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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ug 20. 2022

[일상]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돕는 방법

문화 미디어 블로구 순위 491위

 1일 1포스팅을 한 것도 대략 3년 가까이 된다. 피치못할 몇번의 고비가 아니라면 최소 3,000자의 글을 꾸준하게 쓰고 있다. 너무 바빠서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것 이어지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다. 한 명보다는 두 명, 두 명 보다는 세명이 낫다. 평면적으로 보면 '나'라고 하는 한 명의 블로그지만, 입체적으로 보면, '어제의 나'와 '그제의 나'도 '오늘의 나'를 위해 돕는다. 블로그 조회수를 살펴봤다. 수 년 전 내가 썼던 글이 블로그 유입 대부분이다. 1일 1포스팅을 하면 포스팅한 글은 당일 100~200명의 사람이 본다. 대략 하루 조회수가 1,000명 정도니, 나머지 8~900명은 그 전의 글을 보러 오는 것이다. 3년 간, 포스팅 한 글의 갯수는 1,223개. 입체적으로 1223명의 내가 '시간'의 다른 배열에 놓여 '오늘의 나'를 돕는다. 줄어들지 않고 꾸준하게 나를 돕다. 시간에 따라 자아를 나누면 나를 돕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오늘의 나'도 다음에 오는 '오늘의 나'가 성장시킬 것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개인적인 고통을 상쇄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생각할 거리가 없으면 읽고, 생각할 거리가 많으면 써라'는 말이 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썼다. 엄청나게 써 나가보니, 생각할 거리가 없어짐을 느꼈다. 읽었다. 읽고 썼다. 생각이 정리가 되고 기록이 나를 정리한다. 100만 명에게 선택 받기 위해서는 다수에 공감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만, 나처럼 '보통'과는 동떨어진 경우에는 오롯이 '나'에 관한 글이 좋다. 못해도 대한민국 0.1%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 0.1%도 5만 명이다. 다수에게 맞는 글을 쓰고자 개인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을 나는 선택했다. 어설프게 공감받는 100만보다는 완전히 자기 이야기처럼 느끼는 5만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욕심이 생겨서 동시에 운영하는 채널이 4개다. 언제는 인스타그램이 성장하기도 했다가, 어느 날에는 유튜브가 알고리즘을 받는다. 지금은 네이버 블로그가 성장한다. 어느 방향이던 매일 성장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플랫폼은 '네이버 블로그'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모든 채널의 원본, 원형이다. 늦게 시작한 블로그가 성장했다. 욕심에 순위가 궁금했다. 전체 블로거 중 3만8천 위, 문화 미디어 491위.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한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는 샤워를 하다가 내가 전혀 생각치 못한 위치에 점을 발견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 몸에 1~20개의 점이 있다고 한다. 그 모든 점의 위치를 다 알지 못한다. '자신'이라는 것도 사실 남과 다르지 않다. 남들만큼이나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손바닥에 손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손톱의 모양이나 발가락 모양도 지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전혀 알지 못한다. 하물며 신체가 그런데 정신이라고 다르지 않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자신'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돌이켜보면 기쁘거나 슬프거나하는 감정들도 모두 시간을 타고 흘러가 버린다. 열어 놓은 알콜램프의 뚜껑처럼 실시간으로 증발해버린다. 그것이 온전하게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모든 순간과 모든 감정과 모든 형태가 실시간으로 증발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평면적으로 다음에 오는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방해'한다. 굳이 '스스로 망가지고 다음의 나'를 방해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블로그'는 증발해 가는 실시간의 나를 고스란히 포착했다. 1년, 2년, 3년 전, 증발해가는 감정과 생각을 포획해 가둬 두었다. 그곳의 나는 지금의 나와 사는 곳과 사는 시간이 다르다. 완전히 다른 존재다. 가끔은 아이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가끔은 피곤해 하기도 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자연 증발하여 완전히 사라질 순간들이다. 이 순간은 '기록'으로 남아, 나를 돕고 남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가끔은 종이 위의 '활자'가 되어 '상품'으로 변한다. 가만히 흘러 넘기면 '망상'으로 그칠 것들이, 끄집어 내어 뱉어 버리면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홍보물'이 된다.

 세상에 '무'에서 '유'로의 창조는 존재하지 않으나 어쩔 때는 존재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나열'의 방법만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꿔도 '지금의 나'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0과 1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비트'는 모여서 '바이트'가 되고 '메가바이트'가 되고, '기가바이트'가 된다. 지금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길 고대한다. 단순하고 사소한 것들의 나열은 배열 방법에 따라 파급력을 갖는다. 0과 1이 수직으로 놓여 있으면 0과 1일 뿐이지만 수평으로 놓여 있으면 '컴퓨터'가 된다. 자신을 '객관화'하면 사소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대게 '감정'에 속아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의 몸에 점이 몇 개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감정과 생각이 '자신'이고 그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몸에 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고 알게 된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여러 모양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점 하나'에 꽂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황은 바보 같다. '점'은 '나'의 모든 것이 아니다. 그냥 '점'일 뿐이다. 모든 감정과 생각 그리고 순간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활자로 기록하면 그것은 다음의 나를 돕는 매체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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