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일부 내용 중 불확실한 부분 있고 내용의 비약이 있음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1831년, 한성부 경행 방(慶幸坊) 향고동(鄕校洞) 사저에서 이원범(李元範)이라는 인물이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홍국영과 역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아 식구들이 교동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거기서 그의 아버지가 살아남게 되고, 40년을 살다가 유배에서 풀려나 한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3남으로 태어난다.
원범의 아버지는 그가 10살 때 돌아가셨다. 또한 그가 14살 때인 1844년 큰 형이 역모에 휩싸이면서 기구한 운명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건으로 그의 큰 형은 처형되었고, 연좌제로 인해 작은 형과 함께 또다시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범과 작은 형은 강화도로 귀향 보내졌다.
원범은 자기 친척 집의 종노릇을 했고, 장날이 되면 가장 값싼 일꾼 노릇을 했으며, 인정머리가 털끝만큼도 없는 주인의 채찍을 거의 매일 맞았다. 그렇듯 그는 빈농의 생활을 이어가며 강화도 시절을 살았다. 그 시절 '양순'이라는 하급 계급의 여인과 결혼을 생각했던 순수한 청년이었다. 이후 원범의 작은 형과 5년 간 농사를 짓고 나무를 베던 그는 19세가 되어가는 어느 시점, 그가 살고 있던 강화도의 작은 초가집으로 긴 행렬이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형이 역모에 몰려 죽은 전례를 알고 있던 그는 이번에는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생각했다. 원범과 그의 작은형은 아주 다급하게 산속으로 도망쳤다. 도망을 가다가 그의 작은 형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원범이 목격한 그 행렬이 사실은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행렬이란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의정 정원용의 주민들의 끝없는 협조와 설득으로 인해, 그는 결국 조선의 제25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로 옹립된다.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철종'이다.
그는 왕이 되었지만, 그의 '양순'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천한 신분의 양순은 궁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무수리'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처지라, 왕의 후궁이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양순'에 대한 상사병으로 철종이 오랜 시간을 괴로워 하자, 조선 왕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양순을 독살시켰다.
나이가 어리고, 농사를 짓던 인물이 왕이 되자, 대왕대비는 수렴청정을 하였다. 정치의 실권은 안동 김 씨의 일족이 좌우하고 있었고, 탐관오리가 횡행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기도 했다. 철종은 스스로 여러 가지 정책을 고심하고 민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뿌리 깊은 세도의 굴레에 얽매여 제대로 정치를 펴지 못했다.
결국 그는 1863년 12월 8일 재위 14년 만에 33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