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독후감
제목부터 분위기가 물씬 풍겨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궁화'. '태극기', '한반도', '한민족'처럼 '애국심'을 억지로 고취시키는 키워드를 좋아하진 않는다. '반일', '한미', 한중'처럼 외부에 적을 두고 '우리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분위기를 반기진 않는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안정을 위해 국민들을 단합하고 선동하기 위해 만든 키워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그럼에도 읽었다. 소설은 무려 600만 부가 팔렸다. 심지어 이 도서는 김진명 작가의 대뷔작으로 1993년 출판하고 바로 밀리언셀러가 됐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은 많이 읽지는 못했다. '킹메이커'와 '카지노' 정도를 읽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비교적 시간이 지난 뒤에 읽었다. 개인적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보다는 '킹메이커'나 '카지노'가 더 인상 깊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음모론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그 대표격 되는 소설이다. 비판적인 시선도 있으나 개인적으론 '소설'이라는 장르가 상상력 혹은 사실을 바탕에 두고 쓴 허구라는 점에서 독자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 영화도 흥행을 하는 경우를 쉽게 본다. 대중문화가 영향력을 갖게 될수록 피할 수 없는 것이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핵무기 개발 비밀 프로젝트 암호명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다만 우리가 다른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외교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핵무장'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그 당시 국민들의 '바람'이 소설의 '흥행'을 북돋았다. 시간이 지나서 '핵무장'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치 외교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금은 찬성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핵무장이 계획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인 이용후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며 미국의 음모가 함께 그려진다. 이 소설이 논란이었던 이유는 실제 인물인 '이휘소 박사'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역사'와 '정치'는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 그의 소설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역사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한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자녀가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보고 역사로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소설'의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사실'을 배경으로 한 이상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혼돈이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 한글 창제에 '신미스님'을 등장시켰고 광해에는 '쌍둥이'와 같은 '가짜 광해'가 등장했으며, '왕의남자'에서는 '연산군'이 동성애와 연결된다. 영화를 영화로, 소설을 소설로만 보기에 해당들은 15세 관람가였다. 15세면 고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을 나이다.
역사소설 중 '역사왜곡'을 피할 수 있는 소설은 많지 않다. '소설' 자체가 흥미와 허구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어디서부터 허구이고 어디서 부터 사실인지 분간이 힘들다. 소설은 사실보다 흥미있기 때문에 대중의 기억 속에는 사실보다 허구의 이야기가 더 오래 남는다. 실제로 MBC 드라마 허준은 '이은성 작가'의 '동의보감'을 모티브로 했다. '이은성 작가'의 '동의보감'에서의 허준과 그외 인물의 서사는 거의 대부분 허구다. 여기에 드라마로 소설이 각색되면서 '허준'의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워진다. 실제로 '허준'은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인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허준'을 보며 그의 일대기를 대략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나부터 드라마 허준을 지금까지 재밌게 보고 있지만 최근까지 드라마 허준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 허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인터넷에 허준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 지금도 '소설'과 '드라마'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인 것 처럼 사람들은 주고 받는다. 영화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 또한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역시 '소설'이다. 메가히트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역사를 훼손하면 안된다. 그러나 역사를 훼손하지 말아야하기 때문에 '창작'에 제한이 생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