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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08. 2022

[카페] 가성비 좋은 시청 뒤, 카페_시청뒤에서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같은 어른'의 심리를 일컬어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한다. 다행인 것은 나는 '중증 피터팬 증후군'은 아니다. 식후에는 적당히 씁쓸한 검정색 음료를 홀짝거리기도 하고 땀 흘린 뒤에는 시큼한 노란색 알콜을 들이키기도 한다. 소시지와 계란을 집어 먹다가 적당한 죄책감에 길을 잃은 젓가락이 빨간 색 양념 뭍은 김치로 가기도 한다. 어른들이 먹거나 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어른은 맞다. 굳이 이렇게 따져 묻지 않더라도 밖에 나가면 '저기요. 아저씨!'하고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어른'이다. 그에 걸맞는 외모로 늙어진 것도 내가 어른임을 입증한다. 자신을 속이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어른들이 먹는 '아메리카노'를 좋아진 않는다. 하루에 최소 5잔 이상은 마시는 '아메리카노'이며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에 들이키는 '맥주'와 밥 반찬에 없어서는 안되는 '김치'도 좋아서 먹는지, 흉내내기 위해 먹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직도 나는 '맥주'보다 '콜라'가 맛있고 김치보다 '초콜렛'이 맛있고 커피보다 '요거트'가 맛있다. 나와 비슷한 외형을 가진 '어른들'은 이것들을 정말로 즐기고 있는듯 하지만 내가 그것을 즐기는 다른 이유에서다. '콜라'나 '초콜렛'은 칼로리가 너무 높을 것 같다는 대안에서 마시는 맥주와 아메리카노다. 일부러 비싼 커피를 찾아 마셔보고 '캡슐커피머신'도 구매했다. 브랜드 있는 텀블러도 몇 개는 들고 있으며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한다. '내려 먹기도 하고 타먹기도 하고' 여러가지 형태로 커피를 즐기고 이름을 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씁쓸한 것이 맛있는줄 모르고 마시는 것은 '이런 거 마시는 어른'이라는 인식을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카페를 가면 '커피맛 좋은 곳'보다는 디저트 맛있는 곳을 찾는다. 커피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근처의 '투썸플레이스'를 갔더니 "어떤 종류로 드릴까요?" 묻는다. '아메리카노요"라고 답했으나 상대는 '블랙그라운드'와 '아로마 노트' 중 고르라고 한다. 그게 뭔지 알 까닭이 없다. '아로마노트 주세요'라고 이름 예뻐 보이는 것을 골랐더니, 시큼한 것이 식초탄 맛이 난다.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산미 많은 커피이며 플로럴한 아로마와 싱그러운 과일향의 커피라고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커피를 다 마셨다. 산도 높은 커피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확신을 하며 커피를 들이킨다.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잠시 숨을 멈췄다. 마니아들이 찾는다는 커피지만 '흉내내기' 하는 '피터팬 어른'에게는 맞지 않는듯 하다. 다음 번에는 '블랙그라운드'를 찾았다. 다크 초콜렛 향이 난다고 한다. 묵직함은 느껴졌으나 '이게 초콜렛이야?'라는 생각이들었다. 커피맛 아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추상적 표현에 어느정도 공감하면서 어느정도 실망했다. 최소 코코아처럼 초콜렛맛이 '확!'하고 느껴지길 바랬던 모양이다. 커피맛 모르는 입맛이라, 아이와 카페를 가면 '경쟁'하게 된다. 아이와 입맛이 비슷하다. 아이들은 달고 상큼한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 앞에서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는 이유는 맛있어서라기보다, 후식으로 먹기에 다른 음료는 '칼로리가 높기 때문'이지만, 이의 눈에 아빠는 커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서귀포 지역 중 내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귀포 우생당'이다. 서귀포에서 가장 큰 서점 중 하나다. 가장 큰 서점이라고 언급했으나, 다른 지역의 서점에 비해 크다는 느낌은 없다. 1인당 독서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 '제주'라는 통계라 있음에도 제주는 '서점'이 많지 않다. 심지어 '영풍문고'나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은 하나도 없다. 고로 내가 가장 많이 찾는 서점은 오랜기간 뿌리를 내려 온 '지역서점'인 '우생당'이 됐다. 우생당은 서귀포 시청 근처에 있다. 서귀포 시청을 자주 방문하기에 구매한 책을 들고 책 읽기 마땅한 곳이 없었다. 주변에 카페는 많으나,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가성비 좋고 조용한 카페를 하나 찾았다. '시청뒤에서'다. 시청 뒤에서는 말그대로 서귀포시청 제1청사 바로 뒤에 있다. 이곳은 아침 8시부터 오픈을 하는데 시청 뒤에 위치한 터라 공무원 분들이나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가볍게 한 잔하기 좋은 곳이다. 이 카페는 서귀포오름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이 센터는 무엇을 하는 센터일까. 센터는 근로능력있는 저소득층에게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자활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란다. 그밖에도 여러 기관을 통해 노인을 돕고 장애인과 산모, 아동 등 사회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는 사업이라고 하니, 기왕지사 맛모르고 마시는 커피가 좋은 일에 쓰이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수제 디저트를 하나 고르게 했다. 맛있는 디저트는 아이들이 잘 고를 것이다. 나와 입맛이 맞기 때문에, 아이가 고른 디저트를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쌍둥이를 데리고 이곳 저곳을 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날이 무척 더운 날 아이들은 조금만 배가 고파지거나, 조금만 더워지거나, 조금만 졸려지면 '찡찡' 거린다. 좀 전까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변해 갈 때쯤, 아이들을 상대하는 '아빠'도 변해간다. 분명 조금 전에는 '좋은 아빠'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변해가면서 상대적으로 아빠의 모습도 변해간다. 어차피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이 상대하는 인간관계이기에 언제나 좋을 순 없다. 최근들어 TV에 '오은영 원장'님이 자주 등장한다. 마침 내가 아빠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있는 시대에 맞게 자주 노출되고 계신 걸 보면, "세상이 '나' 들으라고 '원장' 님 띄워주시나?"하는 얼토당토 않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 오은영 원장 님의 말씀해 주시는 육아의 '정석'을 나는 맞추지 못한다. 아이와 언제나 웃을 순 없다. 아이와 토라지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장난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을 주고 받는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미리 사회의 여러 감정을 학습해 둘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화가 나는지, 어떻게 하면 상대가 슬퍼하는지를 약식으로 미리 배우는 게 하는 것도 육아의 좋은 점이라는 '자격증' 없는 아빠의 철학을 지킨다.

