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와 아빠의 제주여행#25_용담동 해안가를 가다

by 오인환

한때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곳이 있다. 사는 곳이 서귀포시 남원읍이다 보니 어디에서도 멀다. 코로나 19로 언젠가 갓난아이들을 데리고 1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용담동으로 가면 자동차 극장이 있다. 가끔 거기서 영화를 보곤 했다. 예전 생각이 났다. 용담동은 '제주공항'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더 유명해야 할 것은 바로 바다다. 여기에는 길게 뻗은 해안도로가 있다. 그리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멋있는 카페들이 즐비해 있다. 이곳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이유는 바다도 바다이지만, 드라이브 스루를 할 수 있는 카페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가끔 옛날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날은 몹시 좋았다. 마치 뉴질랜드의 하늘과도 같았다. 코로나 19로 대기의 청정도가 높아졌다는 뉴스 기사가 실감된다. 짠 바다 냄새와 눅눅한 습기가 차 문을 열고 나가자 몸을 휘감는다. 아이들과 나의 머리칼 깊숙이 바다 냄새가 스며들어가는 듯하다.


제주의 바다는 동남아의 바다처럼 애매랄드 빛은 아니다. 아마 바닷속까지 차있는 현무암들 때문일 것이다. 제주와 한라산이 형성된 과정은 화산 활동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마 제주의 바다는 깊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찍힌 사진을 거의 확인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제라도 사진을 찍는다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포즈를 취하곤 한다. 이날은 아이들이 너무 신난 나머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아빠의 말도 무시하고 바다를 한동안 구경하곤 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바다로 둘러싼 지역을 살면서 바다를 관찰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다음에는 꼭 아이들에게 바다를 더 관찰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이 없는 전망대를 따라 올라간다. 전망대는 바다만 바라보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바다를 바라볼 수도,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바다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사람들을 바라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기분 좋은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저절로 스스로의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높은 곳에서 신이 났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옆을 보니 다른 아이들이 꽤 밖으로 나와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에는 부모가 함께 나와 시소를 타고 그네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가고 싶어 했다. 아이들의 이끌림으로 나도 저절로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뛰어갔지만 쉽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한참을 아빠가 옆에서 다독여야 겨우 미끄럼틀을 타곤 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왈가닥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난 뒤부터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내성적인 성격은 좋지 못하다.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악의 없는 타인들로 인해 포기하게 된다. 아이들이 갔을 때,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싶다고 했다.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아빠 그네 타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나는 억척스럽거나 유난스럽지 못한 아빠다. 아이에게 순서를 기다리면 곧 우리 차례가 올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20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아이 차례가 되었다. 그때 마침,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후다닥'하고 달려오더니 아이를 '휙'하고 그네 위에 올렸다.

하율이가 말했다. '내 차례인데...', 다율이가 말했다. '차례 안 지키면 나쁜 사람인데...'

나는 웬만해서는 일이 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속으로는 저 염치없는 아줌마를 욕했지만, 아이들에게 다시 일러준다. '친구 끝나면 우리 타는 걸로 할 수 있겠어?'

'네~'

아이와 엄마는 한참 동안이나 그네를 탔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 서서 10분을 넘게 그네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그네를 떠났다. 다행히 두 개의 자리가 나왔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눈치 볼 것 없이 신나게 그네를 탔다.


내가 조금만 더 억척스러웠다면 아이들이 더 신나게 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를 타다가 내려왔다. 개인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이 좋진 않은 듯하다. 아이들에게 그런 이유로 외향적일 수 있도록 교육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쩐지 아이의 천성이 타고나는지, 혹은 부모의 성격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왈가닥스러우면서도 외향적이지 않다. 마음이 짠하다.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에 우리 부모님도 나를 바라보고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용담동에서 신나게 놀고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저녁 8시가 되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 아이들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역시나 입을 벌리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천상 천사가 따로 없다. 하루를 움직일 원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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