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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억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여인_팬데믹1919

by 오인환


관을 훔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18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918년 10월, 인플루엔자 유행병은 사람의 신체건강을 헤칠 뿐만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꿨다. 그들은 그저 과거엔 평범한 이웃이자 친구이었지만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치러 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되자, 관을 훔치는 도굴꾼이 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2년동안 1억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질병이 인간에게 심어 놓는 것은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불신과 비인간성이었다. 누가 됐던, 최초 1명의 발생자로 시작한 질병은 점차 사람과 사람을 넘어 국가와 국가로 전이된다. 이처럼 끔찍한 '질병'에 '스페인 여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스페인이 중립국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스페인에 크게 연관이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이 별칭은 '시적인 어감' 퍼지기 쉬웠다. 오죽하면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사자들보다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을까. 총과 칼을 들고 사람을 찌르고 포탄을 떨어트리는 일보다 더 많은 이들은 '스페인 여인'에게 사살됐다. 누군가에게서 다른 누군가에게로, 환자에게서 의료진에게로, 가족에게서 가족에게로... 바이러스는 '완전한 외부인'보다 가까운 이들에게 감염된다. 나를 보살펴주고 아껴주던 이들이 곧 나의 생명을 헤칠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간적임'이 상실되기 시작한다.



한 명이, 두 명을 감염시키고, 두명이 4명을 감염시키고, 4명이 16명을 감염시킨다. 전파는 점차 속도와 규모를 키우고 자라난다. 묻고, 묻고, 묻고, 더상 묻을 곳이 없어 구덩이에 사람들을 묻기도 했다. 터져나오는 코피가 방 끝까지 뻗어 나갔고 죽어간 이들은 흑인과 백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감염자수가 아닌 사망자 수가 수만 단위로 넘어가며 기록은 포괄적이어진다. 전쟁의 참혹과 섞여 '전염병'은 더 무섭게 세상을 몰았다. 2년 간 1억이라는 숫자가 감염으로 사망했다.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었고, 감염자 다섯 명 중 한명은 목숨을 잃었다.



알래스카에서 사람들은 개를 먹기도 하고, 또한 반대로 개들이 사람을 먹기도 했다. 개들이 먹으려는 시신을 살피는 일까지 종종 일어나며 죽음은 특별한 일이라기보다 흔한 일이 됐다. 이처럼 잔혹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역사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아마 다루지 않는 이유는 '정치'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의 대부분은 '정치'의 역사다. 이렇게 인류 역사에 중대한 사건을 교과서는 짧막하게 다룬다. 고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대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페인독감'에 대해 깊게 알고 있지 못했다. 질병에 대한 인식이 적을수록 사람들의 경각심은 줄어들었다. 반복하는 역사 속에 '팬데믹'을 스페인 독감은 한 차례 경고 했었던 것이다. 그것을 학습하지 않은 우리의 문제는 이처럼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로 남겨졌다.



전쟁과 함께 마무리가 되어가는 듯 했던 스페인 독감은 2년 간 1억 명의 인구를 앗아갔지만, 그 뒤로 수 십 년 간, 사람들은 우울증과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후유증을 갖기도 했다. 이후 일어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자살률이 120%까지 올라가며 바이러스가 남기고 간 상처는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1년, K방역으로 바이러스를 잘 막았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10만 명당 자살률은 28.6명에 이른다. 10만 명 당, 남자 40.2명이, 여자 16.9명이 '바이러스'로 부터 목숨을 지켰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세계 평균 자살률 8.22명의 수 배가 되는 숫자다.



책은 최초 누군가의 이야기로 시작해 전 인류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과거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현재로 이어지며 미래를 암시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했을 때, 뉴스를 보며 너무 가볍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스페인독감은 '페스트'보다 더 큰 위협으로 인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출발은 미미 했으며 그 심각성을 받아들이는데 꽤 긴 시간이 들었다. 그것에 대한 위험성을 받아 들이고 난 뒤에는 이미 너무 많은 감염자가 속출했을 때 였다. '총,균,쇠'에 '균'은 인류의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1979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한 인류는 우역과 함께 현재까지 인간이 유일하게 박멸한 전염병이다. 여기에는 승리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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