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블루투스를 연동한다.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재생한다. 목적지 없이 산 방향으로 간다. 북쪽으로 넓고 얇은 구름이 형성됐다.
'저 구름을 쫒아보자'
아이에게 '날씨가 좋구나'라고 말했다. 아이는 따라했다. 창문을 반쯤 열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 마셨다. 냉랭한 공기가 콧구멍을 지났다. 목 뒤로 연결된 숨구멍으로 넘어간다. 그것들은 다시 폐속으로 들어갔다. 폐를 한 바퀴 훑는다. 공기는 혈관을 타고 손과 발끝까지 뻗친다. 머리카락 끝이 리프레쉬된다. 몸을 훑던 공기는 담배 연기처럼 탁하게 변한다. 특히 두개골 속에 호두 모양 기관에 닿을수록 탁해졌다. 머리에서 내려온 탁한 공기는 입으로 뱉어졌다. 목적지 없이 간다. 괜한 짓을 했나 싶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와 '드라이브'한다는 목적은 '아이'보다 '나'의 힐링을 위해서다. 집에 두면 무슨 사건 사고를 벌일지 모르는 6살 쌍둥이다. 차에 타면 어쨌건 통제권 내로 들어온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고 있을까.
고민은 이제 접어둔다.
돌아가도 그 만큼이면 그냥 진행해본다. 마침 목적지까지 30km가 남았다. 운행가능한 거리가 50km라고 연료 게이지가 말한다. 어떻게 소비할 에너지면 진행 방향을 돌아가진 말자.
이미 늦었다. 돌아갈까. 고민하던 순간에도 나는 전진한다. 찰라의 순간에도 수 그루의 나무가 스쳐 지나갔고 눈동자가 따르던 구름은 자취를 숨겼다. 후회나 고민이 길어 질수록 주변의 것들은 더 많이 스쳐 지나갔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이는 '겨울왕국'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 귀여운 입에서 귀여운 제안을 한다. 고민은 머리를 스믈스믈 기어 나온다. 끓어 넘치는 크림스프처럼 뚜껑 사이로 흘러 넘친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린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냄비 때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살핀다. 분명 방금 전까지 웃고 있었는데 뾰로퉁 하니 창문을 바라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랐으나 거리는 저만큼 진행됐다. 시간 감각이 사라졌음은 반절 열린 창가로 스미는 찬공기 덕분에 알았다.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 언젠가요?'
질문을 받는다.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퉁명스럽게 회피했다. 반사적으로 떠올린 장면은 있다. 그것을 꼴깍 삼킨다. 아니라고 부정한다. 부정하는 순간, 본질이 흔들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두 번을 물으면 답을 할까. 상대는 두 번은 묻지 않았다. 겉으로 흘러나와버린 민감한 반응에 머쓱했을 것이다.
그 순간마저 후회한다.
그러니 참 불완전한 인간이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철학적 질문을 몇 개 던지고 나니, 아이가 잠에 들었다. 아마 아이의 6살은 그렇게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 감각 없이 뒤를 돌아봤을테다. 그러다 불현듯 그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후회하는 동안 시간은 더 흘러갈 것이다. 흘러가는 동안 아이는 훌쩍 커버릴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 보기로 했다. 목적없이 움직이는 것에도 목적을 부여할 수 있다. 그 의미에 '힐링'을 붙여 봤다. 목적없이 움직임으로 '힐링'한다면 그것은 목적이 없는 움직임은 아닐 것이다. 음악이 꺼진 채로 한참을 달린다. 아이가 부스럭 거리며 일어난다. 애뜻하게 바라본다. 아이는 조금 전, 무심한 표정을 잊어준다. 어쩌면 더 깊은 속을 가졌는지 모른다. 저 얼굴에는 '후회'가 없다. 그 얼굴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후회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려고 멈추진 않았다. 5.16도로, 한라산을 꼬불꼬불 주행한 자동차에 있던 아이가 헛구역질을 했다. 찬공기를 마시려고 어딘가 세웠더니, 그곳이 일식집 주차장이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한 적있다. 좋은 기억이다. 근데, 안 좋은 기억이다. 모르겠다. 그것은 그렇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하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이는 언제고 이곳을 왔던 것처럼 행동한다. 내 기억이 전이됐나 싶다. 아이에게 '어린이 세트'를 주문했다. 아이가 하나를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종업원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막상 나와보니 아이는 거의 먹지 못했다.
남아 있는 음식을 보며 떠올렸다.
'그냥 하나만 시켰어야 했나.'
그 순간은 짧았지만, 아이 앞에 놓인 음식은 꽤나 사라져 있다. 시간 이동이란 그런건가 싶다. 뒤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노래방 기계의 간주점프처럼 '낭만'없이 중간 생략을 해버린다. 임의로 만들어낸 주요부분만 남기고 싹다 날려 버린다.
아이에게 많이 먹지 못한다고 타박했다. 타박하고 나니, 괜한 소리를 했나 싶다. 괜한 소리를 했나 생각하다보니 음식이 꽤 식었다. 함께 앉아 있던 테이블 손님들이 몇 번을 교체됐다.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다짐하다가 아차차 싶어 아이를 살핀다. 아이가 정신없이 먹고 있다. 언제부터 저렇게 먹고 있었나 싶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조금 읽는다. 내가 먹을 때는 아이에게 '영어 유튜브' 채널을 켜줬다. 아이가 먹을 때는 책을 봤다.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맞나 싶다. 책을 집어 넣는다. 아이의 영상을 종료 시켰다. 그제서야 아이의 눈을 봤다. 먹지 않는 유부 초밥, 새우를 집어 먹었다. 아이는 자신이 먹지 않으면서 아빠가 먹으니 '칭얼 거렸다' 칭얼거리지 말라고 타박한다.
글을 쓴다. 글을 쓰는데 아이가 부른다. 글이 곧 마무리되니 기다리라고 했다. 아이는 빨리 오라고 한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다. 살짝 화가 올라온다. 기다리라는 말을 들어서 그랬는지, 아이가 더이상 부르지 않는다. 글을 마무리 짓는다. 방문을 열어보니 아이가 자고 있다. 아까 아이가 부를 때 갔어야 했나 싶다.
후회.
어차피 삶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또한 후회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이보게... 다시 또 후회하는 중이다.