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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15. 2022

[생각] 당신의 미래는 어둡다


 당신의 미래는 어둡다. 당신의 자녀와 부모를 비롯해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고 당신이 살고 있는 집도 흔적도 없이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당신의 두 눈은 점차 흐릿해지고 두 다리도 점차 힘을 잃을 것이다. 언제나 쉽게 하던 일들도 겨우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직장은 문을 닫고 당신과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죽음을 맞이 할 것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예언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없을 것이다. 당신이 사용하던 모든 물건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행복했던 모든 기억과 순간도 잊혀질 것이다. 하고 있던 일을 그만 두게 될 것이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지금 당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눈 앞에 있는 사람과 물건, 환경, 장소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없어져 버릴 것이다. 원래 그렇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 다만 모든 것에 똑같이 적용된다. 당신이 고민하던 고민들이나, 당신을 괴롭히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당신이 끔찍해하던 것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당신이 싫어했던 음식들도 모두 먹고자 해도 먹지 못할 것이고 지옥과 같던 고통들도 모두 차츰 사라질 질 것이다. KBS2 예능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방송인 장동민 님은 한 중학생의 고민에 답했다. 중학생의 고민은 이랬다. '사는게 날마다 힘든데 어른들은 어떻게 사는게 힘든지 궁금하다' 이 고민에 어린 친구에게 해줄 긍정적인 말을 고민하던 다른 출연자들과는 다르게 '장동민 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내일은 더 최악이다. 다음 날은 그보다 더 최악이다." 


 "내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당시 맞이하던 현실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시 시절에는 그것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군 입대를 해보니 그것이 더 최악이었고 사회로 나가보니 그보다 더 최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하루 최악을 맞이하다보니 결국은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밝은 미래'가 아니라 '더 최악'이 찾아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10년 전에 비해 더 나이들고 더 많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10년 전에 비해 덜 활동적이며 10년전에 비해 덜 유쾌해졌다. 시간을 역행하여 잠시나마 더 건강해지고 더 젊어지고 더 행복해 질수는 있으나, 그것도 잠시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더 늙고 더 못생겨지고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별할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없어져 가는 것을 차츰차츰 고통스럽게 지켜 볼 것이다. 두 눈은 점차 흐릿해지고 종국에 와서는 내가 좋아하던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은 물론 '나'조차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내가 살아갈 일상 중에 유일하게 '행복'한 순간,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완전하게 남있는 시간, 유일하게 그것을 만지고 보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며 그 '지금'이 방금 전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다시 남은 유일한 행복한 시간은 다음에 찾아오는 '지금'일 뿐이다. 바라보는 모든 것은 언젠가 '박물관에 전시된 유리 넘어의 전시품'처럼 빛바래고 형편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하루 15명은 교통사고에 의해 죽는다. 이틀에 한 명은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다. 하루에 일하다 사고로 2.5명이 죽는다. 대한민국에서 1시간 20분마다 한 명 씩, 살해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업무도중 사고로 죽는다. 다시 대한민국에서 38분마다 1명씩은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 대한민국 영아사망자는 한해 822명으로 어떤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1년 안에 죽고 또 자식을 잃는다. 매일 2.5명이 태어난 뒤 1년도 되지 않아 죽는다.



 '박영서' 작가님의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수 백 년 전 사람들의 일기를 모아 재편성한 글이다. 그 글에는 사랑과 미움, 원망에 대한 일기와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오늘과 같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사기치고 억울해하고 했다. 남의 일기를 들춰보는 것이 죄송스럽긴 하지만 마치 오늘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그들은 이미 수 백 년 전에 죽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미워하던 대상, 그가 사랑하는 대상도 모두 죽었다. 할아버지의 할어버지. 그의 할아버지보다 더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에는 '젊은이의 음담패설'이나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에 대한 한탄, 부동산 사기를 당한 양반의 이야기도 있었다. 이 모든 삶의 이야기들도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입고 있던 옷조차 흔적이 없고 그들이 좋아하던 경관은 아마 모두 불도저로 밀어버린듯 깨끗하게 지워져 그 위에 아스팔트나 콩크리트 건축물이 세워졌을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땅 위에 100년 전, 1000년전, 1만년 전, 10만 년 전, 누군가의 기억과 흔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짓밟고 뭉게어 그 위에 생활하고 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그들은 어차피 없는 존재들이다.나또한 얼마뒤 그렇게 될 것이다. 불평불만을 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에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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