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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05. 2021

[수필] 고재경 교수의 20년 전 생각 모음집_걷자생존

자그마치 7년 전, 고재경 교수의 컬럼 모음집이다. 발간된 것은 7년이지만, 책 안에는 20년도 넘은 글들이 적혀 있다. 20년 전 어떤 현상을 바라보던 한 교수의 글, 아마 그는 그때의 생각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10년이 지난 일기장을 살펴봤을 때조차, 마치 내가 적었는지 의심된 적이 있었다. 타인의 글이라고 착각이 들 만큼이나 낯설게 만드는 것이 '시간'의 힘이다. 20년 전, 그는 사회 이슈에 대해 생각하고 글에 담았다. 그리고 출간했고 다시 7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내 손에 들어와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이 어떤 경로로 내 손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간이 주는 오묘한 감정이 책을 읽는 내내 들게 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자연 수명은 38년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게 생태계 질서를 유지하고 살고 있다면 우리의 유전자가 정해둔 수명은 고작 38년이다. 책 속의 글은 20년이 지났지만, 조금도 노화되지 않고 잚은 '고재경 교수'의 생각이 그래도 담겨져 있다. 사람은 살면서 꾸준하게 바뀐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고 지금의 나와 지난 내가 같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일 뿐이다. 우리 몸의 100조 개의 세포는 각각 세포 분열을 통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적혈구의 세포 수명은 120일이고, 위벽 세포는 2~3일, 장벽 세포는 3~5일, 피부 세포는 28일, 취장 세포는 12~18개월 뼈세포는 7년, 지방 세포는 8년이다. 대게 4개월 마다 인체 세포의 80%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며 쉽게 말해 분기별로 우리는 80%의 변태과정을 겪는다. 분기별로 사람은 기본 골격과 기타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른 이로 태어난다. 실제로 지금의 나와 10년 전의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다. 누군가의 글을 시기마다 살펴본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한국 근대사를 보자면 참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을 하던 이의 행적 뒤에 친일 행적이 있기도 하고, 초기에는 열성적인 독립운동가였다가 이후에 변절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독립의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어찌됐건, 쉽게 독립협회 2회 회장이었던 이완용이 그렇다. 애국가의 작사가 추정되는 몇 중 하나인 윤치호은 친알파였고, 안의태 또한 친일의 행적이 최근 이슈화되기도 했다. 우리가 존경하던 일부 독립 투사들의 국적은 미국이나 스페인, 일본인 경우가 많다. 1932년 1월 일본 도쿄에서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는 일본을 꽤 좋아하여 일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유창하였고, 스스로 일본인이 되고자 노력을 했다. 그는 스스로 개명을 하여 일본 이름인 '기노시타 쇼조'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실제로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에서 일본인이 양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봉창 의사는 이 후, 완전히 다른 사상을 갖기도 했지만 말이다. 서재필 박사는 또한 미국인 국적으로 정부지원으로 발행된 '독립신문'을 일본에 매각하려 하기도 했다.

환경에 의해 선택받은 생물이 진화를 이어간다는 '적자생존'이란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부적으로 DNA가 이끄는 어떤 방향으로 생물이 진화의 과정을 겪는 것이 아니라, 환경 잘 적응해 가는 환경 기준 우월인자가 생존해 간다는 '다윈의 자연 선택설'은 사실상 지금 이순간에도 적용이 된다. 자연은 생존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생명력이 몰린다. 사회가 4G, 5G 등 인터넷이 발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장환경이 형성되면서 어린 시절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비디오 대여점'은 자취를 감췄다. 농사를 짓다보면 '적과'라는 과정을 갖게 된다. 한 가지에 여러 개의 열매가 열렸을 때, 가장 크고 실한 과실 하나를 두고 나머지를 모두 떼어내는 것이다. 만약 이 작업 중 실수로 비실비실한 과실을 놔두게 된다면, 그 가지에는 열매가 하나도 맺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열린 과실 중 불필요한 과실은 스스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과일을 키워낸다. 사회, 경제, 역사, 문화, 정치 모든 분야에 '적자 생존'은 필수적이다. 혹여, 부실한 과실을 의도적으로 살려준다면 열매없는 가지가 되어 버릴 여지가 굉징히 많다. 사실상 스스로 하고 있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면, 적자생존에 의해 능력이 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실력없는 의사가 '신'께 간절하게 기도를 하여 '의사자격증'을 얻었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죄악'이다. 어쩌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면 사회 전체에서는 더욱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낭중지추'다. 송곳은 아무리 주머니에 숨긴다고 하더라도 뾰족하게 표가 나기 마련이다. 그저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하게 하는 일로 자연에 선택을 받으면 돈과 명예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 물론 책의 제목인 '걷자생존'과는 별과의 이야기긴 하다. 니체는 산책을 통해 자연과 함께하며 명상에 빠졌다. 괴테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을 다듬었고 릴케는 꽃을 보면서 명상 했다. 대부분의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자연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명상을 했다. 사실상 걷는 것은 가장 완전한 명상법 중 하나다. 본래 인간은 가장 지구력이 높은 포유류 중 하나다. 포유류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털이 많지 않은 이유는 오랜 기간 걸으면서 열과 땀을 배출하기 유리하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수십만년에서 수백 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걷도록 진화가 되어 있다.

책은 꽤 많은 내용이 적혀 있어서 하나의 독후감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당시 사회의 이슈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지나서 현상이 이미 정리된 경우도 있고 아직도 현재진형의 문제들도 있다. 어쨌건 길게는 20년 짧게는 10년이 된 현상과 이야기에 그만큼의 시간을 뒤로 갔던 한 교수의 생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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