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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Dec 13. 2021

[소설] 누군가의 시간을 가져간다는 것

어느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독후감

 "넌 하루에 심장이 몇 번 뛰는지 알아?"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

 "10만 번, 그중에 한 번이라도 뛰지 않으면 중태에 빠지고 두 번 다시 뛰지 않으면 죽어."

 죽음을 앞 둔 '갑'이 '을'에게 3억을 제시하며 100일 간 사랑하고 버킷리스트를 달성하자고 제안하는 독특한 계약을 설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소설같은 소재에 소설같은 전개 방식이 이어지는 로맨스 소설이다. 곧 죽을 여자와 100일 간 연애를 하면 3억을 주는 흔히 말하는 '꿀알바'에 지원한 주인공은 계약 조항 중 하나인 "갑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계약은 종료된다.'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흔히 시대를 나눌 때,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을 위한, 그들의 소설이다. 이 둘이 바라보는 '죽음'은 참 대수롭지 않지만, 점차 시간이 다가오고 감정이 깊어질수록 피하지 못하던 죽음의 무게가 그 둘 위로 떨어져 앉는다. 죽음이 가벼운 농담의 소재가 되는 그 둘은 '철 없는 어른 놀이'를 하면서 그 어떤 어른도 맞이해 본 적 없는 '죽음'이라는 무거움으로 다가간다. 그들에게 삶은 하나의 아름다운 놀이다. 놀이에는 항상 규칙이 있지만, 진정한 재미는 그 규칙을 위반할 때 나온다.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계획을 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삶은 언제나 내가 예상하는 바와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바꾼다. 죽음을 앞 둔 소녀와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공유하던 '을'은 같은 시간을 보내며 처음의 자신과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잔혹하게도 나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송두리째 가졌다."

사무치도록 공감되는 말이다. 영원할 것 같기에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5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조금은 불편하거나 고통이라고 느껴지는 시간, 그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그것이 끝이 나고 나면, 그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내 인생을 빗대어 보더라도 그렇다. 내가 살았던 '빈공간'을 여러 차례 마주하곤 했다. 졸업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했던 교실에 정적을 제외하곤 아무런 흔적도 없어졌을 때, 나는 그곳에 서서 항상 마지막을 바라보곤 했다. 군 전역을 할 때도 모두가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 조용한 부대는 생활하기에 지옥같았지만, 떠나갈 때는 다시 보지 못할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해외의 이곳과 저곳을 다니며, 투닥투닥 거리며 살았던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이 공기 정도만 남게된 그 공간도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인생이 끝없다고 여기며 하나 둘 끝마칠 때마다, 인생은 어떤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내가 지나온 길은 다시 나에게 오지 않았다. 과거가 그리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느끼던 시간과 감정은 다시 그곳에 있지 않았다. 

 사람은 일정 분량이 넘어가면, 그것을 가늠하는 예측량을 '무한대'로 놓는다. 대략적인 1리터와 10리터의 물병을 구분하면서도 흘러가는 강물이나, 호수,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무한대로 측량한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반드시 끝이 있는 삶을 보내면서 우리는 그것이 꼭 무한하다는 착각을 한다. 함부로 사용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나의 시간은 그처럼 소중하다. 소설은 여기서 유한한 삶의 끝을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구나 삶의 끝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조금 가까워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 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소중함은 끝으로 지나갈 수록 더 크게 느끼고, 그것이 지나갔을 때 절정으로 느낀다. 그리고 다시 그것이 멀어져감에 따라 잊혀져 간다. 별거 아닌 순간도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마지막'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보내게 될 평범한 오늘 하루는 우리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다만, 비슷한 형태의 다른 하루가 내일도 기다릴 것이고 그것이 무한대 처럼 펼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어느하나 소중하지 않게 흘려 보낼 뿐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을 송두리째 갖고 간다는 것은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꾸준하게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며 그들의 삶과 시간을 앗아간다.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것들에 대해, 내것 만큼이나 상대 것도 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 인생을 앗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기에 따라 굉장한 민폐일지도 모르고, 어떻게 보기에 따라 참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을 좋은 시간과 감정을 보냈다고 만족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능력은 그래서 대단한 능력이다. 흔히 소설의 전개 방식은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다만 시한부의 사랑을 두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번 씩 해보는 '로망'이다. 소설은 굉장히 젊고 유쾌하다. 젊은 세대가 맞이하는 죽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이 전하고자하는 주제와 내용보다는 그 이야기가 끌고나는 연애와 끝의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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