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만부가 제작된 다이어리에 이호열 대표는 마감이 거슬렸다. 그는 삐뚤어진 실밥을 참을 수 없어 제작된 제품 전량을 파기한다. 6,000만원의 손실을 본다. 덤핑 판매도 하지 않았다.
2006년, 판매된 다이어리 중 알파벳 'a'가 'e'로 오기된다. 대표는 판매되지 않은 제품을 전량 수거하고 각 매장에 지시해 구매한 고객을 수소문하여 없앴다. 1억원의 손실을 본다.
사업중 발생한 연 매출에서 발생하는 순익 거의 대부분은 연구 개발에 쏟아진다. 회사는 규모보다 정신이 커야 한다는 대한민국 고유 브랜드 '오롬'의 이야기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대세인 세상에, 다품종 소량생산의 철학을 확실히 밀고 간다. 정성을 들여 만든 청자를 망치고 깨어 버리듯 내어 놓는 제품에 '하자'를 견디지 못한다.
회사를 소개하는 '기업 비전'에는 '성장 비전'이 아니라 '제품'과 '사회적 규범'이 적혀 있다. 어떤 회사의 제품을 믿어야 할지 확신이 생긴다.
'오롬'은 연중 노세일 브랜드 전략을 갖는다. 독특하다. 즉각적인 수익을 얻기 위해, 물품을 세일해서 대규모 판매를 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흔히 말하는 '벤츠'나 '에르메스'에도 프로모션이나 할인이 없다. 이런 '노세일' 판매 전략은 구매할 이들이 아닌, 구매한 이들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린 기업을 좋아한다. '느린기업'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적절한 때가 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당길 수 있으나,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 더 완벽하다. 익지 않은 과일을 맛잇게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스'를 주입할 수 있으나, 볕과 시간이 만들어낸 과일이 맛있는 법이다.
이것은 내 투자철학이기도 하다. 될 수 있으면 '지루한 사업'을 하는 이들, 시시한 사명을 가진 곳에 투자한다. 멋진 첨단사업이나 어려운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실제로 지루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에 투자한다. 중장기로 그들은 반드시 적정 가치를 증명해 낸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있지만 아날로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전자책이 아무리 좋아지고 있어도, 손가락에 침을 묻히며 넘기는 종이책을 포기할 수 없고 사각거리는 종이 위에 필기감을 포기할 수 없다. 여기 저기에 기록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종이 위와 디지털 중 어디에 기록을 해야하는지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결국 내린 결론은 '둘 다'라는 다소 어이없는 결과지만, 그 결과의 결과를 보자면 '종이 위'의 기록이 더 오래 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손으로 남기는 것에는 알지 못할 희열이 있다. 그냥 끄적거리는 필기에는 단순히 기록 뿐만 아니라, 낙서와 흔적이 남는다. 세월도 함께 있다. 최근 NFT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이다. 음악이나 사진과 같은 '디지털 파일'들은 대부분 '복사'를 통해 완전히 똑같은 것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디지털에서는 '원본'이 의미가 없다. 이것에 '원본'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기술적으로 '원본'이 가진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디지털은 꽤 오래 돌아갔지만 아날로그는 태초부터 그러하다. 오롬의 철학은 '카피는 오리지널을 이기지 못한다'라고 한다. 실제로 다품종 소량생산이기에 모든 제품은 오리지날에 가깝다. 그곳에 쓰여지는 글들도 모두 오리지날일 것이다.
금박으로 이니셜 네이밍이 되어 있다. 이것으로 이 다이어리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다. 물품에 자신의 이름을 박제한다는 것은 소유욕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것'이라고 증명해 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제품에는 대게 중고를 이용하기도 한다. 다만 의미가 있는 제품에는 결코 중고를 이용하지 않는다. 물건에는 역사와 철학이 있다고 믿는다. 반짝거리는 새제품보다는 묻어 있는 흔적이 더 가치 있다. 빌게이츠는 '다빈치'의 노트를 500억에 구매했다. 해당 노트의 나이가 500년이다. 깨끗한 새 노트가 아니라 이미 채워진 노트를 500억에 구매한 걸 보면, 사용자의 흔적은 '새것'보다 중요하다.
'오롬'은 단순히 다이어리만 만들어 파는 브랜드는 아니다. 오롬은 '가죽'과 '종이'를 활용하여 고급 다이어리, 노트, 지갑 등을 제작하는 브랜드다. 이들이 제작하는 품목은 아날로그 방식대로 제작한다. 고로 손으로 깎아 만든 수제 활자를 통해 지갑이나 가방 혹은 파우치와 케이스 등에 새겨진다. 고딕체와 이탤릭체 등 필체를 정할 수 있으며 한글이나 한자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제작 방식은 당연히 수제 활제 제작이기에 글자의 높낮이가 달라 질 수도 있다. 그냥 기계로 찍어낸 것보다 이 부분이 더 멋들어지다.
대략 10년 정도 가죽 오거나이저 다이어리를 사용해왔다. 스무살이 후부터 기록에 미쳐 있어서 지금도 집에는 분실하지 않은 가죽 다이어리들이 서재에 꽂혀 있다. 그러다 스마트폰에 기록을 시작하면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됐다. 스마트폰에 기록하면서 분명 좋은 점도 있지만 안좋은 점들도 있다. 선을 긋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기록하는데 제약이 생긴 것이다. 마침 지갑을 바꿀 겸, 알아보고 있다가 우연히 오롬 아이어리를 만나게 됐다. 오롬 다이어리를 보고 나니 예전 투박한 크기의 오거나이저 다이어리를 지갑 대용으로 들고 다니전 시절의 향수가 떠올랐다.
앞서 말한대로 '오롬'은 '완전함'을 추구한다. '오롬샵'을 들어가 보면 그 밖에 다양한 다이어리와 가죽 제품을 만나게 된다. 믿음직한 국내 프리미업 수제 문구 브랜드를 찾고 있다면 한 번 주목해 볼 만 하다. 나 또한 다른 제품을 하나 구매할 요량이다.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