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해 쓰지 못한 날 독후감
'또... 그렇게 하나의 점이 된다.'
어제는 어제를 살고 오늘은 오늘을 살았다. 그때는 그때를 살았고 지금은 지금을 살았을 뿐이다.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묘한 방향이 나를 지금 여기있게 했다. 특별하게 빨리 진행하거나 특별하게 천천히 진행하지도 않았다. 특별하게 모나지도 않았고 특별하게 돌발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시간과 상황을 차근 차근 밟았을 뿐이다. 차근 차근 한 점을 찍어 왔을 뿐이다. 획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 기하학적 무늬는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을 하다가 일기를 마무리하는 마침표로 세겨진다.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마저 특별할 것 없는 한 점이 되어 내 일생의 어느 부분에서 지금의 나에게 이어져 있다. 끊어지지 않는 한 이 점은 길에 이어져 언제든 오늘 찍을 점과 만나고 하나가 된다. 벌써 오래된 기억들은 점차 잊혀지고 오늘과 멀어지지만 끊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시에 나온 구절에는 사랑은 서로의 살점을 나눠 먹는 것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서로 한 점도 공유하지 않은 이들이 서로의 살점을 떼어주고 상대의 살점을 건내 받는다. 상대의 살점을 입에 넣고 소화시키면 상대의 일부는 나의 일부가 된다. 다시 나의 살점이 상대의 입에 들어가 소화가 되면 나의 일부는 상대의 일부가 된다.
완전하게 다를 것 같던 이들이 하나씩 서로의 것을 섞어가며 동화되는 과정이 길면 길수록 이것을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기억이 그렇고, 감정이 그렇고, 공간과 시간이 그렇다. 나의 어디를 되새겨봐도 상대의 살점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나라고 생각한 부분에는 상대가 있고, 상대라고 생각한 부분에 내가 버젓하게 있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이지?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소설 '어린왕자'에 '길들인다'의 의미를 정의해봤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짓는 일이다. 이 세상 아주 많은 것들 중에 서로에게 필요한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 질수록 점점더 행복해지는 일. 아무런 동작이나 행위없이, 단지 존재가 있고 그것이 나에게 가까워 질수록 행복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의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 그런 것에는 항상 상대와 시간과 추억, 공간과 감정, 기억을 공유해야 되는 일이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나를 구성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의 살점을 상대에게 떼어주고 그의 것을 받아들였다. 나도 그의 것을 삼키고, 그 또한 나의 것을 삼킨다. 서로가 서로를 소화시키고 서로 동화된다. '지금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우린 꽤 오래 이별을 준비해 왔나봐요.' 공감되는 글귀에 흘러 내려가던 눈동자가 멈춘다. 다시 위로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하지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영원할 것 같던 순간을 마무리 짓고 나면 다른 의미로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앞선 영원이 그 끝을 보게 됐듯, 다시 찾아 온 영원의 시간도 끝이 날 것을 알고 있다. 처음 찾아 온 그 가짜 영원이라는 착각에 속았듯, 다시 찾아 온 영원이라는 착각에 다시 한 번 속는다. 잊혀지고 잊혀지길 반복하다보면 어쩐지 오랜기간이 찰라의 순간으로 느껴진다. 마치 오늘이 있기 위해 존재했던 필연이었던 것 처럼 어쩌면 만남과 동시에 이별인 오늘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하나의 점이 된다.' 어제 찍었던 점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히 언제나와 같던 점이 되고 난다. 문장은 그렇게 완성된다. 의미 없는 한 줄을 쓰고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된다. '하나의 점이 된다'는 문장조차 깊지 않은 생각을 뱉은 '비어있는 문장'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면 거기에는 의미가 생긴다. 내뱉은 '빈문장'은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기에 가늠하지 못한 깊이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것은 짧고 설명없는 '시'가 가진 매력이다. 말 없는 달을 보고도 이태백은 달을 보며 마음속 생각을 시에 담았다. 달과 노닐던 그에게 달은 지구를 도는 위성이자 늑대인간이 나타난다는 광기의 상징이 아니라 근심을 나누는 대상이자 친구였다. 가끔은 수다쟁이 친구보다 말없는 무생물에 더 깊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읽어 내려가는 시는 투명하거나 명확한 전달은 아니지만 분명히 비어 있으면서 가슴을 가득 채울하다. 이성과, 친구와, 지인과의 이별을 단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언제나 계속 될 것 같던 그 순간들도 한낱 점으로 남겨져 있다. 넘어가는 페이지마다 어렴풋 실루엣처럼 보이는 작가의 감정에 함께 동화되며 나또한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살을 베어 물어 소화하고 있진 않은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