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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20. 2022

[소설] 썩은 미소 짓게 하는 일상_흑소소설

 아이와 만화영화를 보다가 흠짓한다. 'XX실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제조회사가 제작사다. 애니메이션, 만화를 제작하는 업체가 '제조업 회사'라는 사실에 놀란다. 아이와 만화를 들여다보니 주인공이 뭔가를 들고 있다. 내가 보던 '미래소년 코난'은 나무막대기를 엉성하게 들고 있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본다. 영상 속 주인공들은 '시계'나 '마술봉' 등 다양한 아이템을 착용한다. 더 자세히 보니 만화속 아이템들은 '현실 제작이 수월한 디자인'을 가진다. 디자이너들이 올림픽 마스코트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그것으로 '굿즈'로 만들기 수월하느냐다. 기껏 전 세계가 주목하는 광고에 십 수조 원이나 들여놓고 '굿즈' 제작이 어렵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도쿄 올림픽 '미라이토와'의 날개와 귀는 '굿즈' 제작이 쉽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헬로우 키티'는 '만화 영화'로 수익을 얻지 않는다. 대부분은 굿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아이들의 장난감이 '합체'하거나 '변신'을 한다. 저것을 장난감으로 판매하면 그럴싸 할 것 같다. 다만 '합체'와 '변신' 와중에 잃어버리는 부품은 다른 장난감과 섞여 출처를 모를 부품 조각이 될 것이다. 몸통과 부품은 분리되어 몸통도 부품도 쓸모 없게 되면 아이들은 새로운 완전체를 사길 고대한다. 여러가지를 모아야 완전체가 되는 구성은 부모를 골치 아프게 한다. 포켓몬 빵을 버리고 스티커를 모으다가 유독 나오지 않는 캐릭터 하나를 모으기 위해 몇 개의 빵을 더 사먹는 것처럼 구매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린 시절에는 완구류 '광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완구류 광고'가 사라졌다. 마케팅을 공부한 학도의 눈에 '마케팅'의 발전이 눈부시다고 감탄하면서 부모의 눈에 '마케팅'의 발전이 눈부시다고 비탄한다. '딱! 하나만 사!' 모든 부모가 완구 코너 앞에서 말한다. 아이는 고심하고 결국 하나를 꺼내든다. 다시보니 집어든 장난감이 우리집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 묻는다. '그건 집에 있지 않아?' 아이가 대답한다. 조금 다르단다. '조금 변형 시켜서 다른 종류로 만든다면 공장에서 수작업하기 수월하기는 하겠네...' 생각한다. 

물품을 구매해 달라고 떼를 써주는 협력자가 가정마다 한 둘 씩 심어져 있으니 'XX실업'은 영특하다 생각한다. 현실 고증이 너무 잘 된 소설에 감탄한다.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소재를 어떤 걸 해야할까?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소재? 불치병에 걸린 소녀와 재벌 2세의 사랑 이야기? 부모가 반대하는 연애를 하는 이복 남매의 이야기? 세상 모든 소재가 이미 나와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설가의 상상력이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때 무궁무진해진다. 둥근 것만 보면 모두 여자 가슴으로 보이는 이야기. 분명 있을 수 없지만, 있음직한 상상력이 괴상망측한 소재의 소설을 만들어 낸다. 그다지 야한 것도 아닌데 '가슴'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아슬아슬 거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얼마 전 한 다발로 구매했다. 그는 적정선을 지키며 일정한 퀄리티의 소재를 무한히 집필한다. 읽고나면 내가 뭘 읽고 있는가 싶지만 다시 읽는다. 다작 중에 명작도 엄청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다. '흑소소설'은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썩은 미소' 정도가 될까. 읽다보면 '에~?'하는 일본식 리액신이 저절로 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환장 웃음 시리즈' 세번째'라고 한다. '독소소설', '왜소소설', 괴소소설'이 더 있단다. 소설은 킬링타임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 가볍지만 묵직한 책의 무게감은 얼마나 읽었는지 살펴볼 새 없이 마지막까지 읽힌다. 이렇게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게 '일본 소설'의 장점이다. 만화책 보듯 가볍게 보다보면 어느새 몇 권을 읽게 된다. 스무살 즈음에해서는 이런 소설을 자주 읽었는데 싶다. 앞으로 가벼운 소설류도 종종 읽어 볼 요량이다. 작가의 글은 작가를 벗어나 존재하기 힘들다. 괴상망측한 소재의 글을 썼다는 것을 보면 작가의 잠재의식에 괴짜스러움이 있음직하다고 짐작한다. 그의 소설에서는 다양한 환경과 직업이 나온다. 어쩌면 저렇게 다양한 상상력을 할 수 있는지 부럽고 존경스럽다.

 가장 관심이 가는 소재는 '너무 잘 보이는 남자'의 이야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잘 보이는 남자의 이야기는 소재의 발견에 놀랍다. 냄새를 비롯해 아주 미세한 것까지 너무 잘 보이는 남자의 이야기. 사실 생각해보면 가시광선 범위에 있는 것을 겨우 인지하며 살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화장실 냄새나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확산되고 이동하며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인다면 재밌을 듯하다. 냄새를 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인간의 콧구멍과 엉덩이로 오가는 다양한 무언가를 보겠지 싶다. 그 존재가 식물이나 곤충이나, 동물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입장에서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 서로 더러운 가스를 위 아래로 내뿜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에 펴바른 파운데이션 가루가 날아가지 못하고 얼굴의 유분과 솜털에 엉켜 독특하게 붙어 있다면 어떨까. 소설을 읽으며 그 소재의 참신함에 놀라지만 어쩐지 '썩은 미소'가 지어진다. 사실 이야기를 다 읽고 보니 그 가벼운 소재들이 '인간의 본성'을 닮고 있는 듯하다. 작가가 글에 철학을 담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답고 멋있고 그럴싸 한 것들에 포장되어 있어도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없는 듯 하며 숨기고 살아간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고나서 드디어 흑소(썩은 미소)가 지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도 잔뜩 샀지만 그가 준비한 웃음 시리즈의 나머지 3권도 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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