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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06. 2022

[생각] 생겨 먹은 대로 살자


 원래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인데 어릴 때는 삶에 의미를 찾으려 했었다. 없는 것을 찾으려 했더니 번뇌만 커졌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나 '부자가 되는 것'. 그런 것이 의미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대하고 확대하고 다시 확대하다보니 인간이란 그저 덜 진화된 초파리마냥 우리 은하 어딘가, 찰나와 같이 지나가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귀가 어둡고 눈이 멀고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지면 그 '의미'라는 것도 함께 사라진 무의미한 것들이다. 청나라에서 태어난 '선통제'처럼 태어날 때는 황제였다가 눈 감기 전에는 정원사일 수도 있고, 명나라 '중팔이'처럼 태어날 때는 거지였다가 눈 감을 때는 황제일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대사처럼 곱씹어보면 계획대로 살 수 없는게 인생이다. 계획이 없는게 계획이면 어쩐지 계획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계획없이 살지 못하는 팔자를 돌이켜 보니, 그 마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발사 된 제임스웹은 330억 광년 떨어져 있는 GLASS-z13을 발견했다. 이 은하가 우주가 탄생하고 3억 년 쯤 됐을 때 모습이란다. 우주나이가 135억년인데 그것보다 더 먼 거리에서 출발한 은하라는 것은 황당하다. 이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빨라지면서 빛이 이동해야하는 길이가 더 길어졌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원시 은하는 이미 135억 년 전의 모습이고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주의 공간 어딘가를 '빛'의 모습으로 날아가고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의미를 고뇌하던 내 어린 시절도 반대 편 은하의 외계 생물체에게 330억 광년 뒤에 빛의 형태로 날아갈지 모른다. 내 지난 모습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빛의 형태로 우주 전 공간에 뿌려지고 있는 셈이다. 이 빛은 최소 330억 년은 우주 내에 유효하게 살이 있을 것이다. 빛의 형태이지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우주의 한 공간에 공존한다. 빛이 굴절하여 그것이 나에게 튕겨져 나온다면 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카메라가 담지 못했던 순간과 내가 보지 못한 순간도 모두 빛의 형태로 우주 어딘가를 날아가고 있다. 기술의 한계로 그것을 볼 수 없느냐, 있느냐의 문제일뿐 분명 존재한다. 혹시 날아가던 빛이 블랙홀처럼 강력한 중력의 언저리를 지나가다가 굴절되어 다시 지구 방향으로 날아오는 행운을 '제임스웹'이 포착하진 않을까. 대단한 천체물리학자들이 바라본다는 미래 인류가 보낸 우주 망원경이 보내는 사진 속에 우연하게 내 모습이 찍혀있진 않을까? 점점 인지 능력이 둔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가벼운 상처에도 꽤 오래 거슬렸는데, 지금은 어디서 다친지도 모를 상처가 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에 있다. '언제 다쳤지?' 싶은 상처들보다 더 씁쓸한 것이 지나오는 시간이며 생각이며 감정들이다. 현실이 무더기로 몰아쳐 오면 감당하지 못해 허둥지둥 그 상황을 모면하길 반복하다보니, 아이에게 화냈던 순간과 바보같은 말 실수와 '불필요한 행동'들이 뒤늦게 떠오른다. 둔감해지고 싶지만 타고 난게 예민해서인가 삼켜지지 않은 목속에 생선 가시처럼 박혀 있다. 생긴대로 살아야하는가. 좋고 나쁘고, 정신없고 힘들고 웃긴 순간의 감정들이 불순물이 되어 머릿속에 가만이 남아있다가 침전된다. 그러다 가벼운 바람만 불면 바닥에 있던 이미 썩어버린 감정들이 올라와 흙탕물을 만든다. 해야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했던 것, 후회하는 것들이 정돈되지 않게 머릿속을 휘젓는다. 글자를 읽으면 잠시 글자가 눈에 와서 박히다가 어느순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그 더러운 침전물들이다. 그것을 한참을 바라본다. 귓속에 들어오는 조잡한 소음들이 잠드는 시간에야 겨우 줄어든다. 생각할 시간이 겨우 생긴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다시 지저분한 침전물을 쌓아 올린다. 분명 얼마 뒤엔 다시 이 모습을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겠지만 별 수 없다.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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