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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18. 2022

[생각] 다소 욕을 먹을 수 있는 이야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하여


 다소 욕을 먹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기재한다. 다만, 누군가는 이런 생각도 해야 할 것 같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기를 강요받는 사회 또한 옳지 못하기에 글을 쓴다. 



2003년 3월 20일 미군과 영국군은 이라크를 침공한다. 20일 뒤, 이라크 공화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이라크 현직 대통령을 체포한다. 그리고 3년 뒤 그를 사형시켰다. 이 침량전쟁에 대한민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 규모의 병력을 투입시켰다. 이 전쟁에서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는 6만에서 7만 명이 발생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키예프'를 점령하고 자하며,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려 한다. 두 전쟁 중 어떤 전쟁도 맞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크라이나 지역이 아니더라도 3월 밖에 되지 않은 2022년, 이미 전세계에서 1만 6천 명이 분쟁으로 사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가 과연 '전부'인지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일이 발생했을 때, 미디어가 보도하는 내용을 의심하지 않고 흡수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2022년 3월 16일',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대한민국의 미디어는 온통 '러시아 디폴트', '러시아 국가 부도 선언일' 등이 도배됐다. "푸틴의 참극", "러시아 부도" 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가 '파산'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1997년 9월 23일, 이런 기사가 있다.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현재의 어려움은 관리가능한 범위 내에 있으며, 한국 경제의 기본 경제 체질은 여전히 건전하고 거시경제 지표도 경기저점을 지나 호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뒤, 대한민국은 국가 부도를 맞이 했다.



 '러시아 디폴트'라는 '검색어'가 몇 일 째,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인도적인 슬픔을 뒤로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아침도 일터로 나가 '돈벌기'를 하고 있으며, 자신이 투자한 회사 주가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세상 벌어지는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낄 수는 없다. 단일 폭격으로 가장 많은 민간인 사망자가 난 사건은 사실상,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사건이다. 이 시간으로 히로시마에서는 9만에서 16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나가사키에서는 6~8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대량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뒤에도 우리는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대전을 바라 볼 뿐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이 표출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 그중 상당수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의 사상과 경제적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누구 편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남산은 남산이기도 하지만 북산이기도 하다. 모든 상황에서는 관점이 존재한다. 이런 관점이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면, 남산이 북쪽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국제관계 뿐만아니라, 미시적으로 한 개인의 인간관계 역시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오늘은 이곳에 있다가, 내일은 저곳에 있기도 한다. 남산이 무조건 남쪽에 있어야 하는 '고정관념'으로는 그 산을 넘어선 순간부터 방향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어떤 음모에 의해 '언론이 조작'되고 국가의 힘에 의해 선동하고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이는 순전히 자연에 의한 대중의 심리가 언론에 의해 반영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리처드 도킨스는 '하향식 설계'와 '상향식 설계'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흰개미집'을 본 적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흰개미집의 모형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를 몹시 닮아 있다. 아주 비슷하게 생긴 이 두 구조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흰개미집은 '상향식 설계'에 의한 구조물이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하향식 설계'에 의한 구조물이다. 설계자가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하향식 설계'와 다르게, 흰개미집은 '설계도면'이 없다. 그들은 주어진 규칙에 따라 부분적으로 발달한다. 이는 하늘을 무리 지으며 어떤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 내는 철새를 보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전체의 모양을 염두하고 하늘을 비행하는 것은 아니나, 가만히 보면 잘 연습된 단체 공중쇼처럼 보인다. 이들은 새 한 마리, 한 마리가 일정한 각도라는 규칙을 따르며 비행할 뿐이다. 즉, 전체의 그림을 염두한 구조체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의 비행 속도와 방향에 맞춰, 개별로 작동하다보니 구조체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언론의 이런 편상성이 '하향식' 구조에 의해 생겨 났다고 믿지 않는다. 이는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한, '자연선택적' 상향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상향식이던, 하향식이던 언론이 편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그 어느 언론에서도 '러시아'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가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매장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보도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내가 바라보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오류도 분명하게 벗어나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에도 분명한 슬픔이 있지만, 지난 한 달 간, 우크라이나에서의 민간인 사망자수는, 지난달 대한민국에서 자살한 사망자 수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을 보느냐가 곧 진리는 아니다. 전세계 하루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260만 명에 이르고, 전세계에서 한 해에 일하다 죽은 산업재해 사망자는 200만명이다. 또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경우도 125만명이 넘는다.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든 죽음에 애도를 표현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도 분명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 났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것을 알고, 모르고 기준으로 생명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한다. 생명의 경시는 분명 피해야 하지만, 우리는 출근길 저도 모르는 '곤충'과 '식물'을 죽였으며 그것에 슬퍼하지 않는 이유가 단지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잔인하지만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생명에만 귀중함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희생되는 죽음은 전혀 모르고 산다. 경각심을 갖는 것도 하루 1, 2분일 뿐, 다시 누구나 극단적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그렇지만, 알게 된 슬픔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것 또한 굉장히 비윤리적이다. 실제 저도 모르게 죽은 이들에 대해 무덤덤 하며 누군가의 상상 속의 대역인 드라마 주인공이 죽어갈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다만 안타까운 것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어떤 것들에 노출되는지가 정치와 경제에 충분하게 이용된다는 것이다. 나또한 그들의 죽음에 슬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에 이용당하는 것에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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