질서를 지키는 의식은 어쩐지 국군주의 혹은 전체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측면에서 보자면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들은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중국인은 의식 수준이 낮기 때문에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을 그렇지 않다. 우리는 대게 결과를 보고 과정을 해석하곤 한다. 일본의 질서 문화가 선진의식으로 느껴지던 시기 우리는 일본의 경제력에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지금은 국가의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꽤 많은 수준에서 일본과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무시무시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은 조금씩 깨인다. 삶의 곳곳으로 살펴보자면 일본보다 한국이 낫은 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나의 고등학교 한자 선생님은 반일감정은 열등감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당시 그 말에 굉장한 반감이 있었다. 열등감이라는 어감 자체가 좋지 않았던 탓에 친일 교육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시 선생님은 그 뒤에 이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심한 역사를 청나라인 여진족과 몽골에 당했는데 우리는 더 이상 청나라와 여진에 사죄를 요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우리가 일본의 경제력을 넘어설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상대를 용서할 관용이 생기고 상대는 우리에게 용서할 명분이 생긴다고 그는 말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 사죄한 것은 그들이 사죄했던 대상의 경제적 우월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해당 내용에는 아마 많은 반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재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있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에 적대심이 있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는 경제력으로 대략 설명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과 비슷하거나 넘어서는 이 과도기적 시점에 우리와 일본은 비슷한 반감과 호감의 시선을 갖는다. 그러다 어느 쪽 경제력이 상대를 월등하게 넘어설 때, 반대쪽에서는 상대에 대한 열등의식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반감과 호감의 비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민주화는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과 동시에 미국에 의해 주어졌다. 반면 한국의 민주화는 우리 시민이 쟁취했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우리는 주권에 대한 의식이 많이 다르다. 우리는 오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 시대를 겪었고 그에 대항하던 문화를 갖고 있다. 통치자의 권력을 끌어내려 대중으로 갖고 왔던 수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일본의 역사는 통치자에 벗어난 역사가 없다. 일본은 운 좋게 통치자들의 정치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였으며 스스로 꽤 성공적이다 싶은 몇 차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통치자에 대한 복종이 미덕인 샘이다.

일본은 결재 서류에 사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의 이름이 사장 쪽으로 기울여 찍혀야 한다고 한다. 사장만 자신의 이름을 꼿꼿하게 세워 찍을 수 있고 모두가 고개를 숙여 사장에게 인사하는 형식으로 도장을 찍어야 한다. 이런 문화는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사회 전반에 미덕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대중을 잘 다스리기 위해 우민화 정책을 항상 실시할 수밖에 없다. 우리 또한 그런 우민화 정책의 역사가 있다. 일제의 역사에서도 그랬고 군사독재의 역사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 모두에 대해 우리는 불합리성을 깨달았다. 성공치 못한 리더에 대한 복종이 독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 국민과 리더에 대한 복종이 곧 국가의 발전에 연결된다는 일본의 사상은 매우 다르다. 이렇게 우리는 우민화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거부하고 일본은 수용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쉽게 말하면 반일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롯폰기 김 교수'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는 일본을 조롱하고 비웃고 실낱 하게 욕한다. 내가 중립을 좋아하지만 그의 채널을 보고 그의 책을 구매한 이유는 와장창 깨지는 일본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이제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할 수 없을 만큼의 국가 규모와 힘을 갖은 국가가 되었다. 되려 걱정을 해야 한다면 중국 쪽을 견제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우리가 일본에 관심을 갖고 경계를 하는 이유는 일본에 대한 미움이나 경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의 책과 영상은 꽤 자극적이고 직접적이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얻을 것이 있었다. 잃어가던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생겨나기도 한다. 비록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꽤 비판적으로 볼만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일본의 좋은 이야기를 잔뜩 알고 있다면 반댓쪽 이야기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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