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도 일종에 오락일 뿐이다

by 오인환

언제부턴가 뉴스나 신문을 보는 것이 지적인 일처럼 여겨진다.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세상 흘러가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나, 이동 중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영상과 메신저를 사용하지만 또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본다.

그런 시사를 상식과 연관 짓고 '시사상식'을 지성인으로서 꼭 갖춰야 할 요소라고 말한다. 그렇다. '시사상식' 중요한 요소다. 그러면 '역사상식'은? '과학상식'은? '음악 상식'은? 시사상식은 그저 여러 가지 관심사 중 하나일 뿐이다.

며칠 전,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는 아들을 다그치는 아버지를 우연하게 본 적이 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보는 웹툰이 쓸데가 없다고 말하며, 아버지가 보는 시사뉴스를 보라고 다그쳤다. 웹툰은 쓸데가 없고 시사뉴스는 쓸데가 있을까?

혹시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실종됐다거나, 우크라이나 사태, 재벌기업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등 지난 몇 년 간, 우리를 휩쓸었던 시사 상식들은 과연 얼마나 쓸데가 있었을까?

사실, '뉴스'의 사전적인 의미는 '새소식'일뿐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새소식을 많이 알고 있는가가 상식이 풍부한 사람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뉴스란 '새소식'은 경쟁 미디어가 증가하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광고주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는 분명한 공정성에 위해가 된다. 정해진 지면과 방송시간을 채우기 위해, 발제와 취재, 마감을 반복하며 쫓기듯 작성해 댄다. 또한 협찬금 지급에 대한 유혹에 벗어나기 쉽지 않다.

언론사와 기자는, 매일 쏟아지는 사건 사고와 논쟁 거리를 보도하기 위해 '새로운 사건'을 단 몇 분, 빨라도 몇 시간 안에 판단해야 하며, 이 사안을 두고 깊고 토론하거나 자문을 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현장의 취재기자보다 데스크의 의견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항상 일정 분량을 채우기 위해, 특별한 고민보다 기존에 짜여 있는 형식과 뼈대를 이어 작성하기 십상이다.

반면, '새소식'이 아닌 '오래된 소식'은 그와 정 반대이다. 광고주 의존도가 비교적 적고, 마감시간에 쫓기지 않아, 오랜 시간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비교 분석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깊은 토론과 자문을 얻을 수 있다. 수 차례 반복적으로 퇴고가 가능하고 수정하여 상대적으로 가장 객관화된 자료를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쫓기듯 쓰인 글을 보며, 지금이라도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망할 것 같이 위기감을 고조시키던 글들을 보며 불안해하고 항상 다음 기사를 읽어야 하는 언론에 노예가 되어간다.

이제는 엘리베이터를 타도 사람들의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향한다. 화장실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우리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실시간 검색어와 뉴스를 계속해서 새 로고 침하며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아다닌다.

그렇게 얻게 된 지식이 오랫동안 자신에게 머무를 상식이라고 착각하며, 꾸준한 시간을 투입한다. 같은 시간이면, 정제된 정보인 '독서'를 통해 상식을 얻어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나라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렇다.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매 순간 주어지는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가령 주가 관련 뉴스를 보면, 당연히 주가란 것이 오르는 날도 있고 내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어떤 어떤 이슈'로 주가가 내렸다. 거나 '어떤 어떤 이슈'로 주가가 올랐다 라는 분석 기사가 매일 같이 쏟아진다.

우리는 큰 흐름만 알면 되는 부분이고 큰 흐름은 매일 같이 주어지는 뉴스에서 얻을 수 없다. 나무를 보다 보면 산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아주 중요한 뉴스는 찾아보지 않더라도 당연스럽게 알게 된다. 뉴스를 보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뉴스만 선별해 보고, 그 배경에는 독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뉴스를 보는 행위를 멋있게 포장하려 해서는 안된다. 다만, 어린이가 만화영화를 보고 청소년이 게임을 하는 것처럼, 다만 기호이고 취미일 뿐이다.

의사가 진료를 잘하고, 정치가가 정치를 잘하고, 작가는 글을 잘 쓰고, 군인은 국방에 충실하면 그것이 좋은 나라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찌 해결할 수 없는 시사 사건들에 목을 매는 일보다, 자신이 직접 행동 가능하거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만 주의 집중해서 살펴보자.

100리 밖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나,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다툼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피자. 모든 것에 신경을 쓰려하지 말자. 메뚜기 교미하는 것에도 신경 쓰고, 까치가 날아가는 것도 신경 쓰고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도 신경 쓰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편하게 해주자. 가만히 보면, 그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보다 자신의 주변에서 더욱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주변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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