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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an 10. 2022

[생각] 매일 새벽 스트리밍을 하며

인플루언서 글쓰기 정지중(D-25)


 2022년 매일 4~5시반에 일어나 방송을 한다. 유튜브에서 '오인환tv'를 검색하면 '시청자 0'명의 실시간 방송을 보게 된다. 이로써 얻은 것은 없다. 그냥 일어나 책 읽고 글쓴다. 영상은 얼굴을 향하지 않는다. 넘어가는 책장을 향하고 있다. '저작권 없는 피아노 음악'을 하나 틀어놓고 매일 2시간 씩 아침 루틴을 챙긴다. 2022년은 벌써 10일이 지났다. 이로써 대략 매일 2시간씩 10번, 즉 20시간을 얻었다. '저녁'시간과 '아침'시간은 분명 차이가 있다. 기상 시간을 조절하는 것은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과 연관있다. 세상에는 '능동적인 인간'과 '수동적인 인간'이 있다.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는 자유를 박탈 당하는 삶과 스스로 주체적인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삶이 있다. 쉽게 안전을 보장 받는대신 자유를 박탈 당하는 것은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마치 축구선수를 하고 싶은 사람과 의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모두 존재하는 것처럼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일종의 내 인생 꿈이다. 아침시간과 저녁시간은 주체성에서 차이가 난다. 요즘같은 시기에 모두가 맞들어 있는 시간은 저녁이 아니라 아침이다. 요즘에는 저녁 12시에도 누구나 메신저로 이야기하고 재미난 영상이 업로드 되거나 재미난 뉴스거리가 나오기도 한다. 아침 시간에는 조금 다르다. 아침시간에는 모두가 잠들어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할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피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갑작스러운 지인이 방문할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약속이 생긱도 한다. 갑자기 다치거나 아플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은 아침 시간에는 확률이 줄어든다. 아무리 경우 없는 경우에도 밤 11시에는 부를 지언정 새벽 4시 반이나, 새벽 5시 반에 부르는 경우는 없다. 이 시간에는 나를 방해하는 이들에게 일부러 메신저를 보내도 대답이 오지 않는다. 살아가다보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면 해야 할 일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할 명분이 사라진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 급실에서 '가지무침'이 나왔다. 그 시절 '가지무침'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다. 다만 학칙에 의하면 남김없이 다 먹어야 식판 검사 후 급식실을 나갈 수 있게 해 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가진 않는다. 어쨌건 '가지무침'을 처리하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커다란 고민이었다. 물컹 거리고 느글느글하는 가지는 목구멍으로 넘어 갈 때, 노란 코물을 들이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학생들마다 가지무침을 먹는 노하우가 있었다. 누군가는 코를 막가 삼키기도 했고 누군가는 크게 한숨을 들이 마신 뒤, 공기를 내쉬면서 먹기도 했다. 그 중에서 '순서'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맛이 없는 음식을 먼저 먹는 부류와 맛없는 음식을 가장 마지막에 먹는 두 부류로 나눠졌다. 마치 요즘 시대 흔하게 인용되는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어떤 부류가 더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나는 맛 없는 음식을 제일 먼저 먹는 부류였다. 맛이 없는 콧물맛 가지 무침을 꿀떡 삼키고, 그 뒤부터 맛있는 동그랑땡 반찬을 즐겼다. 먼저 먹는 이들을 바라보는 이들은 '나중에 먹는 부류'들 이었다. 먼저 먹는 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가지무침을 삼키고 있을 때, 나중에 먹는 부류는 이 모습을 보고 웃고 즐겼다. 이후 우리가 맛 있는 동그랑 땡을 먹고 급식실을 나서는 동안 나중에 먹는 부류는 끝까지 먹지 못하겠다고 오랫동안 급식실에 머물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후딱 해치우는 일은 어쨌거나 먹어야 할 가지무침을 먼저 먹어치우는 행위다.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고 자율의지로 '꿀떡' 삼킬 수 있던 이유는 이후에 눈 앞에 보이는 맛있는 '동그랑땡' 반찬 때문이었다. 다만, 나중에 가지무침을 먹던 이들은 그것을 삼킨 뒤에 얻을 보상이 불분명하다. 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가지무침은 지금이야,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는 반찬일 뿐이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모르겠다.



 살다보면 그 대상이 조금 달라졌을 뿐, 그 감정은 그대로다. 가지무침과 동그랑땡은 그 대상만 달라졌을 뿐, 지금 성인이 된 나에게 혹은 나의 친구들에게 지금도 그대로 있는 감정들이다. 출근 시간이나 등교시간은 내가 정한 시간이 아니다. 국가가 혹은 회사가, 학교가 정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맞춰 나간다는 것은 누군가가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앞으로 당길 수는 있지만 뒤로 미룰 수는 없다. 다만 만약 내가 시간을 내어 나만의 등교, 출근 시간을 정해 놓는다면, 나의 융통성에 맞게 앞으로 늘리거나 뒤로 줄일 수 있다. 즉, 주체적으로 나의 결정에 따라 나의 몸 컨디션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자율 의지를 갖고 기상시간을 넉넉하게 당겨 놓는다면, 누군가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군가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닥 인간다운 메리트가 있는 삶은 아니다. 나는 내가 잘못한 일에 스스로 책임지고 잘 된 일에 마음껏 만족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 움직이고, 혼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삶을 보자면 어린시절 우리집에서 키우던 '누렁이'가 생각난 탓 때문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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