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죽어 있는 시계가 알려주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독후감

by 오인환

로댕을 좋아하게 됐다. 그의 작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로댕이 가진 개인의 역사 때문이다. 그는 고독했으나 명성을 얻고 더 고독했다. 그의 아내는 결혼식 2주만에 사망했다. 마흔이 넘은 로댕은 이후 열아홉 미모의 여인을 제자로 둔다. 카미유 클로델. 둘은 연인이 됐으나 서로 표절 문제가 생기며 멀어졌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이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로댕은 그녀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름다운 그 둘의 연애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카미유 클로델은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 들어가 30년을 살고 생을 마감한다. 로댕의 삶을 살피면 표면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이 짐작된다. 다른 질병과 다르게 '정신질환'은 본인보다 주변이 힘들어진다. 과거와 현재를 모두 부정하는 상대의 눈빛을 보는 일은 고통이다. 로댕은 '지옥문'의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인물로 유명하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문'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심오한 고민을 하는 남자다. 깊은 사유를 하는 남자는 헤라클레스(Heracles)다. 근육질 몸에, 건장함이 명성인 남자가 '삶'과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사뭇 대비되고 강조된다. 그 청동조각을 다듬으면서 로댕 자신은 스스로를 몇 번 돌이켜 봤을까. 적어도 한 번이라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의 일대기를 살피면 그또한 하나의 인생이다. 우리에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대표작으로만 연결된 인물의 인생을 살피면 그 속에는 복잡한 고뇌가 섞여 있다. 단순히 재능만으로 훌륭한 표현을 한다는 천재들보다 더 깊이 있는 심연을 느낄 수 있다.

'장석주 시인'의 고양이는 문자로 읽으면, 문자로 표현되지만 마음으로 읽으면 서서히 스며든다. 단순한 글자들의 조합이 아니라, 작가의 배경과 과거가, 언어가 아닌 형태로 다가온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가 옳았다.' 첫구절은 '도가도 비상도'의 해석으로 시작한다. 노자의 첫구절은 나머지 구절 모두를 포용하기에 가장 중요하다. 이 해석을 위해 '도올'은 언표(言表)의 관념을 먼저 설명한다. 세상 만물은 모두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우주는 '언어'가 아닌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우주를 인간은 자신의 지성의 크기에 맞춰 난도질하여 작은 단위로 조각한다. 인간의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언어'의 형태로 압축한다. 마치 우주 밖의 세계를 파동으로 겨우 쪼개어 색깔로 표시한 뒤, 최소 용량으로 압축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그렇다. '사랑한다'는 본래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세상에 뱉고 있는 수많은 '사랑한다'는 표현의 형태는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붉어질 것이고, 체온이 올라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 신체적 변화, 정신적 변화를 모두 '사랑한다'로 '퉁'친다. 언표는 본질을 가린다. 쉽고 빠르게 추상적 관념을 표현할 수 있으나, 그것을 그렇다고 언어로 말하는 순간 본질은 사라진다. 시 또한 그렇다. 시의 재료는 '언어'다. 고로 추상적인 감상을 '관념'의 형태로 우겨 넣는다. 다만 그 여백이 넉넉하기에 언어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본질을 담는다. 누군가는 말했다. 두꺼운 300쪽 짜리 소설과 200쪽도 안되는 빈칸이 8할인 시집의 가격이 같은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종이 위에 담겨진 잉크로 '가성비'를 따지기에는 우리의 '인식'도 언어가 아닌 형태로 존재한다. 삶은 원래 빈곳이 많다. 아름다운 연애소설도 따지고 보자면, 주인공 둘 다 만나기 전, 칫솔 위에 치약을 짜는 일부터 볼일을 보고 뒷처리하는 사소한 일까지 모두 겪었을 것이다. 연애 소설과 로맨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사랑하는 모습'만 보인다. 우리의 인생은 차까지 걸어가는 의미없는 시간, 빨래를 개어놓는 빈 시간. 신었던 양말을 뒤집어 세탁기에 넣는 사소한 일들이 9할이다. 시는 구구절절 모든 것을 설명하느라 대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가장 추상적인 문장 몇 개를 던저 놓지만, 빈 여백으로 말하는 수 많은 인생의 조각을 '언표'없이 설명한다.

그의 시는 말한다.

더이상 묻지 말자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놓여 있는가를

묻지 말고 가자

멀리 왔다면

더 멀리 한없이 가버리자.

마치 10시 10분에 죽어있는 시계를, 마침 10시 10분에 확인하는 듯한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시인이 표현한 모든 글이 다 내 마음을 후벼파진 않는다. 시인이 내뱉은 말은 12시 1분, 12시 2분, 12시 3분 따위의 표현 조각들이며, 그것을 어느 때고 들처 본 나에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시는 잘못 쓰여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언제 확인하느냐로 결정될 뿐이다. 그것이 나의 마음에 정확히 와 닿으면, 시인이 하고자 했던 진짜 의미는 알고 싶지 않다. 그저 그것이 내 마음에 정확히 맞는다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싶다. 그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 '대추 한 알'이다. 모든 것은 그것이 역사를 담고 있으며, 그 역사는 우주와 함께 한다. 대추 한 알도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우주가 담겨져 있다. 시집을 읽으며 너무 마음에 드는, 혹은 꼭 내 마음과 시기에 알맞은 시 몇 편을 소개한다. 또 언제 이 글을 다시 살펴본다면, 이 시가 아닌 다른 시가 공감이 되겠지만, 2022년 10월 27일의 저녁에 나는 이런 시들을 보며 시인과 코드를 맞췄다.

고양이

어느 날 너는 내게로 왔어.

두 팔을 뻗어 안으려 하자

너는 낱낱의 원소가 되어 사라졌어.

넌 공중에 빗방울을 파종하는 구름이었어.

낮잠 끝에 흩어지는 모래알이었어.

안돼, 그렇게 가버리는 건 싫어.

안 돼, 네가 없다면

난 미쳐버릴 거야.

네 살점을 조금만 떼어주면 돼.

네 피를 한모금만 마시게 해주면 돼.

아아, 그러면 살 수 있을 텐데,

널 사랑할 수 있을텐데,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의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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