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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Nov 28. 2021

[읽을책] 본질의 중요성#7_흉기 난동에 도망간 여경

 될 수 있으면 이슈성이 강한 글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쓰게 된다면 시간을 좀 두고서 쓰려고 한다. 얼마 전 흉기를 든 범인을 피해자와 놔두고 인천의 한 여성 경찰관이 현장에서 도주한 사실이 뉴스에 알려졌다. 해당 내용이 전파를 타고 '여경 무용론'으로 불거졌다. 여경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는가. 그 이야기에 앞서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학창시절 피하지 못하고 들어야 했던 그 이름은 왜 중요한가. 그들을 일컬어 '철학자'라고 부른다. 철학이란 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 철학은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일본에서 온 한자다. 철학에 앞서 다시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공자, 맹자, 장자, 노자 등 이들 사상가들과 철학자는 왜 중요한가. 필로소피아(philoshophia)는 '지혜를 사랑함'을 뜻한다. 즉, 특정하게 분류된 어떤 것에 대한 연구라기 보다, 존재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왜 인간은 존재하는가', '세상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물음과 물음. 다시 물음으로 이어지다보면 결국 '존재'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우주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처럼 생각의 끝과 끝으로 이어지다보면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을 흔히 '본질'이라고 하고, '종교'와 '철학'에서는 이를 '진리'라고 한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시발점'. 결국 철학을 가진다는 것은 '본질'을 아는 것이다. '본질'을 알면 '진리'에 가까워진다. 다시 이야기의 주제인 '여경무용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여경무용론에서 우리는 도망간 여경에 대한 비난을 1차적으로 한다. 어머니와 딸이 흉기를 둔 범인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흉기를 들고 있는 범인이 어머니를 공격하고 피해자는 쓸어져 있으며, 딸이 범인의 손에 든 흉기를 두 손으로 막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순간. 그곳에 함께하고 있던 여경은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1층으로 내려갔다. 명분은 '지원요청'이었다. 피가 끓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시민의 안전과 치안을 책임진다는 경찰이 현행범을 마주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가장 먼저 현장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은 백번 천번 죄를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1인으로, 이런 경찰이 어쩌다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치안의 뿌리부터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1차적 비난을 끝으로 이 사건이 끝나선 안된다. 의구심은 본질에 가까워 질수록 영향력이 뻗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은 '현상'일 뿐이다. '현상'은 가장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현상은 그 위에 다른 상위 현상이 있으며, 그 위에 상위 현상이 있다. 현상의 끝과 끝을 물고 올라가면 가장 상위에는 '본질'에 맞닿는다. 

 사건의 본질은 '여경'에 있지 않다. '어째서 위층과 아래층은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가?' '층간소음'. '층간소음은 왜 발생했는가' 층간소음은 사회가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면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생겨난다. 공동주택에서는 당연히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 소음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모르고 입주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그 경우가 심한 경우에는 이처럼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간의 시민의식과 암묵적 합의로만 기댈 수 있는가. 혹여, 입주 시 층간소음에 대한 이해도와 특정 소음 이상 발생 시에 일어날 조치에 한 시스템이 있어야 하진 않을까. 가령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음이 위와 아래로 전달 될 경우 블랙박스와 같이 기록되는 시스템은 기술적으로 어려운가. 등이 있다.

  두 번 째, 사건의 본질은 '여경'에게 있는가? 여경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여경이 현장에서 이탈하고 1층으로 내려왔을 때, 1층에는 남경과 남편이 함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남편은 재빨리 현장으로 올라가 범인과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남경과 여경은 1층 현관문이 닫혔다는 이유로 이웃이 문을 열어주기 전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사건의 본질은 여경이 왜 현장을 이탈했는지가 아니라. 함께했던 남경은 어째서 현장 진입을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여경과 남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의 문제다.

 당시 함께 하고 있던 환경미화원이 1층에서 '유리를 깨야 겠다'라고 했음에도 경찰은 되려 이를 저지했다. 사실 처음에는 현관문을 파손하는 것에 대한 사후처리 법률이 복잡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경찰은 공무집행중 발생한 손해에 대해 범인에게 청구하가나, 국가변제 법률이 존재한다. 업무상 파손에 대한 법률이 적용되는가에 대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경찰의 문제였다. 이는 '철학'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경찰의 본질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및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다. 이것을 철학으로 갖고 있는 이들이 그 업무에 종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산업화 역사가 짧다. 그런 이유로 사회 전반에 비슷한 문제가 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에서 이미 공자는 본질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그것의 사회의 본질이다. 우리나라에서 매우 극소수의 직업층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일하는 직업에 대한 책 한 권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령 골목골목에 있는 식당은 '음식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돈 벌이를 위한 수단'으로의 직업을 선택했다. 경찰 또한 '공공의 안전'이라는 철학이 아니라, '돈 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선택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하는 것은 '생명윤리에 대한 철학'보다 '수능 점수'이며, 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들 또한 안정적인 직업과 노후보장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철학없이 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굉장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철학을 분명하게 하고 있고 그를 통해 자신의 부와 명예를 보장받기도 한다. 본질이 없는 사회는 그 직업이 갖고있는 의미와 상관없이 '돈'과 '명예', '안정성' 등으로 사회의 급을 나눈다. 마치 돈 잘버는 전문직 종사자가 자신보다 돈을 적게 벌거나 명예를 덜 가진 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미화를 책임지거나, 편의점에서 일을 하거나, 말 그대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자신의 업무에 철학이 부족한 전문직종사자가 자신의 철학이 투철한 일용직 종사자를 보고 존경심을 가져아 한다. 몇 년 전, 아이들과 한 병원을 간 적이 있다. 해당 병원에서 궁금한 것이 많던 나는 그 자리에서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물었다. 의사선생님은 자신이 아는 선에서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고 다시 병원을 갔을 때, 의사선생님은 지난 설명 중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해당 내용에 대해 책을 찾아보셨다며 다시 설명을 보충해 주셨다. 그의 직업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일본의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는다.(さいものにふたをする)' 본질은 덮고 현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치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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