유리가 시원하게 있어, 지나가면서 볼수 있다. 내부는 시원하고 외부는 덥다. 조금만 밖으로 나와 있어도 금방 땀이 나는데 커다란 창을 통해서 1cm 앞의 더운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스크린을 통해 무서운 공포영화를 바라보지만 실제는 이불 속에서 감귤을 까먹는 편안한 보호감의 감정이 느껴진다. 예전부터 비 내리는 날씨를 좋아했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비가 천장을 부딪치며 묘한 안정감의 소리를 준다. 비로 부터 보호 받는 듯한 감정을 느끼며 편안해진다. 요즘은 이처럼 에어컨 가동한 내부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6년 정도 해본 '아빠'의 경력으로 치자면 아이들이 고른 음식 중 '이건 안돼!'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첫 째, 내가 싫어하는 것일 때다. 아이들은 분명 어느정도 먹는 시늉을 하다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을 남겨 버린다. 그것은 곧 내 몫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남긴 음식 중에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많으면 그것을 먹는 것은 고역이다. 둘째, 부스러기가 많이 생기는 음식이다. 원래 나는 배달음식을 먹으면 설거지까지 해놓고 내놓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그 습관을 지켜왔다.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흘린 음식은 반드시 내가 치운다. 식탁 밑으로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쪼그려 앉아서 다 주어 담는다. 마시던 커피를 냅킨에 살짝 적시고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는다. 아이들이 먹는 순서대로 하나하나 정리한다. 비닐이나 종이는 '군대 훈련소'에서 배운대로 딱지 형태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물론 밖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널부러져 있을 때는 세상 규칙없기도 하다. 어쨌건 이런 규칙 하에 아이들과 먹을 것을 정한다.

