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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19. 2022

[일상] 하루가 시작되는 과정

 코코넛 향기의 바디워시를 사용한다. 일어난 거품을 씻어낸다. 머리에는 이름 모를 싸구려 샴푸를 한다. 손가락 끝을 세워 두피를 마사지 한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각질과 비듬을 씻어낸다. 눈은 뜨고 있다. 눈에 거품이 들어가지 않는 '어른의 머리감기 스킬'은 30년 전 터득했고 익숙해졌다. 의미없는 동공은 샤워실 타일에 머무른다. 누리끼리한 욕실 조명이 벽을 때리고 동공으로 들어오지만 머리 속으로는 지난 일과 오지 않은 하루를 시뮬레이션 해본다. 의미없다. 물로 헹궈낸다. 비 젖은 강아지 마냥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현실로 돌아온다. 차가운 물로 마무리한다. 정신이 번쩍든다. 과거와 미래로 오갔던 망상 스위치가 꺼진다. 개운하게 샤워가 끝나면 샤워가운을 걸치고 화장대로 간다. 스킨과 로션이 하나로 됐다는 점원의 권유에 골랐던 그것을 집는다. 두 번 짠다. '푸쉭'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귀찮게도 다시 그 점원을 보러갈 때가 됐나보다. '잊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반드시 잊을 것이다. 몇 일을 당기는 피부를 견디고 지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결국 작정하고 '스케줄러'에 구매 목록을 적어 놓을 것이다. 그러고도 그 다음 날에나 구매하겠지... 셔츠를 입고 밸트를 찬다.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는 '향 좋은 무스'를 살짝 손바닥에 짠다. 머리에 대충 털어 놓는다. 곱슬머리가 적당히 정리가 되면 나름 자신있는 표정을 거울에 지어 보인다. 저 표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생각을 마치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1층으로 내려간다. 스마트워치를 착용한다. 다시 정정하겠다. 만보기를 팔목에 찬다. 어쩌면 시계가 가능한 만보기일지 모른다. 충전 가득하면 이 멍청한 기계는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내준다. 막 충전을 마쳐서 그런지 팔목이 뜻뜻하다. 옆에는 은색 반지가 있다. '유니세프' 정기 후원자 전용 반지다. '뚜뚝, 뚜뚝' 관절을 하도 꺾어놔서 두꺼워진 손가락에는 맞을리가 없다. 새끼 손가락에 겨우 쑤셔 집어 넣는다. '나 정기적으로 기부같은 거 하는 사람이오!' 허세를 세심하게 부려본다. 얼마 전 40만원이 넘는 반테 안경을 쓴다. 명품따위 관심없다고 해놓고 얼마 전, 40만원이 넘는 안경을 구매했다. 특별하게 잘보이냐. 그렇진 않다. 안경의 브랜드를 내가 아냐. 그렇지 않다. 상대가 알 수 있냐. 아닐 것 같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이언맨 슈츠를 입은 듯 하다.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공조'모드를 걸어둔다. 아마 10분 뒤부터 전기자동차 내부가 싸늘하게 식을 것이다. 주인없이 열심히도 일하는 자동차는 가까이 가면 혼자서 터질듯 돌아가고 있다. 차량 외부가 뜨거워 질수록 내부는 차갑게 식어간다. 1층 문을 열고 차에 들어 앉는다. 에어컨 공기에서 다음 에어컨 공기로, 그리고 그 다음 에어컨 공기로 빠르게 이동해가면서 최대한 몸에 땀이 나지 않도록 한다. 뽀송뽀송함을 유지한다. 뽀송 뽀송함을 유지하는 착각을 하는 대신 '노폐물'을 피부 밑에 저장한다. 그 '유독'한 것들이 각종 심하지 않은 증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간지럽거나 푸석푸석하거나, 때로는 피지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다. 차와는 다르게 외부를 차갑게 할수록 내부는 뜨거워진다. '소리가 나지 않는 전기차'를 구매한 건, 너무 마음에 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자동으로 연결된 스마트폰에서 드라이브하기 좋은 선곡을 재생시킨다. 목적지를 내비게이션에게 알려주면 준비가 완료된다. 제주의 상쾌한 공기를 드라이브하며 마실 일이 없다. 겨울에는 히터를 틀고 문을 꼭 닫는다. 봄이나 가을 따위는 없다. 덥거나 춥거나 둘 뿐인 날씨에 차의 창문은 커피 드라이브 스루 할 때가 아니면 열어 볼 일도 없다. 쾌쾌한 냄새가 나면 휘발성 방향제를 사다가 에어컨 송풍구에 걸어 놓는다. 아이들이 이 냄새를 맡고 '우엑'하며 헛구역질을 하자, 말린 장미 포푸리를 차에 비치했다. 아이들이 장미꽃을 콧구멍에 갖다 대며 좋은 냄새가 난다고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고 얼마 뒤 장미 꽃잎은 차의 의자 밑과 바닥, 컵홀더에 잔뜩 끼어 있다. 얼마 정도를 정리했는데도 계속 나온다. 유튜브 채널에서 홍보하는 '말랑이'인지 뭔지를 가지고 놀다가 속에 있는 물풀이 터진 적도 있다. 물풀이 터지면서 차량 천장과 의자가 촉촉히 젖었다. 괜찮다. 그곳에는 이미 아이들이 감자 튀김도 쏟았고 초콜렛 아이스크림도 잔뜩 흘렸으며 토하거나 볼 일을 보기도 했다.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표면에 발라뒀던 코코넛 향기는 이미 쾌쾌한 냄새와 섞여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건 담배는 피지 않는다.

 차에서는 음악이나 유튜브 채널을 음향으로 듣는다. 예전에는 '인문학 강의'나 '역사 강의'를 들었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2배속 하고 듣기도 했다. 다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멍때리기 좋은 '말 장난 하는 유튜버'의 채널을 틀어놓는다. 구겨진 신문지 같은 뇌속으로 다시 구겨진 신문지를 구겨 넣는다. 빽빽하게 정보가 적혀 있으나, 읽을 만한 건 하나도 없는 구겨진 신문지가 쌓이면 쌓일 수록 정보는 많아지나 읽거나 쓸 수 없다. 내 머리에 대한 죄책감이 쌓이면 명상어플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전자 새소리는 도착지까지 울어댄다. 시동을 끈다. 전자 새들이 울음소리가 그치고 차 문을 열고 나가자, 진짜 새들이 울고 있다. 진짜 새들의 소리를 철저하게 음소거하고 전자 새들의 소리로 위안 받고 있는 현실이 현실인지 묻는다. 어쩌면 매트릭스처럼 가공된 현실을 살고 있나 생각한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얇은 셔츠 안까지 밀어 들어오면 그 때서야 현실자각을 한다. 떨어진 산소호흡기를 연장하듯, 에어컨이 있는 건물 내부로 빠르게 걸어간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다른 건 눈에 뵈지 않는다. 에어컨이 켜졌는지 확인하고 꺼져 있다면 파워 모드로 놓는다. 어디서 보기에 에어컨은 키지마자 '파워모드'에 설정해야 전기료가 덜 든다고 합리화한다. 산소가 폐속까지 공급되면 숨을 크게 들여 마신다. 하루가 시작이다. 눈을 잠시 감고 구겨진 신문지들을 하나 하나 쓰레기 통에 던져 넣는다. 머리가 가벼워진다. 그러면 이제 다시 신문지를 구겨 하나 둘 채워 넣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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