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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27. 2022

[소설]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_감정을 파는 소년

 누군가의 감정을 매입하고, 다시 누군가에게 그 감정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소년의 이야기. 골목에 위치한 간판 없는 허름한 가게에 주인과 종업원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판매하고 매입한다. 그로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사고 판다. 사랑, 증오, 열등감, 행복,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사려하고, 팔려고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비슷한 소재의 책들이 최근들어 많이 발견된다. 가령, 최근에 읽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시간을 판느 상점'이 그렇다. 꿈과 기억, 감정을 사고 파는 일들은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는 존재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생겨난 감정은 쓸데없는 방해꾼인 것 처럼 여긴다. 누군가가 돈을 주고 사간다면 '얼씨구나'하고 팔고 싶은 감정들을 잔뜩 지니고 있다. 좋고 나쁜 감정들은 널뛰기처럼 우리에게 들락날락 거리지만, 불편한 불청객처럼 우리는 그들을 좋은 마음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특히,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일수록 모든이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지 않다. 소설은 중간 중간마다, 같은 대사가 나온다. '쓸모없는 감정은 없어'. 가게에는 슬픔을 구매하러 온 손님과 증오감을 비싸게 구매하는 손님이 등장한다. 심지어 열등감을 얻갔던 이도 있다. 이들의 감정은 적재적소마다 적절하게 사용된다.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간 이는 결국 '사랑'을 잃고 만다. 삶을 살다보면,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은 번걸아가며 일어난다. '인생지마 새옹지마'라는 변방에 사는 늙은 이의 말을 예를 들지 않덜다도 이는 우리 인생에 누구도 겪는다.

 스무살, 오래된 잡화점에서 PD수첩이라고 적혀있는 메모장을 구매했다. 거기에는 자질구레한 모든 내용을 기록했다. 당시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내용들부터 너무 기뻐서 잠에 들지 못했던 모든 순간이 기록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펼쳐든 수첩에 '감정'은 증발되어 사라져 없었다. 그저 당시 그랬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느날, 들쳐본 수첩은 내가 들쳐 본 날의 기분에 따라, 모든 기록이 기쁜 일이 되기도 했도 내가 들쳐본 날의 기분에 따라 모든 기록이 나쁜 일이 되기도 했다. 사람의 감정이란 오락가락하며 출렁이는 파도와 같다. 그것이 멈춰지는 일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10리 밖에서 바라본 바다는 고요하고 넓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씩 그 바다에 가깝게 갈수록 파도는 출렁이는 '골'과 '산'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찰리 체플린은 이에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그렇다. 한 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바도는 가깝게 보기에 언제나 출렁 거린다. 서핑을 즐기는 서퍼에게 좋은 바다란 출렁이는 파고가 높은 바다다. 바닷가에서 조용히 발을 담구고 싶은 이에게 좋은 바다는 잔잔하게 발끝을 조심히 적시는 바다다. 결국 좋은 바다와 좋지 않는 바다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나의 첫 번 째 저서인 '앞으로 더 잘될거야'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 내용이 있다.

'좋은 일이 있다고 기뻐할 필요도, 나쁜 일이 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며 그 출렁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지만, 도서 전반적으로 짧은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이 소재들은 앞사람과 뒷사람이 연결되며 이야기를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준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팔러 온 사람과 그 사람이 판 감정을 비싼 돈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우리는 필요한 감정과 불필요한 감정이 과연 사람마다 다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에게 다시 생겨난다. 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필요와 불필요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모두는 저절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실제 감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팔았던 감정이라도 다시금 내가 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비극이라 불려지는 일들이 존재했다. 당연히 '희극'이라고 불려지는 일들도 존재한다. 그 상황은 그 상황에 머물고 있을 뿐, 현재의 나를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 상황과 시간을 거기에 두고 시간을 따라 멀리 멀리 나아간다. 소설은 각 주인공들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사연있는 주인공들은 각자 슬프거나, 기쁘거나, 사랑스럽거나,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또한 스치는 감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술된 이야기를 조금 더 뒤로, 조금 더 더 뒤로 끌어낸다면 아마 주인공은 감정을 팔아야 할 이유도, 사야할 이유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10대들을 위한 짧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책은 성인에게도 굉장히 좋은 독후감을 느끼게 한다. 큼지막한 글씨에 짧은 구성의 소설이지만 쉽게 몰입하고 우리 주변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이뤄져 있다. 학생이 아니라, 성인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이 서술된다. 사람의 감정은 '청소년'이라고 무디고, 성인이라고 기민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에 맞는 크기의 기쁨과 슬픔이 존재한다. 이에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나 '독서'다. 연예인 지망생의 이야기, 공시생과 수험생의 이야기, 오래된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 미혼모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는 짐작할 필요도 이유도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급하게 변해가는 나와 주변인들이 언제라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이미 한차례 공감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사람과 난데없이 상황을 맞이한 사람은 문제를 대변하는 자세가 다르다. 김수정 작가님은 바이크를 타고 대한민국의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우리의 대부분이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봤을 것이고, 또한 그를 통해 더 많은 생각을 얻었을 것이다. 소설 중 생각치 못했던 가상인물들의 삶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에서 얇지만 유익한 시간을 갖게 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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