 '히비스커스라봉'이라는 음료를 주문했다. 아이들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층으로 된 이 음료를 잘 저어 아이에게 먹였다. '라봉'은 한라봉일 것이고, '히비스커스'는 이름은 어렵지만 쉽게말하면 빨간색 무궁화 비슷한 걸로 생각하면 된다. 클레오파트라가 좋아했다는 음료로 미용과 다이어트에 굉장히 좋다고 한다. 다만, 한라봉청에 엄청나게 설탕이 들어가 있을 것임으로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은 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살펴보니 '율마나무'가 있다. 하율과 다율의 이름이 '율마나무'에서 따와서 그런가, 어디를 가도 '율마나무'가 보이고 뭔가 특별해 보인다. 율마나무는 굉장히 키우기 까다롭고 어렵다. 물조절과 햇볕조절도 잘해야한다. 다만 어느정도 성장에 이르고 나면 거의 무한대로 자라는 특성도 있다. 이 나무를 만지면 사람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좋은 향기를 주는데 주변 사람들을 기분좋게 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참고로 율마나무의 꽃말은 '성실'과 '침착함'이다.

 음식이 준비될 때까지 아이들이 기다렸다. 불과 2~3년 전까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정말 힘들었다. 유모차를 함께 가지고 다녀야 했고, 유모차를 태우고 다니다가 한 아이가 울어서 안아주면 다른 아이가 자신도 알아달라고 보챈다. 쌍둥이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반드시 혼자사 신발을 신어야하고, 청소도 잘해야 했다. 부모로부터 빨리 독립할 수 있는 '독립심'을 기르는 것이 아이 육아의 첫번째다. 아이가 아무리 칭얼거려도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돕지 않겠다는 철학을 두고 아이를 키우고자 한다. 그래도 아이이기에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수준을 넘어서는 일은 분명 도와주기도 해야겠지만 말이다. 

 카페는 나무냄새가 기분 좋게 난다. 입구에 비치된 '율마나무'와 목재 테이블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더운 날씨지만 정서적으로 따뜻해지는 인테리어는 바깥 기온의 차를 무시한다. 아이들은 차분하게 기다린다. 쌍둥이는 둘이지만 실제 키울 때는 최소 4배 이상 힘들다. 쌍둥이가 아닌 자녀 두 명을 키워 본 적은 없으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같은 것을 2개 사기에는 돈이 아깝고 다른 것을 하나씩 사면 반드시 싸움이 난다. '나 쌍둥이 있소'하고 자랑하듯 똑같은 옷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해서 내보내는 다른 쌍둥이 부모들의 심정은 '자랑'이 아니라, 그것이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와 함께 가면 흔히 말하는 연예인이 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아예 모르는 누군가가 쳐다보거나 '똑같이 생겼어!'라고 신기해 한다. 분명 내가 보기에는 달라보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잘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음식이 나왔다. 치즈케익과 음료가 나왔다. 초콜렛 브라우니도 함께 나왔다. 사실 아이들과 외출을 하고 배를 굶긴 후에 갔던 터라 맛있게 먹었다. 다율이는 특이하게도 '치즈케익'을 좋아하진 않는다. 어쩐지 치즈케익은 나의 몫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아이가 안먹을 것이 분명 함에도 고르도록 두었던 이유는 '내가 고르고 구매'하지 않았다는 나름의 위로를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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