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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08. 2022

[감사] 거짓이라도 좋으니 긍정적으로_인플루언서 글쓰기

 예전에 라디오방송을 들었던 적이 있다. 2000년 초반, UN이라는 고학력 남성듀오가수 UN의 '김정훈' 님이 하셨던 말로 기억한다. '죽기직전게임'이라고 그는 명명했다. 당시에는 웃고 넘어갔던 짧은 농담이었는데, 나중에 이 말에 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행복해지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참고 있던 화장실을 바로 달려가지말고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았다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인간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종종 이 말을 상기하곤 했다. 싯다르타가 행복을 위해 6년 간 고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의 광야에서 40일의 고행은 과연 어떤 것일까. 군대 유격 훈련에서는 1번부터 14번까지 다양한 PT동작이 있다. 가볍게 1번 '제자리 높이뛰기 동작'부터 공포의 8번 '온몸비틀기'까지 그 동작은 간단하다. 가볍지 않은 전투모와 전투화를 신고 온몸의 근육을 통해 자세를 해내는 것은 방바닥에서 TV를 보며 따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어느 동작 하나 쉬운 게 없다. 11번 쪼그려 뛰기는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고통스럽고 3번 엉덩이 올리기에서는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이런 고난스러운 동작을 꽤 많이 반복하다가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에, 엄청난 높이에서 줄을타거나 뛰어내리는 도하, 레펠 훈련을 실시한다. 퍽 높이가 신장이 쪼그라든 높이에서 줄하나로 산과 산을 넘어가는 어려운 훈련을 한다.

이런 동작을 반복하다보면 깨다는 사실이 있다. 각종 PT들 중, 가장 쉬운 PT동작은 바로 8번 전과 후에 하는 PT다. 죽음까지 고통을 느끼던 8번 동작을 무한하게 반복하다보면 깨닫는다. 8번 전이 행복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좋으니 8번이 아닌 다른 동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PT를 하고 난 뒤, 교관은 묻는다. "도하 하실 훈련병 있습니까?" 질문이 떨어지기도 전에,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그 높은 곳을 뛰어 내리겠다고 악을 쓰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못할 높이의 어떤 곳을 필사적으로 뛰어내기 위해 발악하면서 깨닫는다. 사람은 '극한'을 보면 '덜 극한'은 행복으로 여기는 구나. 인생은 극한의 연속이다. 분명 학창시절에는 학생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라고 여겼다. 군대를 가보니 학창시절은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배고픈 유학 시절을 해보니, 차라리 정시에 잘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언제나 말이 통하는 누군가가 있는 군대 생활이 행복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학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니, 그래도 눈치생활하지 않던 유학생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직접 운영을 해보니 그래도 책임이 덜 한 직장 생활이 낫았다는 생각에 든다. 삶이 고통과 고통이 심해질수록 "옛날이 좋았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20대 나를 이끌던 추진력은 '극한'에서 나왔다. "벼랑 끝으로 나를 내몰아라."는 내가 자주 외던 말이었다. 누구나 벼랑 끝에 매달려 있게 되면, 난데없는 초능력자가 되기 마련이다. 6시에 일어나길 힘들어 한다면, 나는 알람시계를 2시간을 당겨 놓곤 했다. 그렇게 3~4일을 반복하다보면, 6시에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쉬웠는지를 깨닫는다. '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가줘라' 누군가의 부탁이 들어오면, 해야 할 의무보다 조금더 채워 해줘버린다. 해야만 하는 귀찮은 일들은 그런 이유로 사실 '편한 일'이 되어버린다. 인플루언서 글쓰기 정지 27일. 신나게 달려가던 기차가 잠시 정차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아마 나의 그전 기억이 더 낫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금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런 시간이 27일이나 된다는 것 어찌보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27일 뒤에는 명백하게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삶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내다 그것이 끝나는 순간만큼 좋은 것은 없다. 유격훈련이 끝나고서 철야행군을 통해 수 십 km의 철야 행군을 한다. 행군은 서서히 극단으로 치밀어 오르던 훈련의 마지막이다. 걷고 또 걷고, 또 걷기를 무한적으로 반복하면, 훈련의 고단함과 발바닥의 물집보다는 빨리 내무반으로 뛰어가서 라면하나 끓여먹고 씻고 잘 수 있다는 기대감이 벅차 오른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훈련의 극단과 극단으로 치밀어 오를 수록 '행복'은 더 가까워진다. 잠도 자지 않고 저절로 걸어가는 '좀비'의 상태지만, 저 멀리서 군부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처럼 탈출하고 싶은 군내무실이 그리울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빈 통이 있는 방 안에 공 하나를 주고 관찰하면, 공을 통 안에 집어 넣는 행위를 한다고 한다. 공을 통 안에 집어 넣으면,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누구도 통 안에 공을 넣으라고 하지 않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면 집어 놓고 기뻐하고, 넣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어떠한 목표나 미션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로 정의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저 빈통에 공을 집어 넣는 일일 뿐이다. 거기에는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제외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삶이란 방을 들어갔다가 나가는 동안 공을 집어넣는 놀이를 통해 즐기는 일종의 시간 채우기 놀이인 샘이다. 오늘도 여전히 긍정적이지 않아보이는 상황의 긍정적인 모습을 찾으며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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