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환 May 05. 2022

[일상] 무얼 적어야하지?_어린이날

 '투닥투닥투닥...' 무언가 적었다가 지운다. 번뜩일 때마다 적어 두었던 메모장을 펼쳐든다. 뒤져본다. 마땅치않다. 블로그 저장 기능에 임시저장했던 내역을 살펴본다. 마땅치않다. 지난 사진을 들춰본다. 마땅치 않다. 오늘 겨우 보냈던 어린이날 행사를 곱씹어본다. 마땅치 않다. 어떤 날은 할 말이 차고 넘쳐서 앉아 있기 지칠 정도로 써놓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도무지 할 말이 없다. 어떤 날은 밥 먹으려고 수저를 들다가도 수저에 대한 이야기가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작정하고 글을 적으려고 해도 적히지 않는다. 대단한 '문학가'도 아닌 것이 '영감'을 기다리는 '할멈'도 아닌 것이, 도무지 시작이 되질 않는다. 그러다 겨우 꺼내집은 것은 어린이날 행사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다. 두 시간 공짜로 나눠주는 행사 선물을 기다리다가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요거트 하나 물리고 돌아 온 주제에 행복한 '육아일기'를 작성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무엇을 적을까 '투닥투닥투닥...' 읽고 있는 책을 다시 펴든다. 완독하기 전에 리뷰를 쓰지 않겠다는 나름의 규칙을 이제와 깨기 두렵다. 가만히 생각해보고 좋은 일, 기억남는 일, 정치, 경제, 종교, 철학, 문학 별의별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고 날려보내기를 반복하다가 결정했다. '그래! 아무 주제도 없는 글을 쓰자'. 그렇게 시작한 글의 첫문장이 "'투닥투닥투닥...' 무언가 적었다가 지운다."이다. 대략 3년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블로그를 작성한다. 블로그는 개인적인 아픔을 잊기 위해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에는 그것에 '몰입'하고 있다. '개인적인 아픔'은 희미해지는 대신 써야한다는 압박과 고통이 그 자릴 대신했다. 어떤 날은 23시59분59초에 업로드를 한다. 그리고 다시 00시00분01초에 저장해두었던 두번째 글을 업로드 한다. 기술적으로 1일 1포스팅을 했으니 하루는 휴무로 여긴다. 어떤 날은 정신이 없을 일과표를 살피고 새벽 4시에 '후다닥'하고 포스팅을 올린다.


 매일 같은 시간에 포스팅을 해야 '조회수'도 높게 나오고 '구독자'들도 늘어난단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겨우 1일1포스팅하는 것도 겨우 하는 주제다. 글을 쓰려고 하면 망설이지만 첫 5줄을 써내려가면 그 뒤로 부터는 무아지경이다. 글을 쓰다보면 최초 쓰려던 주제와 상관없는 글이 나온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했다. 지저분하고 형편없는 글을 고쳐쓰다보면 너덜너덜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형편없고 지저분한 글이 '초고'이기 때문이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옷감'이 필요하다. 예전 고대-중세 시대에도 의복은 형태가 우아했다. 다만 '옷감'이라는 것은 구멍이 송송나고 마감처리가 엉망이었다. 옷감을 다듬고 쓸만한 부분을 빼다가 이어 붙이고 다시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여 우아한 의복이 탄생한다. 누에고치는 평생 한 번만 오줌을 싸는데 뽕잎을 먹고 덜 소화된 단백질 오줌을 갖고 만든 것이 비단이다. 결국 '멋스러움'이라는 것도 한낱 똥오줌에서 걸러낸 것에 불과하다. 배설도 잘 다듬고 정화하면 금비단 못지 못하다. 수 년 전, 베트남 다낭을 여행했을 때 기억이 난다. 여행 마지막날 루악커피를 마셨다. 사향고향이가 커피를 줏어먹고 배설한 것을 인간이 세척하여 다시 먹는다. 그 고약하고 더러운 고양이 똥이 비싸고 고급지게 팔리는 이유는 어찌됐건 결과물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세척된 고양이 배설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즉석에서 내려 마셨다. 머릿속으론 '루악'이 아니라 '우엑'하는 소리가 맴돌았지만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바리스타는 '설탕은 단 한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으나 씁쓰름할 것 같은 표정과 커피의 맛은 닮지 않았다. 생전 그처럼 맛있고 달콤한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다시금 '고양이똥 맛'이 생각나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무엇이었느냐'를 잊게 만들었던 결과물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는 시험보기 전날 나에게 말씀하셨다. '방법은 네가 찾고 점수는 만들어보거라! 컨닝을 해도 좋다!' 아버지의 말씀 마지막이 떫떠름했다. '아버지는 평생, 나쁜 짓 하지마라, 부정적인 행동하지마라, 요행을 바라지마라'를 달고 다신 분이셨다. 아버지의 말씀이 끝나고 내 표정이 물음표로 바뀌자 아버지는 다시 입을 떼셨다. "길게 보자면 아마 컨닝을 하는게 더 어려울 거다." 실제 나는 그 시험에서 컨닝하지는 않았다. 목적이나 결과가 타당하다면 과정이야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는 결과지향주의를 곰곰히 살피자면 결국 큰 그림에서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에서 28시간만에 완공한 10층짜리 아파트가 34억에 팔렸다. 새로운 공법을 통해 단시간에 완공했으나 더 튼튼하다는것이 시공사의 입장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건축기간이 20년이었다. 생각보다 길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피라미드는 4,000년이나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 개인적인 입장차이는 있겠지만 만약 내가 평생 한 곳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28시간 지은 건축물보다는... 대답하지 않겠다. 생각해보면 정도가 정답인 것은 맞다. 다만 99의 정도에서 1의 변칙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1의 변칙없이는 진화나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글을 잘 쓰고 길게쓰고 많이 쓸 수 있는 비결을 생각해보니 그렇다. 결국 이것도 정도다. 일단 쓰고보고 읽어보고 시작해보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99는 그렇고 1은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99가 어느정도 통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보자면, 벌써 '투닥투닥투닥...'으로 시작했던 길 잃은 나의 글이 벌써 마지막을 다해가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읽을책] 한, 얼, 알, 울_어린이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