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내가 전지전능한 세계_명상

by 오인환

뜨거운 것은 들고 있지마라. 뜨거운 것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 화상을 입었다고 탓하지마라. 손에 화상을 입은 이유는 뜨거운 것을 들고 있던 '나' 때문이지, 그것이 뜨겁기 때문이 아니다. 더러운 것도 들고 있지말아. 더러운 것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 손이 더러워 졌다고 탓하지마라. 손에 더러운 것이 묻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은, 더러운 것을 들고 있떤 '나' 때문이지 그것이 더럽기 때문이 아니다. 뜨거운 것에 의해 화상을 입고, 더러운 것에 더러워졌다고 탓하지 마라. 그것들은 이미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었다.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지마라. 그것이 나를 다치게 했다고 탓하지마라. 그것들이 나를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의해 다침을 당한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외부로 문제를 돌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주요한 사업을 앞두고 '코로나19'라는 피할 수 없는 외부의 문제에 직면하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의도없이 상처를 받고 우울해 질 수도 있다. 그것이 나에게 상처가 되고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은 1차로 끝내버려야 한다. 뜨거운 것이 손에 닿으면 잽싸게 손을 빼고 휙! 씻어버리면 된다. 더러운 것이 손에 닿으면 훌훌 털어버리고 깨끗하게 씻어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 손을 오염시키고 다치게 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쥐고 놓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의 잘못이 아니라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나를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잽싸게 놓아버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다음 선택을 하는 것이다. 더러운 오물을 탓하며 그것을 놓지못하고 끊임 없이 들고 있다면, 이 문제의 잘못은 오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들고 있는 나의 손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또한 감성적 동물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겪고 쉽게 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방어기재가 작동하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줄 피해와 상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궈 두고 오랜기간을 기다린다면 그 사람은 그 물의 온도를 견딜만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온도라면 아마 잽싸게 그 물에서 손을 떼고 차가운 물을 본능과 같이 씻어낼 것이다. 만약 스스로가 상처로 부터 해쳐 나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감내할만한 상처라는 것을 의미하는 바이고 어쩌면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스스로의 방어기재로 인해 그 더럽고, 뜨거운 것을 잽싸게 피해버렸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감사할 거리가 하나 없는 사람이라는 사람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 10에서 1을 빼면 9가 남고, 2를 빼면 8이 남듯, 아직 감사할 거리를 하나도 찾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찾게 될 감사할 거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내가 해석하기에 따라 모든 것의 정체성은 정해진다. 길을 가다 주워든 나뭇가지로 땅을 짚으면 지팡이가 되고 사람을 때리면 회초리가 된다. 사물을 가리키면 지휘봉이 되고 집을 짓는데 재료로 사용하면 건출물이 된다. 그 어떤 것도 정체성을 정해놓고 태어나는 법은 없다. 세상 만물이 내 선택과 결정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성이 정해지는 법이다. 이처럼 만물에 정체성을 정하는 일은 오직 '신'만이 가능한 일이다. 나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에 '정체성'을 정하고 행과 불행, 오물과 보물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나만이 가능하다. 이웃집 사람에게 똥을 선물 받았을 때, 그것을 식사자리에 갖고 가면 '퇴물'이 되고 농장에 갖고가면 퇴비가 된다. 무엇을 줬는지와 왜 줬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였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것들을 하게 됐는가. 거기에는 모두 해석이 뒤따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언제나 마음대로 가능한 것은 내가 하는 '해석방식'이다. 비록 그것이 객관적으로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세상에서의 객관성은 나의 주관으로 결정되는 법이다. 하지만 세상사 모두 제뜻대로 되지 않기는 만인이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행복해야 하는 것은 인생불변의 법칙이다. 모든 것에 내가 철저하게 속아 넘어갈 수 있도록 해석하고 암시하고 자가최면을 거는 일, 이것을 불가에서는 수행에 의해 가능하다고 여기고 기독교와 천주교 등에서는 기도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아주 철저하게 속일 수 있다면 객관적 세상에 거지꼴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 스스로 신선 놀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제법 잘 속였던 사람들이 만인이 말하는 객관적 세상에서도 성공한 삶을 살았던 건 어떤 우연에서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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